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2018년 3월 중국 시안공장의 새 메모리 제2라인 기공식을 갖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미국 정부가 중국을 대상으로 한 반도체 장벽 수위를 높이면서 중국 현지에 진출한 삼성전자와 에스케이(SK)하이닉스도 영향권에 들게 됐다는 평가다. 우리 정부와 국내 반도체 업체들은 “당장은 영향이 크지 않다”고 평가하지만, 인공지능(AI)이나 고성능 컴퓨팅 등에 쓰이는 시스템 반도체와 관련 장비뿐만 아니라 메모리 반도체 및 장비도 규제에 포함돼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이다. 미국이 우리나라 기업들이 가동하는 중국 반도체 공장의 기술 수준을 결정할 수 있게 된 탓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 강화에 대한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애로 사항을 논의하기 위한 ‘한-미 수출통제 워킹그룹’ 회의를 곧 열 예정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10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워킹그룹 회의 일정을 논의 중”이라며 “(중국 현지 한국 기업 사업장 등에서) 당장 오퍼레이팅(운영)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는 게 미국 입장인데, 앞으로 업그레이드(시설이나 장비 수준 격상)할 때는 불확실성이 제기될 수 있어 그런 부분들을 명확하게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산업부는 지난 8일 내놓은 미국의 중국 대상 반도체 기술·장비 수출 통제 조처 관련 설명자료에서 “수출 규제 대상인 ‘첨단 컴퓨팅칩’은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아 단기적 영향은 없을 것”이라며 “슈퍼컴퓨터에 사용되는 제품의 경우에도 규제 대상인 슈퍼컴퓨터가 극소수에 불과해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중국에 진출한 국내 반도체 기업 공장은 중국 기업과 달리 사안별 검토 대상으로 분류돼 장비 공급에 큰 지장은 없을 전망”이라고 밝혔다.
국내 반도체 업계 설명도 이와 비슷하다. 한 반도체 업체 관계자는 “중국에서 운영 중인 공장에 장비를 공급하는데 당장은 큰 지장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SK하이닉스가 2019년 4월 중국 우시공장 생산라인 확장 준공식을 갖고 있다. SK하이닉스 제공
미 상무부가 지난 7일 발표한 대중국 반도체 수출 제한 조처를 보면, 메모리 반도체 가운데 디(D)램은 18나노(㎚·10억분의 1m) 공정을, 낸드플래시는 128단을 기준으로 이보다 앞선 공정을 위한 장비에 대해서는 중국 쪽에 수출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디램은 17나노 공정을 추진 중인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가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만, 에스케이(SK)하이닉스(우시공장)도 향후 공정 개선에 필요한 장비를 도입하려면 미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낸드플래시도 중국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뿐만 아니라 삼성전자(시안공장), 에스케이하이닉스(다롄공장)도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특히 에스케이하이닉스는 인텔 낸드 사업 인수 뒤 지난 3월부터 다롄공장에 새 생산라인을 구축 중이다.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불안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미국 정부 허가를 받으면 첨단 장비도 들여올 수 있지만, 시간이 걸리는데다 향후에도 계속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는 한 증권사 분석가는 “중국에 투자하는 한국 기업들의 공정 기술 수준을 미국 정부가 결정하게 됐다”며 “미국이 한국 기업들에 중국 생산라인을 계속 업그레이드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판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반도체 업체 관계자는 “미국의 이번 조처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불투명한데다 더 강화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어 불확실성이 더 커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미국 반도체 업체들은 자국 내 생산시설 확장에 전념 중이다. 마이크론은 향후 20년 동안 뉴욕에 1천억달러를 투자해 첨단 메모리반도체 공급을 위한 메가팹(fab)을 건설하겠다고 지난 4일 밝혔다. 앞서 이 업체는 150억달러를 투자해 메모리 반도체 생산시설을 증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인텔은 2025년까지 200억달러를 들여 미국 아이다호에 파운드리 공장을 짓기로 하고, 지난 달 착공식을 가졌다. 이 때문에 미국 정부가 자국 기업들을 위한 보호 조처를 강화할 수 있다는 전망마저 나온다.
증권사 분석가는 “윤석열 정부 출범 뒤 마련된 반도체 인재 양성 등 반도체산업 육성 방안은 이런 국제적인 흐름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정부 방안을 새롭게 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김영배 선임기자
kimyb@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