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의 파장이 ‘경제’로 옮겨붙었다. 스타트업은 투자가 중단됐고 증시 상장을 준비하던 기업은 애초 계획을 수정하는 등 창업·투자 업계도 코로나19 충격에 예외는 아니다. ‘몰락한 유니콘’ 옐로모바일에서 4년 간 일했던 최정우 전 옐로트래블 대표는 “확장 일로에 있던 경제가 불황을 맞아 거품이 꺼지는 국면에선 기업에겐 기본기가 중요해진다”라며 “스타트업들은 기본으로 돌아가 내실을 다지는데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타트업은 저성장 국면에서 새로운 경제 성장의 동력이 될 것이라고 주목받으며 최근 몇년간 국내외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각국 정부는 창업과 벤처 투자 지원에 예산을 집중 투입했고, 금융투자업계의 투자금도 스타트업 생태계로 물밀듯이 쏟아져들어갔다.
지난 20일 <한겨레>와 만난 최 전 대표는 한동안 뜨거웠던 스타트업의 현주소를 짚으며 지속가능한 창업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필요 조건을 강조했다. 2002년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한 그는 삼일회계법인과 아모레퍼시픽그룹에서 인수합병 업무를 맡았다. 퇴사 이후엔 디저트카페를 창업하고 다시 매각해본 경험을 쌓았다. 이후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던 중 대학 친구의 제안으로 2014년 7월 옐로모바일의 여행 지주회사 옐로트래블 대표로 합류했다. 옐로모바일은 쿠팡에 이어 국내 두 번째 유니콘 기업으로 큰 주목을 받았지만 부실경영이 드러나며 현재는 사실상 공중분해됐다. 옐로에서의 경험을 책으로 정리해 지난 16일 <스타트업은 어떻게 유니콘이 되는가>라는 책을 펴낸 최 전 대표는 이때의 일을 바탕으로 ‘건강한 회사’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며 도움이 필요한 스타트업들에게 경영자문에 나서고 있다. 그는 “옐로에서 봤던 문제점들은 옐로 만의 이야기가 아닌 스타트업 업계 전반에서 보이는 모습일 것”이라고 했다.
최 전 대표는 그동안 ‘스타트업’은 창업자도 투자자도 돈 버는 것에만 매몰되어서 정작 좋은 기업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고 했다. “트래픽이나 방문자수 등 2차 지표를 키우는 데만 신경썼고 이렇게 늘어난 데이터를 바탕으로 어떻게 수익을 낼 지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던 게 사실이었습니다. 2차 지표를 늘리는데 집중한 이유는 기업가치를 빨리 키운 뒤 팔아 창업자와 투자자가 이익을 실현하려는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최 대표는 이같은 모습이 “의미없는 숫자놀음”이라고 잘라 말했다. “스타트업들은 대부분 비상장 회사이기 때문에 높게 평가받은 주식과 기업 가치도 시장 밖에서의 평가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현금으로의 교환 가능성도 떨어지죠. 하지만 이 숫자를 보며 자신들이 얼마를 벌어갈 수 있는지 계산기만 두드리는 게 그동안 스타트업계의 숨겨진 모습이었습니다.”
만능 단어가 되어버린 ‘테크’와 ‘플랫폼’은 회사의 본질을 가렸다. 무엇을 하려는 기업인지, 얼마나 튼튼한 기업인지는 묻지 않았다. 그냥 ‘테크 기업의 플랫폼 서비스’라면 손쉽게 투자가 유치됐고, 이 과정에서 기업가치는 뛰었다. “부동산, 여행 등 테크 분야가 아닌 회사들도 테크기업으로 보이려 고액 연봉을 받는 기술 개발자들을 대거 뽑았습니다. 모든 스타트업이 독점을 지향하는 플랫폼 기업으로서 ‘제이커브’ 상승곡선을 그려야만 하는 게 아닌데도 무리를 한 거죠.”
최 전 대표는 “스타트업 과열 양상이었던 지금까지는 이런 지적을 하더라도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분위기가 스타트업계 내부에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옐로모바일에서 뛰쳐 나온 이유도 회사의 재무 상황에 대한 판단을 두고 창업자와 갈등을 겪었기 때문이다.
한동안 ‘스타트업 붐’을 거쳤지만 거품이 꺼지면서 곧 조정기가 올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었는데, 최근 ‘코로나발 경제위기’는 이같은 조정의 시기를 예상보다 앞당겼다. 최 전 대표는 이런 시기에 중요한 것은 “기업으로서의 기본기”라고 지적했다. “스타트업은 새로운 종류의 회사가 아닙니다. 하나의 기업으로서 재무 회계적으로 견실한 성장이 중요합니다. 앞으로는 투자자들도 위기관리를 해야하기 때문에 기업을 평가할 때 주요하게 보는 지표도 트래픽과 방문자수 등 2차지표가 아닌 매출과 수익 위주로 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속가능한 스타트업을 위해서는 창업자와 투자자, 정책 결정자가 모두 바뀌어야 하고 이들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최 전 대표는 강조했다. “창업자는 단순히 기업 가치를 키워서 단시간에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보단 좋은 회사를 만드는데 집중하고, 투자자는 트렌드에 휩쓸리기보단 냉정하게 좋은 기업을 발굴하는 소신을 가져야죠. 정책 결정자들은 시장의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을 내놓지 않으려면 시장의 조언을 적극적으로 구하고 최대한 지원하되 주체는 기업(민간)이 되도록 판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세 주체는 그동안 각자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일했어요. 잘못한 것은 아니지만 넓게 보지 않으면 한계에 부딪히기 마련입니다. 앞으론 각자의 역할을 하면서 ‘본질에 충실한 좋은 기업은 뭘까’라는 고민의 틀 아래에서 조화도 이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스타트업 경영의 고도화’를 앞으로의 화두로 던지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스타트업 업계에는 기존 기업들의 경영 방식이나 조직 문화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스타트업의 혁신은 기존의 것을 마냥 배척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배울 건 배우고 부족한 건 개선해서 기존 기업을 뛰어넘을 때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글·사진 최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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