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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배송 말고…좀 늦더라도 가장 맛있게” 초당옥수수 김재훈 대표

등록 2020-07-21 15:42수정 2020-07-23 10:33

[최민영의 혁신 탐구생활]
2013년 초당옥수수를 한국에 처음 들여온 김재훈 식탁이있는삶 대표가 16일 오후 서울시 마포구 양화로 본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의 노란 옥수수가 초당옥수수이고, 껍질에 싸여있는 오른쪽 옥수수는 아직 시장에 출시되지 않은 신품종으로 찰옥수수와 초당옥수수가 반반씩 섞인 제품이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2013년 초당옥수수를 한국에 처음 들여온 김재훈 식탁이있는삶 대표가 16일 오후 서울시 마포구 양화로 본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의 노란 옥수수가 초당옥수수이고, 껍질에 싸여있는 오른쪽 옥수수는 아직 시장에 출시되지 않은 신품종으로 찰옥수수와 초당옥수수가 반반씩 섞인 제품이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하고싶은 말이 있냐고 묻자 김재훈(36) 식탁이있는삶 대표는 “절대로 하지 마라”고 단칼에 잘랐다. 스무살 때부터 끊임없이 도전과 실패를 반복한 뒤 지금의 ‘초당옥수수 대박’을 낸 그이기에 격려의 말이 나올 줄 알았지만 의외였다. “실패해도 괜찮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제대로 망해본 적이 없구나’ 생각한다”며 “그만큼 낭만적이고 무책임한 말이니, 정책 입안자들의 달콤한 말에 속지 말라”고 김 대표는 목소리를 높였다.

김 대표는 한국에 처음으로 초당옥수수를 들여와 2013년부터 유통한 사람이다. 초당옥수수는 일반 옥수수보다 2∼3배 달지만 칼로리는 낮고 식감도 특이해 최근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방송에서도 자주 소개되며 계절 별미로 자리를 잡아가는 초당옥수수 ‘대박’은 그냥 얻어진 게 아니다. 지난 16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사무실에서 만난 김 대표는 인터뷰 내내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절벽에 내몰린 심정으로 절박하게 죽을 힘을 다해서 목숨 걸고 했다”는 말을 반복했다. 20대에 농수산물 유통으로 큰 돈을 벌었다가, 2010년 소말리아 해적에게 킹크랩 어선 금미호가 납치된 뒤 세상을 등질 생각까지 했던 그가 절박한 심정으로 다시 일어선 결과물이 초당옥수수였다.

■“돈 되는 농사, 해법은 샛별배송 말고 달구지배송” 김 대표의 ‘농산물 사업’은 고향인 경북 의성에서 평생 마늘 농사를 지으셨던 아버지를 보면서 시작됐다. “아버지는 매일 아침 새벽이슬을 맞으며 일하러 나가셨어요.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데도 왜 경제적 상황이 더 나아지지 않을까 늘 궁금했습니다.” 이어 “악순환에 빠져있는 농업과 농민, 농촌의 현실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초당옥수수와 같은 ‘돈 되는 농사’를 짓는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농촌 산지에 가서도 유통업체를 만나서도, 저는 항상 ‘농업 현실의 무거움’을 느낍니다. 농민들은 아무리 농작물을 잘 키워도 공판장에 가면 대충 키운 다른 작물들과 비슷한 취급을 받기 십상입니다. 백화점 납품은 꿈도 못 꾸죠. 이커머스는 치킨게임을 하면서 싼 것만 찾고, 그러다 보니 중간에 있는 벤더들도 저렴한 물건만 찾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농가는 악순환을 겪죠. 신품종을 들여와서 키워도 판로가 없고, 농협 등 수매기관들은 농민이 아닌 조직을 위해 일하고…. 한편으로는 농민들도 변해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보조금과 수매에 기대면서 노력하지 않거든요. 이런 농업 현실이 저에게는 무겁게 다가옵니다.”

규모화된 기업형 농업인 ‘애그리 비즈니스’를 하고싶다는 그는 초당옥수수와 같은 특화 작물들을 키우면 농촌이 바뀔 수 있다고 주장했다. 농민에게는 돈이 되고, 소비자는 새롭고 질 좋은 상품을 먹을 수 있어서 서로 ‘윈윈’이기 때문이란다.

최근 이커머스의 트렌드인 ‘빠른 배송’은 의미가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로켓배송, 샛별배송보다 달구지배송을 할 겁니다. 대부분의 식품 이커머스 기업들이 공장에서 찍어낸 물건을 파는데 우리는 직접 농사를 짓고 땅에서 가치를 뽑아내고 있어요. 주문했을 때 상태가 나쁘면 배송도 안 합니다. 조금 늦더라도 가장 맛있는 음식을 보내주고 싶습니다.” 이런 가치를 추구하는 식탁이있는삶은 현재 시리즈 비(B) 투자도 진행 중이다. 최근 디쓰리(D3)쥬빌리파트너스로부터 20억 규모의 리드 투자가 확정됐고, 그 외에도 국내 대기업, 벤처캐피탈(VC)들과 투자 논의를 진행 중이다.

김재훈 식탁이있는삶 대표.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김재훈 식탁이있는삶 대표.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잘난 세상을 돌파하는 방법, ‘남들과는 다르게’ 김 대표가 처음부터 농업에 전념하려던 건 아니었다. 외교관이 되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2003년 동국대 행정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태극당 뒷골목 동대고시원에 터를 잡고 대학 생활을 시작하면서 서울에 대한 환상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다”고 했다. “밥을 굶을 정도로 어렵진 않았지만 그래도 부모님께 부담을 드리기 싫어서 고시원에 방을 얻었어요. 서울에 와서 컬쳐쇼크를 여러번 느꼈습니다. 친구들은 차도 몰고 다니고, 영어도 잘하고, 유학도 갔다왔더라고요. 의성에 계신 부모님은 해외여행 한 번 못 가보셨는데.” 동기들과 어울리면서도 마음 한편에선 절박함이 싹텄다. “자격지심도 함께 느꼈던 것 같다”고 했다. “나도 잘 먹고 잘 살아야 하는데, 저들과의 경쟁에서는 무엇을 해야 이기고 돈을 벌 수 있을까? 고민을 하면서 사업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죠.”

그는 2003년을 “정부가 청년창업 대출을 많이 해주며 ‘창업 붐’이 일기 시작했던 때”라고 기억했다. “농업을 아이템으로 잡으면 서울에 있는 동기들보다 잘할 것 같았어요. 저는 초등학생 때부터 부모님 따라 마늘, 고추, 콩, 과일까지 다 직접 키워봤는데, 서울 애들은 콩이 어디서 열리는 지는 알까 싶었죠.” 농업이 저평가 받는 현실도 바꾸고 싶었다. “부모님 직업이 뭐냐고 질문을 받으면 농사를 지으신다고 당당하게 답했지만 위축되기도 했습니다. 매일 밥을 먹고 살면서도 ‘하던 일 망하면 농사나 짓지’라고 농업을 천시하는 사람을 보면 상처도 받았죠. 어린 시절부터 평생 보고 듣고 체험하며 자란, 평가절하된 농업을 발전시키고 싶었습니다.”

■“두유노 블랙갈릭?” 싱가포르 박람회에서 흑마늘 20만달러 수출한 20살 새내기 20살에 시도했던 첫 사업은 고향 특산물인 의성 흑마늘 가공식품을 파는 것이었다. 고향 친구의 아버지가 의성에서 흑마늘 공장을 막 시작할 때였다. 무작정 찾아가서 “서울에서 흑마늘을 팔아 돈을 벌고 싶다. 유통을 해볼테니 전단지와 샘플을 달라”고 부탁했다. 친구 아버지는 “(어차피 못 팔테니) 네가 많이 먹어라”면서 흑마늘 액기스와 건조통흑마늘 제품 6박스를 조건없이 내주셨다. 샘플을 받아들고 서울로 올라와서 판매를 시도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유통회사에 다니는 선배에게 연락하고 직접 영업도 해봤지만 다단계 판매상 취급을 받거나 문전박대를 당했습니다. 조직도 인프라도 없는 상태에서 상품을 유통하는게 참 힘들다는 걸 깨달았죠.” 샘플로 받아온 흑마늘 식품들은 김 대표가 다 먹었다.

국내에선 실패했지만 해외에서 시도해보면 다를 것 같았다. “의성 흑마늘은 ‘국가 브랜드’ 제품이니까요. 싱가포르 컨벤션에서 ‘뷰티 아시아’라는 미용 식품 박람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알게됐는데, 부스 차릴 돈은 없었고 관람객으로 가서 영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비행기표 값을 벌기 위해 김 대표는 양화대교 보수공사장에서 야간 막노동을 했다. 하루 일당 18만원을 차곡차곡 모아 2천달러를 만들었다. 그 돈으로 비행기표를 사고 직접 만든 어설픈 포스터를 인쇄하고, 친구 아버지한테 다시 한 번 받은 샘플 상품을 들고 비행기를 탔다.

싱가포르 행사장에서 “두유노 블랙갈릭?”을 외치며 열심히 명함을 돌렸지만 바이어들은 ‘감감 무소식’이었다. ‘2천달러 버렸구나’ 생각하며 한국으로 돌아갈 짐을 챙기고 있던 그 때, 김 대표가 묵고 있던 게스트하우스로 한국무역협회에서 전화가 왔다. 싱가포르의 한 화교가 흑마늘에 관심이 있다는 연락이었다. 싱가포르와 홍콩에서 건강식품 매장 운영하는 바이어는 숙성 식품인 흑마늘이 기후가 온난다습한 동남아에서도 유통이 가능할 것 같다며 20만달러 어치를 사겠다고 했다. 구체적인 수출 방법 등은 한국무역협회의 도움을 받았다. 비행기값으로 쓴 2천달러의 100배를 벌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후 자연스레 진로도 외교관이 아닌 농산물을 활용한 사업으로 굳어졌다.

김재훈 식탁이있는삶 대표.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김재훈 식탁이있는삶 대표.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롤러코스터 탔던 첫 사업…킹크랩선 금미호는 해적에 납치되기도 본격적인 사업은 대학교 4학년이던 2008년, 친구들과 함께 동국대 충무로영상센터에서 사무실을 내면서 시작했다. 신용보증기금에서 3천만원 청년창업 대출을 받아서 문을 열었다. 각종 농수산물의 판로를 개척하는 제이에이치(JH)인터내셔널은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잘됐다. 해외거래도 성사될 정도로 일이 잘 풀리자 사업 범위를 넓혔다. 아버지가 물려주신 경북 의성의 1200평 땅에 초당옥수수, 자색당근, 베이비 베지터블 등 신품종 종자를 들여와서 시험재배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족한 점 투성이인 ‘천둥벌거숭이’였지만, 그땐 손 대는 일마다 잘 되니 스스로를 마이다스의 손이라고 생각했다. 그릇이 되지 않았는데, 저 자신이 무르익기 전에 너무 많은 돈을 버니 조직 관리, 돈의 씀씀이 같은 것들이 통제되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일이 잘 되니 이런 생각을 못 했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아프리카 케냐 해역에서 킹크랩을 수입하는 일에도 뛰어들었다. 소말리아와 가까운 이곳은 해적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이라 대형 어선을 가진 큰 식품기업들은 거래하지 않는 지역이었다. 낯선 지역에서 하는 잘 모르는 일이었지만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을 기대하며 위험한 확장을 시도했다. “한국에 수입되는 러시아산 킹크랩은 1마리에 10달러 정도였는데 케냐에서 수입하면 마리당 0.5달러였습니다. 케냐 사람들은 갑각류를 안 먹는 문화여서 돈이 되겠다는 촉이 왔죠. 케냐에 가보니 바다는 어족자원이 풍부해 ‘떠내면 되겠다’ 싶었고, 한국은 크랩 요리 전문점이 생기고 오븐 문화가 보급될 때여서 가져오면 대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동안 벌어둔 돈에 대출을 보태 ‘금미호’라는 배 한척을 전세 냈습니다.”

맛 좋은 대게를 금광을 캐듯 어획한다는 ‘금미호’의 뜻처럼, 한국에 도착한 김 대표의 값싼 골든딥시크랩은 바로 대박이 났다. 한 마리를 4~5달러에 팔았는데, 이윤을 붙여서 팔아도 기존 러시아산 킹크랩 원가의 절반에 불과해 가격경쟁력이 월등했다. “킹크랩 사업도 터졌어요. 없어서 못 팔 정도였고 돈도 엄청 벌었죠. ‘서울에서 부산까지 27살을 모두 줄 세우면 내가 100등 안에 들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신감이 올라왔어요.” 강남의 빌딩 한 층을 전부 사무실로 쓸 정도로 돈을 벌자 김 대표는 더 많은 킹크랩을 들여올 수 있도록 빚을 내어 배를 더 키웠다. 주변에서는 ‘내 돈도 불려달라’며 찾아왔다.

2010년 10월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됐다가 4개월 만에 풀려난 금미305호가 2011년 2월15일 케냐 몸바사항에 입항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0년 10월 소말리아 해적에 납치됐다가 4개월 만에 풀려난 금미305호가 2011년 2월15일 케냐 몸바사항에 입항하고 있다. 연합뉴스
마냥 ‘마이다스의 손’으로 살 것만 같았지만 2010년 10월, 잠을 자고 있던 새벽 시간에 갑자기 전화가 빗발쳤다. 케냐 대사관의 연락을 받고 텔레비전을 켜니 금미호가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됐다는 속보가 나왔다. 해군 청해부대가 ‘아덴만 여명작전’으로 삼호주얼리호 선원 21명을 구출했던 즈음 일어났던 또 다른 피랍 사건이었다. 4개월 만인 이듬해 2월 배는 풀려났지만 그 사이 김 대표는 빚쟁이 신세로 추락했다. 대출을 해서 키운 배에 들어간 돈은 모조리 손실이 됐다. 대게를 납품하기로 하고 선도금을 받은 곳에 물어줄 돈도 쌓였다. 영업을 위한 물품은 전부 무용지물이 됐을 뿐만 아니라, 투자자라며 돈을 들고왔던 사람들은 한 순간에 채권자로 돌변했다. 가족에게도 찾아가 돈을 내놓으라고 아우성쳤다. “다행히 사채를 쓰지는 않았고 신용불량자가 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회사가 파산 직전까지 가면서 직원들을 모두 내보냈고 카드를 포함해 모든 돈이 다 막혔죠. 부모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는 생각 때문에 괴로워서 극단적인 생각까지도 할 정도였습니다.”

■조건 없이 손 내민 농민들 덕분에 빛 본 ‘초당옥수수’ 이민을 생각하며 더 이상 사업을 하지 않으려고 생각하던 때, 김 대표에게 손을 내밀어준 사람들은 그의 도움을 받았던 농민들이었다. 큰 규모로 농사를 짓던 농민 5∼6명이 김 대표의 연락처를 수소문해 “우리가 도와줄테니 일어서라”고 했다. “처음엔 ‘도움을 주셔도 이제는 기반이 없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그분들은 ‘열정이 아깝다’면서 2~3억원어치의 배추, 고구마 등 농산물 원물을 5~6개월 동안 선뜻 빌려주시겠다고 했어요.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재기를 준비하며 김 대표는 자신의 과거 모습을 스스로 돌아보며 반성했다. “경영자로서 부족한 부분, 법률과 회계관리 등 회사로서의 꼴을 제대로 갖추기 위한 운영 부분에도 철저했어야 한다는 점을 뒤늦게 알았어요. 돈을 많이 번다고 남들에게 많이 빌려주기도 했는데 이런 ‘겉멋 든 모습’을 버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음가짐도 달라졌어요. 감도 좋지만 좀 더 정확한 전략과 분석이 있었다면 더 좋았겠다 싶은 점들도 보였죠. ‘좀 더 겸손했더라면’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지금 식탁이있는삶이 추구하는 가치는 그때의 실패를 통해 얻었습니다. 실패는 엄청난 자양분이 됐지만 고통스러울 정도로 수업료가 너무 컸죠.”

새로운 사업은 초당옥수수와 같은 신품종 특성화 작물에 집중하는 것이 답이라는 확신도 얻을 수 있었다. 금미호가 납치되기 전, 김 대표는 일본 식품박람회에서 보고 들여온 초당옥수수 종자를 아버지한테 드리고 시험재배를 해달라고 했다. 김 대표의 사업이 멈춰있을 때에도 아버지는 시험재배를 이어갔다. “해외에선 점점 초당옥수수 재배면적 늘고 있었고, 식감과 맛이 새로워서 소비자들도 분명 좋아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아버지가 초당옥수수를 시험재배 하시면서 작성한 작부일지를 보고 상품화를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초당옥수수도 한 번 실패를 한 뒤 이듬해에 잘 됐다. “2013년 백화점에서 초당옥수수를 처음 선보였을 땐 잘 안됐습니다. 소비자들이 초당순두부와 구분을 못했어요. 다른 전략을 고민했는데 마침 그 당시가 아이티(IT)를 기반으로 한 이커머스가 막 시작할 때였습니다. 이걸 활용해야겠다 싶어서 다음 해에는 파워 블로거들에게 먹어보고 후기를 써달라고 블로그 마케팅을 했습니다. 2014년 6월부터 반응이 왔고 지금까지 왔습니다.”

식탁이있는삶 직원들이 신상품 출고와 관련된 회의를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
식탁이있는삶 직원들이 신상품 출고와 관련된 회의를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
■“농민들과 함께 오래가는 사업, 치열하게 하려고요” 식탁이있는삶은 초당옥수수 등 자체 플랫폼 퍼밀에서 판매하는 농산물 일부를 계약재배 방식으로 수급하고 있다. “독점적으로 공급받는 계약재배도 있지만, 식삶의 방식은 다릅니다. 농가한테 종자와 농자금 일부를 지원하고, 농가가 작물을 수확하면 회사가 전량 매입합니다. 법적으로 보면 식삶의 농사를 농가가 대행하는 구조입니다. 농가는 생산에 전념하고 식삶은 판로에 전념하는 방식을 만들었죠. 작년 말에는 영양군 25개 농가와 식삶이 함께 출자해서 영콘농업회사라는 법인도 세웠습니다. 식품회사들의 산지 투자는 대부분 마케팅 투자인데 그보다 더 오래가는 관계를 만들고자 합니다.”

창업을 꿈꾸는 이들은 보다 철저히 준비했으면 좋겠다는 조언도 했다. “절대 창업하지 말라는 말은 그만큼 절박한 마음으로 제대로 준비해야만 잘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스타트업 붐’이라고 하는데 아이디어만 있다고 사업이 성공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제대로 전략을 갖고 덤벼도 될까말까 한 일이죠. 저는 20대 초반에 어설프게 하던 사업이 ‘소가 뒷걸음질 치다 쥐를 잡듯’ 우연히 잘 됐습니다. 그래서 사업이 쉬운 줄 알고 덤볐다 극단적인 생각까지도 했습니다. 입 벌리고 있는다고 저절로 감이 덜어지는 게 사업이 아니니, 창업을 하려는 분들은 그만큼 절박한 마음으로 임했으면 좋겠습니다.”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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