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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IT

사회를 바꾸는 기부인가, 명사들의 홍보 수단인가

등록 2014-09-01 20:03수정 2014-09-01 21:46

루게릭병 퇴치를 위한 ‘아이스버킷 챌린지’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왼쪽부터 운동에 동참해 얼음물을 맞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유튜브 화면 갈무리
루게릭병 퇴치를 위한 ‘아이스버킷 챌린지’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왼쪽부터 운동에 동참해 얼음물을 맞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유튜브 화면 갈무리
[사람&디지털] ‘아이스버킷 챌린지’의 두 얼굴
2012년 세계 인터넷 커뮤니티를 가장 뜨겁게 달군 화제는 ‘코니 2012’라는 유튜브 영상이었다. 제작자 제이슨 러셀이 2003년 우간다를 여행하다 만난 소년 제이컵의 이야기를 통해 반군 우두머리 조지프 코니의 만행을 고발하는 내용이다. 코니는 당시까지 모두 3만명의 어린이를 납치해 소년 병사나 성 노리개로 써온 전쟁 범죄자이다. 힘있는 권력자들은 이 지역에 자원 등 이해관계가 없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며 시민들의 풀뿌리 운동이 정부를 압박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메시지를 설득력 있게 그렸다. 국내에선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이 영상은 지금까지 1억명 가까운 이들이 시청했다.

‘얼음물 뒤집어쓰기’ 바람 확산
미국서만 모금액 1억달러 돌파
소셜미디어 통한 전파력 막강

환자 아닌 기부자 중심 캠페인
참가자들 자기만족 도구 변질도
‘인터넷시대 사회운동’ 물음 던져

최근 인터넷에서 가장 뜨거운 화제는 ‘아이스버킷 챌린지’일 것이다. 현재 진행중인 이 운동은 점점 몸이 굳어가면서 서지도 말하지도 먹지도 못하게 되는 불치병 ‘루게릭병’(근위축성측색경화증)에 대한 관심과 후원을 호소하는 내용으로, 얼음물을 뒤집어쓰거나 관련 재단에 후원을 하고 다음 대상자 3명을 지목하는 방식의 릴레이 운동이다. 소셜네트워크라는 날개를 달고 이 운동은 불과 한달 만에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의 동참을 이끌어냈다.

‘코니 2012’, 큰 성공을 거둔 이 인터넷 운동은 어떤 변화를 끌어냈을까? 2년이 지난 지금 불행히도 코니는 아직 아프리카의 정글 어딘가에서 활보중이다. 주된 실패 이유는 우간다의 정치적 상황을 극히 단순화해 해결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반론과, 주도한 단체의 회계 투명성 등이 도마에 오르면서 동력이 식었기 때문이지만, 이 운동은 인터넷을 통한 사회운동이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가란 큰 물음을 남겼다. 즉 참가자들에게 단지 ‘난 좋은 일에 동참했어’라는 자기만족적 위안만 남기는 게 아니냐는 반문이다.

가수 아이유. 유튜브 화면 갈무리
가수 아이유. 유튜브 화면 갈무리
아이스버킷 캠페인 역시 반론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끔찍한 질병의 치료법을 찾고 환자와 연대한다는 운동 취지에 반대하는 이는 없다. 방식이 적절한가에 대한 물음이다. 영국의 탐사보도 기자 윌러드 폭스턴은 <텔레그래프>에 기고한 ‘안락의자에 앉은 ‘손가락운동가’를 위한 중산층의 티셔츠 적시기 놀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 운동이 선행을 홍보하는 명사들의 쇼로 전락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억만장자들이 10달러(얼음물을 견디면 10달러, 못 견디면 100달러를 기부하는 규칙)를 기부하는 대가로 명성을 얻는 모습은 상당히 우울하게 보인다”고 썼다. 자기 행동을 늘 업데이트하는 소셜미디어의 자기애적 성격과 명사들에 대한 숭배가 결합되면서 탄생한 나르시시즘 잔치라는 비난이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일었다. 유행처럼 번지면서 취지는 가려지고 홍보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이다. “게임 같은 건가”라며 샤워기의 찬물을 맞은 그룹 슈퍼주니어의 김희철씨, 속옷을 노출한 걸그룹 시크릿의 전효성씨의 경우 등이 뒷말을 낳은 사례다.

인터넷 캠페인에 대한 비판론은 ‘슬랙티비즘’으로 표현된다. 게으름뱅이(slacker)와 운동(activism)의 합성어다. 영국 이매뉴얼대학의 도덕철학연구원 윌리엄 매캐스킬은 디지털 매체 <쿼츠>에 기고한 ‘이번주에는 말라리아 퇴치를 위해 얼음물을 끼얹어 보자’는 글에서 슬랙티비즘의 문제는 “공헌활동이 기부가 필요한 사람들 입장이 아닌 기부자 중심으로 돌아가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취지에 공감해 참여하는 게 아니라, 참여하고 보니 이런 운동이었다”는 식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탤런트 조인성. 유튜브 화면 갈무리
탤런트 조인성. 유튜브 화면 갈무리
아무것도 안 하는 것에 비하면 낫지 않을까? 그는 이런 방식이 오히려 해를 끼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상적 상황이라면 모든 운동들에 충분한 자원이 가는 것이 맞겠지만, 현실은 여러 운동들이 제한된 자원을 두고 경쟁하게 된다. 매캐스킬은 소셜미디어 운동이 “가장 필요한 운동들이 아니라 가장 마케팅을 잘하는 운동들에 인센티브를 주게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슬랙티비즘에 대한 이런 비판들은 사람들의 행동이 복합적이라는 점을 간과하는 면이 있다. 한 사람은 친구의 페이스북 아이스버킷 동영상에 ‘좋아요’를 누르는 손가락운동가이면서, 동시에 세월호 특별법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현실 운동가라는 여러 정체성을 동시에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활동을 하는 이들은 현실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는 이들이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미국 조지타운대학교와 글로벌 광고회사 오길비 연구진이 2011년말 발표한 ‘사회운동 참여의 역학’이라는 보고서는 슬랙티비즘이 저평가를 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인 상대 조사에서, 소셜미디어를 통해 운동에 참여하는 이들은 다른 경로로 참여하는 이들보다 자원활동에 참여하는 비율이 2배, 다른 사람을 서명운동에 참여하도록 권하는 비율은 5배 정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스버킷 운동은 지금까지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운동을 처음 시작한 미국루게릭병협회는 8월29일 총 모금액이 1억달러(1000억원)를 돌파했다고 밝혔다. 지난 수십년간의 모금 액수와 맞먹는다. 한국루게릭병협회는 운동이 국내에서 본격화된 지난달 18~27일 4000여명이 기부에 참여했고 총 기부액은 2억원을 넘었다고 밝혔다. 박성자 승일희망재단 상임이사는 “어떤 계기이든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고맙다. 이번 일로 루게릭 환우와 가족분들 기대가 큰데 꾸준한 관심과, 다른 희귀질환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승일희망재단은 루게릭병 투병중인 박승일 전 농구선수의 이름에서 따온 단체로 박 이사는 그의 누나다.

권오성 기자 sage5t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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