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보수우익 단체들의 명단(화이트리스트)을 작성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재벌기업에 지원을 요구한 혐의가 특검 수사에서 속속 드러났다.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 모습.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삼성전자 등 삼성그룹 계열사들이 6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서 탈퇴했다. 청와대의 요구로 보수·우익단체들에 25억여원을 직접 지급한 사실이 <한겨레> 보도로 드러나고, 최대주주 격인 삼성을 필두로 한 ‘엑소더스’가 본격화하면서 전경련의 존립 기반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삼성전자·삼성에스디아이(SDI)·삼성디스플레이는 이날 전경련에 탈퇴원을 제출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다른 계열사들도 곧 탈퇴원을 제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용 부회장이 사내이사로 있는 삼성전자 등이 탈퇴원을 내면서 삼성물산·삼성중공업·삼성생명 등 나머지 계열사들도 조만간 탈퇴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이 부회장이 지난해 12월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이미 탈퇴를 약속한 바 있지만, 삼성그룹이 탈퇴를 결행한 것은 파장이 크다. 전경련은 삼성그룹 창업자인 이병철씨가 박정희 정권 당시인 1961년 주도해 창립한 단체인데다, 전경련 전체 회비에서 삼성이 내는 규모가 4분의 1가량이나 된다. 상징성이나 물적 토대 측면에서 큰 타격을 입게 되는 셈이다.
삼성의 이탈이 확정되면서 추이를 관망하던 다른 기업들도 속속 탈퇴 행렬에 동참할 것으로 보인다. 4대 그룹 가운데 엘지(LG)그룹은 지난해 12월 탈퇴했고, 에스케이(SK)그룹 역시 회비 납부를 중단하는 등 전경련 활동에 일절 참여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은 6일 임원 인사가 끝나면서 곧 입장을 정리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 4대 그룹은 2015년 기준으로 전경련의 전체 연간회비 492억원 가운데 77%가량인 378억원을 부담했다.
재계 5위인 롯데그룹 관계자는 “탈퇴와 관련해 논의한 바 없다”면서도 “주요 기업들이 탈퇴해 조직 자체의 대표성이 약화되면 다시 (탈퇴)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말 이미 탈퇴 의사를 밝힌 케이티(KT) 관계자는 “탈퇴원을 낸 곳 모두 전경련에서 행정처리를 해주지 않고 붙들고 있으나 큰 의미는 없는 듯하다”고 전했다. 한국전력공사 등 공공기관들은 지난해부터 탈퇴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전경련은 후임 회장을 찾는 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르·케이(K)스포츠 재단에 재벌기업들이 774억원을 출연하는 데 직접 관여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전경련 허창수 회장과 이승철 부회장이 이달 열릴 예정인 정기총회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전경련은 재계 내부에서는 후임 회장 적임자를 찾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고 경제부총리 등 전직 고위 관료들을 대상으로 의사를 타진했지만 이들은 모두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경련이 자체 준비하는 쇄신안도 후임 회장이 결정되지 않으면서 표류하고 있다. 전경련 관계자는 “전임 집행부가 쇄신안을 결정해버리고 후임자에게 이를 맡길 수 없다. 후임 회장이 결정돼야 쇄신안도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완 이충신 김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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