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체코 두코바니 지역의 신규 원전 입찰이 시작됐다. 미국 웨스팅하우스, 프랑스 이디에프(EDF)와 한국의 한국수력원자력이 입찰에 참여했다. 2011년 9월 체코 두코바니 원전 모습. AP/연합뉴스
미국의 세계적인 원자력발전 기업 웨스팅하우스 사장단이 8일 1박2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았다. 해외 시장 개척을 위해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 등 전력·원자력 기업들을 줄줄이 방문했다. 방한 일정과 목적 등을 떠들썩하게 공개하는 행보를 보이는 게 눈에 띈다. 관련 업계에선 한-미 정상회담의 ‘원전동맹’에 이어 이번에는 양쪽의 해당 업체들이 나서 분위기를 띄우는 모습이란 분석과 함께 “웨스팅하우스 쪽에서는 한국과의 협력이 절실한 상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웨스팅하우스는 1886년 설립된 세계적 원전 기업으로, 원자로·엔지니어링 쪽 원천 기술을 갖고 있다. 하지만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 중인 보글(Vogtle) 원전 3·4호기가 건설비를 계속 까먹으며 가동이 연기되면서 지금은 매물로 던져질 처지다. 2017년 웨스팅하우스를 사들인 ‘브룩스 비즈니스 파트너스’가 지난달 보글 원전 건설비 부담을 들어 웨스팅하우스를 매각하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웨스팅하우스는 최근 수주한 우크라이나 원전에 이어 폴란드·체코 등 동유럽 원전 시장 진출로 반전을 꾀하고 있다.
웨스팅하우스에 한국은 ‘믿음직한 동생’ 같은 존재로 평가된다. 한국 최초 상업용 원전 고리 1호기를 비롯해 고리 2~4호기와 한빛 1·2호기 등 국내 원전 산업 육성 초기에 해당하는 1990년대 이전 지어진 원전 대부분이 웨스팅하우스의 기술 도움을 받아 지어졌다. 다른 원전들도 미국의 기술 지원에 의존해왔다. 정동욱 한국원자력학회장(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은 “한·미 원전은 동유럽 시장 등에서 서로 경쟁하면서도 협력해야 하는 미묘한 관계, 즉 형과 동생 같은 관계”라며 “한국이 독자 기술로 국외 원전시장에 진출하면 좋지만, 기술 특허 소송 등의 논란이 커질 우려가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다. 서로 협력할 분야를 조율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웨스팅하우스가 한국 쪽에 원전 공정 관리나 건설·기계 분야의 협력을 요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원전 설계 관련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경영 성과가 좋지 않은 웨스팅하우스로서는 원전을 꾸준히 가동·운영하며 관리 노하우를 축적해온 한국 원전 운영사와 건설업체들의 협력이 절실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박종운 동국대 교수(에너지·전기공학 전공)는 “웨스팅하우스가 해외 진출을 꾀하면서 경험 부족으로 자신없어 하는 건설 기술이나 기계·배관 쪽에선 한국의 도움을 받기 위해 사장단이 직접 한국을 찾았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말했다.
앞서 아랍에미리트 원전 건설 경험을 가진 현대건설은 지난달 24일 웨스팅하우스와 대형 원전의 글로벌 사업 공동 참여를 위한 상호 독점적 협력과 무탄소 사업영역 확장 등을 뼈대로 하는 전략적 협약을 체결했다. 현대건설은 <한겨레>에 “웨스팅하우스가 협력에 적극적이다”라며 “앞으로 사업 방향이 구체화되는대로 세부내용을 채워갈 계획”이라고 답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다른 원전 설비기업 관계자는 “웨스팅하우스가 원전 시장에서 경쟁력을 많이 잃었다. 한·미 정상이나 양국 업계의 만남 자체로 국외 시장 수주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해외 수주를 위해 서로 노력하자고 ‘군불’을 때는 모습들이 한국 건설·설비 업계에도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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