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5일 삼성전자를 시작으로 주요 기업들이 3월 정기 주주총회를 열 계획인 가운데 올해도 부적절한 사외이사 후보들이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유죄 판결을 받거나 총수 일가와 친분, 소송 대리 등 전력으로 사외이사로서 독립적인 지위를 갖기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을 받는 이들이다.
1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보면, 효성중공업은 이번 주총에서 신임 사외이사로 최윤수 전 국정원 2차장을 선임할 계획이다. 그는 박근혜 정부 때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만드는 데 관여해 지난해 12월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이후 형 확정 12일 만에 특별사면을 받았다.
오리온 사외이사 후보인 노승권 변호사는 이른바 ‘돈봉투 만찬’에 연루돼 입길에 오른 바 있다. 그는 서울중앙지검 1차장 시절 당시 안태근 법무부 검찰국장에게 다른 검사들과 함께 격려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강정민 경제개혁연대 연구위원은 “법적 문제는 없다지만 도덕성에 흠집이 있는 인물을 사외이사로 앉히는 것은 기업 경영에 도움이 되지 않고 준법 경영에 의구심만 들게 한다”고 말했다. 효성중공업과 오리온은 “법률 전문성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추천 이유로 밝혔다.
기아자동차의 사외이사·감사 후보인 전찬혁 세스코 회장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의 친분이 문제로 꼽힌다. 전 회장은 정 회장의 고려대 경영학과 1년 선배다. 둘은 고려대 경영대 교우회 부회장을 함께 맡고 있다. 기아차는 “전 후보가 세스코의 성장을 이뤄냈고, 이를 기반으로 미래 성장에 필요한 새로운 시각과 의견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삼성엔지니어링의 김용대 사외이사 후보는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낸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기각한 판사 출신이다. 또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의 이혼소송 항소심을 맡기도 했다.
효성의 사외이사 후보인 김소영 전 대법관은 법무법인 김앤장에 재직하고 있어 독립성에 의심을 받는다. 김앤장은 효성이 2018년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부당지원 및 사익편취 혐의로 고발 당한 뒤 소송을 대리했고, 조현준 회장 등 총수 일가의 세금 소송도 도맡았다.
강정민 연구위원은 “사외이사는 상법상 충실의무를 지게 되고 회사의 이익을 총수나 경영진의 이익보다 앞서 고려해야 한다. 총수나 경영진과의 친분 등으로 선임이 되면 독립성은 신뢰받기 힘들다”고 말했다.
공직을 그만둔 지 얼마 안돼 바로 사외이사를 맡으려는 경우도 있다. 제주항공과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각각 조남관 전 법무연수원장과 안도걸 기획재정부 전 차관을 사외이사로 추천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공직에서 물러났는데 1년도 안돼 사외이사를 맡는 셈이다.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심사를 통과했지만 사실상 바로 사외이사를 맡는 사례여서 좋지 않은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이런 경우는 향후 ‘회전문 인사’로 이어질 소지도 있다. 윤석열 정부에서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한화진 환경부 장관 등은 모두 사외이사 전력으로 이해상충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 이창양 장관은 에스케이(SK)하이닉스와 엘지(LG)디스플레이에서, 박보균 장관은 신세계인터내셔널, 한화진 장관은 삼성전자에서 사외이사를 지내, 인사청문회에서 이해상충 문제가 제기된 바 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안태호 기자
eco@hani.co.kr 유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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