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쪽 어깨에 농심의 ‘너구리’와 ‘신라면’ 로고를 부착한 농심 레드포스의 유니폼. 농심 레드포스 제공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그랑서울 이(e)스포츠 경기장에서 열린 ‘2022 롤 챔피언스 코리아(LCK) 스프링’ 농심 레드포스와 프레딧 브리온의 1라운드 맞대결. 전 세계 8개국 언어로 경기를 생중계하는 카메라가 상대팀과 벤픽(선수들의 게임 캐릭터를 정하는 것) 중인 농심 레드포스 소속 ‘드레드’ 이진혁을 비추자 빨간색 유니폼 양쪽 어깨에 붙은 ‘너구리’와 ‘신라면’이 한 눈에 들어왔다. 지난해 이 대회 섬머 시즌(6~9월 진행) 경기를 본 시청자의 약 60%는 중국·미국·스페인·독일 등에 사는 게임 팬들이었다. 엘시케이 선수 한 명, 한 명이 ‘걸어 다니는 글로벌 광고판’이 된 셈이다.
국내 이스포츠 시장에 기업들의 돈이 몰리고 있다. 지난 2009년 라이엇게임즈가 출시한 인기 게임 ‘리그오브레전드’(LoL) 대회가 코로나19 이후 이스포츠 시청자 증가와 함께 인기가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2012년 출범한 엘시케이가 지난해 처음 프랜차이즈 제도를 도입해 기업들의 투자 리스크가 사라지면서 주 시청자인 엠제트(MZ)세대를 겨냥한 마케팅 채널로 떠오르고 있다.
엘시케이는 리그오브레전드 실력을 겨루는 글로벌 12개 리그 가운데 하나로, 북미(LCS)·유럽(LEC)·중국(LPL) 리그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게임을 만든 라이엇게임즈 주관으로 국내에선 1~3월에 열리는 스프링 시즌과 6~8월에 진행되는 서머 시즌으로 나뉘어 매년 2차례 열린다. 총 10개 팀이 참가해 우승 타이틀(총상금 4억원)을 놓고 경쟁을 벌이는데, 그해 엘시케이 성적 상위 4개 팀은 해마다 10월께 열리는 ‘월드 챔피언십’(롤드컵)에 진출해 전 세계 12개 지역 리그 최상위 팀들과 경기를 벌인다. 한국 팀들은 2011년부터 열린 롤드컵에서 지금까지 총 6차례 정상에 올라 최다 우승 기록을 세웠다. 이 때문에 한국의 축구 팬들이 밤을 새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경기를 보듯, 전 세계 게임 팬들은 ‘이스포츠 종주국’인 엘시케이 경기에 주목한다.
엘시케이는 2020년까지 승강제를 운영해, 그해 팀의 성적에 따라 상부리그인 엘시케이와 하부리그인 챌린저스를 오가게 했다. 이 때문에 프로팀을 직접 운영하거나 후원하는 기업 입장에선 팀이 2부 리그로 강등되면 홍보 효과가 사라지는 위험을 안아야 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엘시케이 리그와 10개 팀이 운영 수익을 공유하는 프랜차이즈 제도를 도입하면서 기업들은 강등 리스크 없이 이스포츠 사업에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투자를 할 수 있게 됐다. 라이엇게임즈 쪽은 리그 가입 조건으로 각 팀에 100억원이 넘는 돈을 내걸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농심은 프랜차이즈 도입과 함께 이스포츠 시장에 뛰어든 대표적 기업이다. 이 회사는 2020년 10월 기존 엘시케이 팀 가운데 하나인 팀 다이나믹스를 인수해 농심 레드포스를 창단했다. 지난 1999년부터 한·중·일 바둑기사가 참여하는 ‘농심 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을 개최하며 중국 사업 진출에 교두보를 마련했던 경험을 살려 이스포츠 투자에 나선 것이다. 농심은 1999년 중국 사업을 본격화한 뒤 20년 동안 중국 매출이 40배(2018년 기준) 뛰었는데, 중국의 인기 스포츠인 바둑을 통해 브랜드를 각인시킨 영향이 크다는 게 회사 쪽 설명이다.
농심 이외에도 케이티(KT)와 한화생명 등이 엘시케이 프로 게임단을 직접 운영하고 있다. 케이티의 경우 ‘스타크래프트’로 대표되는 이스포츠 1차 부흥기였던 지난 1999년 프로 게임단을 만들었다. 케이티 쪽은 “당시 초고속인터넷 서비스 홍보가 한창인 가운데, 사업과 연계된 ‘아이티(IT) 강국’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해 게임단을 창설했다”고 설명했다.
기업이 게임단을 직접 운영하진 않지만, 팀 이름에 사명이나 제품명을 넣는 ‘네이밍 스폰서십’이나 각 팀에 유니폼, 피시(PC), 의자, 차량 등을 지원하는 ‘메인 스폰서십’을 맺는 간접 투자는 더욱 활발하다. 기아(담원 기아)와 광동제약(광동 프릭스), 케이비(KB)국민은행(리브 샌드박스)이 네이밍 스폰서로 팀명과 선수 유니폼 등에 브랜드를 홍보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엘지(LG)전자는 각각 엘시케이 인기 팀인 티원(T1)과 젠지(Gen.G)에 게이밍 모니터를 제공하는 스폰서로 자사 제품을 알리는 식이다. 이밖에도 베엠베(BMW), 비비큐(BBQ), 우리은행 등이 엘시케이 팀 또는 리그 후원에 참여한다.
한편, 2000년대 국내 이스포츠 정착에 크게 기여했던 삼성과 씨제이(CJ)는 지난 2017년 소속 프로게임단을 매각하거나 해체해 게임 팬들의 아쉬움을 남겼다. 삼성은 지난 2000년 프로게임단 ‘삼성전자 칸’을 창설하고 이스포츠계의 올림픽으로 불리던 ‘월드사이버게임즈’(WCG)를 개최했었다. 하지만 이후 게임단을 비롯해 그룹 내 프로 스포츠단 운영을 제일기획에 넘겼고, 2017년 게임팀 ‘삼성 갤럭시’를 미국 이스포츠 전문 업체 케이에스브이(KSV·현재 젠지 e스포츠)에 매각했다. 당시 매각 이유에 대해 제일기획 쪽은 “사업 연관성 등을 고려한 매각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씨제이는 자사의 게임 전문 채널로 출발한 오지엔(OGN·온게임넷)의 엘시케이 중계권이 2015년 라이엇게임즈에 넘어가고, 소속 게임팀이 2부 리그로 강등된 이후 승격하지 못하면서 선수, 코치와 계약을 해지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팀을 해체했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유니폼 몸통엔 팀이름·로고…후원사 최대 2곳 부착 가능
전 세계에 중계되는 엘시케이 선수들의 유니폼과 장비는 규정에 따라 부착할 수 있는 후원사 종류와 로고 개수가 제한된다.
14일 엘시케이 사무국이 펴낸 공식 규정집을 보면, 대회를 주관하는 라이엇게임즈코리아는 청소년에게 유해하거나 미풍양속을 해치는 상품·서비스 제공 기업의 브랜드 노출을 규제한다.
또한 경기 구역에선 자사와 리그오브레전드의 경쟁사 및 경쟁 제품의 브랜드가 표기된 장비 사용을 금지한다. 선수들이 자신이 소속된 팀이 아닌 경쟁팀의 로고나 선수·코치 등의 이름이 적힌 장비를 쓰는 행위 역시 사무국의 재량으로 제한할 수 있다.
홍보 효과가 가장 높다고 할 수 있는 선수 유니폼은 몸통 부분에 팀 이름과 로고가 있어야 하고, 추가로 최대 두 곳의 후원사 브랜드를 노출시킬 수 있다. 다만, 나이키·푸마·르꼬끄 스포르티브 같이 유니폼을 제작한 브랜드를 몸통 좌·우 하단에 드러낼 경우에는 최대 세 곳까지 후원사 로고를 붙일 수 있도록 했다. 독특한 점은 몸통을 제외한 유니폼의 다른 부분에는 팀 재량 아래 제한 없이 로고를 부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엘시케이 스타 ‘페이커’ 이상혁이 소속된 티원(T1) 유니폼의 경우 몸통 전면에 나이키와 에스케이(SK)텔레콤의 구독 서비스 ‘티(T)우주’ 로고를 부착했다. 하지만 유니폼 어깨와 팔 부분에 베엠베(BMW)와 삼성전자, 중국 최대 인터넷 방송 플랫폼 더우위(DOUYU), 레드불 등 10여개 기업 관련 로고가 쓰여있다. 반면, 신생팀인 농심 레드포스의 경우 유니폼 제작사인 르꼬끄를 제외하면 양 어깨에 자사 브랜드의 제품 로고만 부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