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4위 반도체 회사이자 와이파이 칩 전문업체인 싱가포르의 브로드컴이 세계 3위 반도체 업체이자 이동통신 칩 전문업체인 퀄컴을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성사되면 삼성전자·에스케이(SK)하이닉스·엘지(LG)전자 등 국내 반도체·휴대전화 업체들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5일 <블룸버그> 등 외신 보도를 보면, 브도르컴이 퀄컴을 1천억달러(111조5천억원)에 인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익명의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브로드컴이 주당 70달러에 퀄컴을 인수하는 내용의 제안서를 작성해 자문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 거래가 성사되면 반도체 시장에서는 역대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 사례가 된다.
애초에는 아시아 기업(브로드컴)이 미국의 핵심 첨단 기술을 가진 퀄컴을 인수하려는 것에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으나 브로드컴이 4일(현지시각) 본사를 미국으로 옮기겠다고 발표하면서 해소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브로드컴 최고경영진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인수합병을 성사시켰고, 미국 공정위가 두 업체의 합병에 대해 시장 독과점 문제를 제기하지 않기로 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브로드컴과 퀄컴은 이런 보도에 대해 아무런 코멘트도 하지 않고 있다.
인수합병 추진 보도가 나온 직후 뉴욕 증시에서 퀄컴 주가는 19%까지 급등했다가 13% 상승으로 장을 마감했다. 이로써 퀄컴의 시가총액은 910억달러까지 치솟았다. 브로드컴 주가도 5.5% 상승하면서 시가총액이 1120억달러에 달했다. 지난해 싱가포르의 아바고 테크놀리지가 370억달러에 인수한 브로드컴은 2016년 매출액 기준으로 세계 반도체 기업 가운데 인텔, 삼성전자, 퀄컴에 이어 4위를 기록했다. 특정 용도(와이파이) 반도체 칩 기준 시장점유율은 50%에 달했다.
퀄컴은 삼성전자·엘지전자 스마트폰과 애플의 아이폰 등에 이동통신·애플리케이션 칩을 공급하면서 성장해왔다. 하지만 최대 고객인 애플과 특허료 분쟁으로 소송을 벌이고, 중국·한국·대만 등지에서 불공정 행위를 한 혐의로 거액의 과징금과 피해보상(업계 추산 약 5조원)을 해야 할 처지로 몰리는 등 위기를 맞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달 말 애플이 내년부터 퀄컴 칩 대신 인텔 등 다른 회사의 칩을 사용할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블룸버그>는 “브로드컴이 퀄컴을 인수할 경우 애플과의 분쟁을 해소할 수 있는 실마리를 마련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브로드컴의 매출은 150억달러로 퀄컴(154억달러)을 인수해도 삼성전자(403억달러)를 뛰어넘지는 못한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호황으로 격차는 더 벌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브로드컴이 무선랜·이동통신 칩에 이어 앞으로 시장이 빠르게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서도 강자로 부상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퀄컴이 지난해 근거리통신(NFC) 칩 등을 공급하는 엔엑스피(NXP)를 인수했는데, 엔엑스피가 2015년 인수한 프리스케일이 자동차용 반도체 시장의 선두를 달리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는 국내 업체들이 신성장동력으로 꼽고 있는 제분야이다.
삼성전자·엘지(LG)전자 등 우리나라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이 퀄컴과 맺은 이동통신 칩 라이선스 사용료 정책도 달라질 수 있다.
국내 업체들은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두 회사의 시너지 효과,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 능력, 퀄컴이 왜 매각되는지 등이 의심스럽다. 다만, 두 업체가 소송까지 벌였던 특허 문제 해소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