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로 이달 중 발의 예정인 ‘규제 샌드박스 4법’을 둘러싸고 ‘행정부에 과도한 규제 면제 권한이 생기는 것’이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규제 샌드박스(sandbox·모래밭)는 신기술 기반 사업을 하는 기업들에 한해 기존 법령 및 규제를 따르지 않아도 되는 제도다. 규제 면제가 적용되는 샌드박스 크기(기간·지역)를 정하고 최종적으로 사업자에게 ‘실증 특례’ 등을 부여할 권한이 산업통상자원부 등 3개 부처 장관 또는 국무총리에게 주어진다. 실증 특례는 제품 서비스의 안전성과 수요를 검증하기 위해 제한된 기간·지역에서 규제를 적용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26일 <한겨레>가 입수한 산업융합촉진법 개정안, 지역특구법 개정안, 금융혁신지원특별법안과 지난해 11월 발의된 정보통신융합법을 종합하면,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블록체인 등 신기술을 이용해 제품·서비스를 개발 및 출시하려는 기업이라면 안전성과 시장수요를 실증하기 위한 ‘특례’ 또는 시장 출시를 위한 ‘임시허가’를 받을 길이 열린다. 특히 실증 특례의 경우 기존 법령의 ‘공백’뿐 아니라 법령 ‘불허’ 사업이더라도 정부 심의만 통과하면 얻을 수 있다. 당·정은 이런 내용의 샌드박스 4개 법을 27일 공개하고 이달 안에 발의할 예정이다. 산업융합법을 예로 들면, 인공지능 등을 활용해 새로운 바이오헬스케어 사업을 하려는 기업이나 자율주행차·드론·스마트시티 등의 신산업을 하려는 기업은 산업부 장관에게 기존의 의료법이나 도로교통법상 규제를 일부 또는 전부 면제해 달라는 특례를 신청할 수 있다. 그 뒤엔 산업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산업융합발전위원회가 사업자가 제출한 안전사고·소비자 피해 등에 대한 배상 방안과 해당 제품·서비스의 혁신성, 안전성 등을 종합 심사한 뒤 특례를 허용할 기간과 지역을 정한다. 최종 특례 부여 권한은 장관에게 있다. 정보통신융합법은 과기부 장관, 지역특구법은 국무총리, 금융혁신지원법은 금융위원장이 최종 결정권자다.
정부·여당이 이런 법안을 준비한 것은 기존 법·제도의 변화 속도가 기술발전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서다. 그러나 자칫 정부가 특례를 남용하면 국민 안전·생명이나 개인정보 보호 등에 꼭 필요한 규제마저 풀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여당 관계자는 “하나의 법이 금지한 것을 다른 법이 풀어주는 예외적 상황이 너무 광범위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여당 안에서도 있는 게 사실”이라며 “이런 문제 제기에 대해 정부는 특례 남발을 방지할 정교한 장치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실제론 법안에 그런 것이 담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4개 법안에 담긴 안전장치는 ‘국민의 생명·안전·환경·사생활’이나 ‘지역균형 발전’을 해할 우려가 있거나 금융시장의 질서를 저해할 우려가 있으면 특례를 줄 수 없다는 조항으로, 자의적인 해석이 가능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최하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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