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엔지(LNG·액화천연가스)? 안 쓸 수 없죠. 오히려 사용이 늘어날 겁니다.”
한 석유업체 임원은 최근 <한겨레>에 “정권이 바뀌어도 석유와 천연가스 같은 화석연료는 관심 밖의 영역이 될 것 같다”며 이렇게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에 이어 윤석열 당선자의 공약까지도 ‘탈원전이냐 원전이냐’에만 초점을 둘 뿐 화석연료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것에 대한 소외감과 서운함을 털어놓은 것이다.
기후위기 의제가 중요해지면서 화석연료가 설 자리는 빠르게 좁아지고 있다. 하지만 산업계에선 여전히 화석연료를 중요한 에너지원으로 꼽는다. 그 중에서도 엘엔지는 석탄·석유와 비교해 탄소 배출량이 상대적으로 낮아 ‘저탄소’로 가는 길목에선 가장 현실적인 대체 에너지로 평가받는다. 특히 ‘전기화’가 대세인 흐름에서 원전과 별개로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하려면, 그나마 ‘덜 더러운’(환경오염을 덜 시키는) 엘엔지 사용이 불가피하다고 산업계는 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엘엔지는 2020년 기준 전체 발전량의 26.4%를 채워주는 발전원이다. 원자력(29.0%) 발전량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더욱이 엘엔지는 화물차·선박 같은 ‘수송 연료’로도 사용된다. 우리나라는 물론 국제사회에서 화석연료임에도 엘엔지를 ‘녹색 에너지’로 분류한 것도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해서라고 볼 수 있다.
엘엔지 수요는 전 세계적으로도 증가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기준으로 2018년부터는 엘엔지의 사용량이 석탄을 넘어섰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19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석탄과 석유의 소비 비중은 점차 줄어드는 데 비해 엘엔지 사용 비중은 더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러시아 사태는 이를 더욱 분명하게 해줬다. 러시아산 천연가스 공급이 막히면서 여기에 의존하던 유럽 대륙에서 아우성이 터지고 있다. <블룸버그>는 지난 10일 “러시아로부터 가스 공급이 막힌 유럽연합이 한국의 한 해 소비량에 버금가는 엘엔지를 추가로 가져올 새 공급처를 시급히 찾아야 하게 됐다”고 보도했다. “공급 부족으로 엘엔지 가격이 오를 경우, 전기요금이 엄청나게 비싸게 부과될 것이고, 결국 신흥 국가에서 더 더러운 연료(석탄·석유)를 사용하게 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붙였다.
우리나라에선 엘엔지가 석탄·석유를 대체하는 에너지원으로 꼽히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정유사들은 난방·발전 연료로 사용하던 벙커씨유를 탄소 배출이 상대적으로 낮은 엘엔지로 전부 교체했다. 에스케이 이엔에스(SK E&S)는 환경단체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탄소포집저장(CCS) 기술을 도입한 해외 가스전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미래 친환경 에너지로 평가받는 수소 에너지도 현재는 대부분 엘엔지로 만들어낸다. 신재생에너지로 물에서 수소를 추출하는 ‘그린 수소’는 아직 갈 길이 멀고, 전 단계인 ‘블루 수소’ 역시 미완성 기술인 탄소포집저장이 완벽히 구현돼야 가능하다. 수소 연료 발전도 아직은 화석연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뜻이다.
한 정유업체 임원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엘엔지도 석유처럼 결국 놓아야 할 에너지임에는 분명하지만, 아직까지는 엘엔지를 대체할 에너지원이 없는 상황”이라며 “엘엔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거나 탄소 발생량을 줄이는 등의 고민과 지원이라도 해주는, 관심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계속 무관심했다가는 에너지 공급망의 큰 허점으로 부상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엘엔지는 화석연료란 명확한 한계를 지닌다. 점차 엘엔지의 사용량이 늘어나는 상황이 기후위기 측면에서 결코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브릿지 연료’란 이름으로 발전이 더 늘어나는 추세에 대해 경고의 목소리도 크다. 오동재 기후솔루션 연구원은 “현재 존재하는 가스전만으로도 기후위기를 대응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대안 연료란 이유로 발전이 더 늘어나는 것은 문제다”고 말했다.
곽진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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