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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산업·재계

“잃어버린 소리의 세계 찾아드립니다”

등록 2005-11-03 18:10수정 2005-11-03 18:10

20년을 소리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청각 도우미견’ 훈련사 이미란(가운데)씨가 박성애, 이정란(왼쪽부터)씨와 함께 지난1일 경기도 용인시 포곡면 삼성에스디아이 도우미견센터 실내훈련장에서 도우미견을 안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용인/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20년을 소리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청각 도우미견’ 훈련사 이미란(가운데)씨가 박성애, 이정란(왼쪽부터)씨와 함께 지난1일 경기도 용인시 포곡면 삼성에스디아이 도우미견센터 실내훈련장에서 도우미견을 안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용인/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삼성SDI 청각 도우미견 분양사업

이미란(27)씨는 청각장애인이다. 일곱살 때 심한 열병을 앓고 난 뒤 20년을 소리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현재 그의 직업은 ‘장애인 보조견’ 훈련사. 그것도 자신과 같은 처지의 농아인들에게 소리의 세계를 알려주는 ‘청각 도우미견’ 훈련사다.

지난 1일 경기도 용인의 삼성에스디아이 도우미견센터에서 이씨는 이제 막 입소한 두살배기 ‘보미’와 씨름하고 있었다. 한달 전 청각장애를 지닌 30대 주부에게 보조견 한마리를 분양한 뒤 두번째로 맡은 훈련견이다.

자명종 울면 침대로·노크할땐 문앞에…
버려진 개들중 선발해 6개월간 맹조련
청각장애인들이 직접 훈련사 활약도
“바깥세상 보낼땐 딸 시집보내는 심정이죠”

이곳에서 청각 도우미견이 되기 위해 맹훈련을 받는 개들은 대부분 주인한테서 버림받은 ‘유기견’(버려진 개)들이다. 비록 네발로 걷는 동물이지만, 몸과 마음에 상처가 없을 수 없다. 거리에서 가끔 보는 것처럼 시각장애인을 돕는 안내견은 대부분 커다란 몸집에 잘생긴 외모를 갖고 있다. 그러나 청각 도우미견은 따로 정해진 품종이 있는 건 아니라고 한다. 소리에 대한 반응이 좋으면 일단 자격이 된다. 도우미견은 전국의 동물보호소에 있는 개들을 대상으로 1000 대 1의 경쟁률 속에 엄격한 검사를 거쳐 선발한다. 훈련은 소리, 복종, 사회화 과정으로 나눠 6개월 동안 체계적으로 이뤄진다. 소리 훈련은 여러 종류의 소리를 듣고 주인에게 알려주는 연습이다. 자명종, 초인종, 노크, 팩스, 아기 울음, 화재경보, 자동차 경적 등 10여가지 소리는 청각 도우미견이 기본적으로 익혀야 할 것들이다. 복종 훈련은 농아인을 위해 손동작(수화)을 활용한다.

“훈련견을 바깥 세상에 내보낼 때는 항상 아쉬워요. 좀더 완벽하게 훈련시켜 내보내야 하는데, 딸을 시집 보내는 어머니 심정이랄까 그런 마음이 들죠.”

이씨 역시 2년 전 똑같은 방식으로 훈련 받은 청각 도우미견 ‘하늘’이를 분양 받아 단둘이 살고 있다. 성인이 될 때까지 줄곧 의지해왔던 부모 곁을 떠나 독립할 수 있었던 것도 하늘이 덕분이다. 하늘이는 시계 알람이 울리면 침대 위로 올라와 깨워주고, 초인종 소리가 나면 현관문을 오가며 인기척을 알린다. 물이 끓는 소리도 알아서 척척 전해준다. 그는 “하늘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아침 약속이 있는 날은 전날 밤잠을 제대로 못 잘 정도로 불안했는데, 이제는 마음놓고 잠잘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같은 청각 도우미견 훈련사인 박옥경(26)씨도 청각장애인이다. 박씨는 이날 아침 대구 농아인협회에서 마련한 도우미견 설명회에 참석하기 위해 자리를 비웠다. 사흘 일정으로 대구를 거쳐 전남 순천 등을 돌며 도우미견 분양 신청을 한 청각장애인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하고 돌아올 예정이다. 입사 동기인 이들은 2003년 2월 인터넷 사이트를 보고 지원해 2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입사했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청각장애인들에게 인터넷은 가장 빠르고 유용한 정보 매개체가 된 지 오래다. 11년차 선임 훈련사인 박성애 주임은 “장애인 보조견을 장애인 훈련사가 반드시 맡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청각 도우미견의 경우 건청인(청각장애가 없는 일반인)보다 훨씬 이해심이 깊어 오히려 일반 훈련사들이 옆에서 배우고 훈련 때 적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삼성에스디아이가 지난 2002년 말부터 동물을 활용한 사회공헌 활동의 하나로 청각 도우미견 분양사업에 나선 이후 청각장애인을 위해 활동 중인 도우미견은 현재 21마리다. 미국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안내견이 1만마리에 이르고, 청각 도우미견만 2천마리가 활동 중인 것에 견주면 아직 부족한 수준이다.

현재 청각 도우미견을 기다리고 있는 청각장애인들은 50명을 넘는다. 그러나 현재 센터에서 훈련 중인 개는 10마리뿐이다. 훈련이 끝난 개는 농아인들에게 선착순으로 무료로 분양된다. 분양 소식이 알려진 뒤로 신청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인증한 국내 장애인 보조견 양성기관이 이곳을 포함해 3곳뿐이어서, 청각 도우미견은 많아도 20마리를 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천동락 삼성에스디아이 인사팀 상무는 “청각 도우미견 양성 사업은 잃어버린 소리의 세계를 찾아주는 선진국형 사회공헌 활동의 하나”라며, “길을 잃거나 버려지는 유기견 문제에 대한 하나의 해법도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용인/홍대선 기자 hongd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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