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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산업·재계

사조그룹 ‘편법 승계’…기업 규모 작으면 괜찮을까요?

등록 2017-10-29 11:12수정 2017-10-29 16:28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경제부에서 유통 분야를 맡고 있는 김소연입니다. 유통 담당 기자는 맡고 있는 분야가 굉장히 넓습니다. 백화점, 마트, 쇼핑몰, 면세점, 전통시장, 프랜차이즈 등 대부분 소비와 관련된 곳입니다. 유통 담당 기자를 하면서 버릇이 하나 생겼습니다. 물건을 사거나 음식을 먹을 때 해당 기업의 정보를 찾아보곤 합니다. 주주 구성, 계열사, 매출, 내부거래 비중, 임금과 비정규직 비율 등을 주로 봅니다. 어렵지 않아요. ‘다트’라고 부르죠.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fss.or.kr)에 들어가면 보석 같은 정보가 널려 있습니다.

요즘 특히 관심을 가졌던 곳은 자산 1조~5조원 사이의 중견기업입니다. 제가 맡고 있는 유통 부문엔 중견기업이 많거든요. 기업들이 편법을 쓰지 않고 제대로 낼 거 내면서 공정한 경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제가 쓴 돈으로 이득을 챙기는 기업이 ‘건강한 곳’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거든요. 경제주체 중 하나인 기업의 경영 방식은 우리 사회에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중견기업의 지배구조와 재무제표를 보면서 실망이 컸습니다. 세금 내지 않고 편법으로 자녀에게 회사를 물려주거나, 공정한 경쟁보다 계열사끼리 내부거래를 통해 쉽게 ‘부’를 늘리는 기업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재벌들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었던 셈이죠.

사조는 36개 계열사를 거느린 자산 3조원대 중견기업으로,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계열사 지배라는 편법으로 오너 3세 승계가 이뤄졌다. 사조그룹 누리집
사조는 36개 계열사를 거느린 자산 3조원대 중견기업으로,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계열사 지배라는 편법으로 오너 3세 승계가 이뤄졌다. 사조그룹 누리집
지금 소개할 사조그룹도 ‘편법’ 쪽에 있는 기업입니다. 사조 아시죠? 참치캔, 맛살, 어묵, 식용유 등을 파는 기업입니다. 사조는 36개 계열사를 거느린 자산 3조원대 기업입니다. 경영권은 오너 2세인 주진우 사조산업 회장이 갖고 있고요. 지분으로 보면 주 회장의 장남 주지홍(40) 사조해표 상무로 승계가 완료된 상태입니다. 지난해 승계 작업이 마무리됐으니까 30대에 3조원대 기업을 물려받은 셈입니다. 세금은 제대로 냈을까요? 상속 및 증여는 사실상 불로소득에 가까워 그 규모가 30억원이 넘으면 세율이 50%로 높습니다. 하지만 주 상무는 돈 한 푼 내지 않고 사조를 ‘꿀꺽’ 먹습니다. 대기업이 자주 쓰는 방법인데요. 사조에서 핵심 기업은 사조산업입니다. 매출도 가장 많고, 대부분의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즉 사조산업의 최대 주주가 되면 사조 전체를 장악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사조산업의 최대 주주는 아버지 주 회장이었습니다. 원칙대로 하자면 아버지 주식을 아들인 주 상무가 물려받으면 되는데, 세금을 많이 내야 하거든요. 계산해보니 240억원 정도 됩니다. 사조는 세금을 내지 않는 편법을 선택하죠. 주 상무는 자신이 최대 주주로 있는 사조시스템즈를 앞세워 회사 돈(480억원)으로 사조산업의 주식을 삽니다. ‘주지홍 상무→사조시스템즈→사조산업→사조해표·사조대림·사조씨푸드 등 계열사’로 이어지는 구조가 된 겁니다. 사조시스템즈는 경영을 잘해서 키운 회사도 아니에요. 부동산 임대업, 용역·경비업, 전산 등의 일을 하는 비상장 회사인데, 사조 계열사로부터 일을 받아 매출을 올렸습니다. 앉아서 쉽게 돈 벌고, 그 돈으로 3조원대 회사 ‘주인’이 된 거죠. 오너들의 ‘자금줄’ 구실을 하는 ‘일감 몰아주기’가 문제입니다. 지배주주의 사익 추구나 편법 승계에 이용되고, 다른 기업들이 경쟁에 참여하는 것을 막습니다. 한마디로 ‘나쁜 짓’입니다.

왜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내·외부 견제가 취약하기 때문입니다. 사조만 봐도 회사 일을 결정하는 이사회의 경우 7명의 등기임원으로 구성돼 있는데 사내이사 4명 중 주 회장과 87살의 모친도 포함돼 있습니다. 사외이사 3명 중 2명은 사조그룹 출신입니다. 내부 견제가 전혀 안 되는 거죠. 제도도 미흡합니다. 정부가 영향력이 크다며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는 규제하고, 자산 5조원 미만은 사실상 방치하고 있습니다. 기업들 사이에서는 자산 5조원만 넘지 않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인식이 팽배합니다. 사조뿐만 아니라 웬만한 중견기업은 일감 몰아주기를 하고 있습니다. 매출의 100%를 내부거래하는 극단적 기업도 있습니다.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만 ‘나쁜 짓’이고 중견·중소기업의 일감 몰아주기는 ‘착한 짓’인 건 아닙니다. 영향력의 차이일 뿐이죠. 사조는 편법승계 논란 등에 대해 “특별히 할 말이 없다”며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상황만 놓고 본다면 사조 스스로 변하긴 힘들 것 같습니다. ‘편법’이 판을 치면, 원칙을 지키려는 기업은 ‘바보’가 됩니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모든 기업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김소연 경제에디터석 산업팀 기자 dandy@hani.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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