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핵발전소가 미국·일본 등과 달리 지진에 견딜 수 있는 ‘내진설계’의 기준이 상당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주 사례처럼 핵발전소 부근에서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상황에서 효과적인 대비를 위해 내진설계기준을 새로 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추혜선 의원(정의당) 요청으로 석광훈 에너지시민연대 정책위원이 작성한 ‘원전 내진설계 규제관련 해외사례와 국내정책개선대안’ 보고서를 보면,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은 최대지반가속도 0.2g의 경우 지진 규모 6.5를, 0.3g은 규모 7을 견딜 수 있다고 보고 핵발전소의 내진설계를 적용하고 있다. 최대지반가속도는 지진파에서 측정하는 최대가속도로 중력가속도(g) 단위로 나타낸다. 최대지반가속도가 클수록 지반의 흔들림이 심하다는 뜻이다. 문제는 지진 규모와 내진설계기준을 결정하는 최대지반가속도가 꼭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2007년 일본 니가타 지진의 규모는 6.8이었지만, 최대지반가속도는 0.69g이었다. 지난해 9월12일 경주에서 발생한 규모 5.8의 지진 역시 진앙지에서 22㎞ 떨어진 월성원자력발전본부에서는 최대지반가속도가 0.12g이었지만, 진앙지 주변(약 8㎞ 인근)에서는 최대지반가속도가 0.59g를 기록했다. 이런 상황인데도 국내 핵발전소 내진설계기준은 핵발전소 부지 지하가 진앙지라는 전제 아래 작성돼 다양한 가능성에 대처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일본에서 지난 10년 동안 핵발전소 근처에서 발생한 지진을 살펴보면, 규모 7 이하의 지진에서도 핵발전소에서 측정된 최대지반가속도가 최대 0.69g로 나타나 우리 정부의 내진설계기준과 큰 거리를 보인다.
이미 미국과 일본의 핵발전소는 단순한 내진설계기준에서 벗어나 주변 환경을 반영해 우리보다 높은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보고서는 “일본에서는 1995년 고베 대지진이 벌어진 뒤 원자력안전보안원(NISA)에서는 내진설계기준을 재평가하고 보강했으며, 미국에서도 디아블로 캐년·노스안나 핵발전소가 단순한 내진설계기준으로 활성단층을 평가해 지진위험을 저평가했다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경우 핵발전소 내진설계심사지침에 활성단층 기준을 강화하고 지질조사 범위를 넓히는 등으로 기준을 강화해, 규모 7.0 이하로 예상되는 지진에 대비하는 최대지반가속도를 0.46∼0.75g으로 보강했다. 우리의 0.3g보다 두배가량 높은 수준이다. 석광훈 정책위원은 “신뢰할 수 있는 내진설계기준을 설정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지진) 규모가 아니라 핵발전소 부지주변 30㎞ 활성단층, 지진전파경로, 해역단층, 지질구조 등을 정밀하고 객관적으로 조사해 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지난해 12월 정부가 앞으로 만들게 될 신규 핵발전소의 내진설계기준을 최대지반가속도 0.5g까지 강화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서는 “가동 중인 핵발전소를 포함해 전체적으로 0.6g까지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추혜선 의원 역시 “원전별 부지의 특성이 상이하므로 부지특성에 따라 내진설계기준을 반영해야 하고, 최근 강화된 해외의 내진설계기준 등을 고려해 기준조정 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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