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아들인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이 14일 현대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했다. 부회장으로 승진한 지 9년 만이다. 정 수석부회장이 현대차그룹의 유일한 승계자로서 그룹 내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하고, 확고한 ‘2인자’로서 기아차를 포함해 전체 계열사를 대상으로 한층 더 폭넓은 경영 보폭을 보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현대차그룹은 14일 “현대차 정의선 부회장을 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으로 임명했다”며 “정 수석부회장은 정 회장을 보좌하며, 주요 경영 사안을 결정 또는 보고하는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차 관계자는 “정 수석부회장은 각 부회장들에게서 보고를 받고 정몽구 회장에게 보고를 하는 보좌 역할과, 글로벌 통상 문제나 신흥시장에서의 판매 확대 등 닥친 현안에 신속하게 대처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고 설명했다. 정 수석부회장은 1999년 현대자동차 이사로 경영 참여를 시작한 뒤 2001년 상무에서 전무로, 2003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2005년부터는 기아자동차 사장으로 있다가 2009년 현대차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정 수석부회장은 이번 승진으로 앞으로는 현대차는 물론이고 기아차, 현대제철, 현대건설, 현대엔지니어링, 현대모비스 등 그룹 내 모든 계열사 경영에 관여할 수 있게 됐다. 직급이 총괄 수석부회장으로 부회장보다 높아, 윤여철·양웅철·권문식·김용환 현대·기아자동차 부회장과 우유철 현대제철 부회장,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등 7명의 부회장을 지휘할 수 있다. 총괄 수석부회장은 이번에 신설됐다.
이에 현대차그룹이 ‘3세 경영 체제’에 한발 더 다가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금까지도 정 수석부회장은 현대차의 미래차 투자 등 주요 경영상황을 폭넓게 챙겼지만, 이번 승진으로 명실상부한 정몽구 회장에 이어 회사 경영을 걸머질 ‘2인자’로서 그룹경영 전반에 직접 관여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정 수석부회장은 최근 정몽구 회장의 공식적인 외부 일정이 사라진 사이 주요 신차 발표회 자리나 행사장에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헤지펀드 엘리엇이 현대차그룹이 추진했던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 분할·합병 방식에 반대한 끝에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좌초됐던 지난 5월에는 직접 입장을 발표하고, 지난 7일 인도에서 열린 ‘무브 글로벌 모빌리티 서밋’에서 회사 비전을 밝히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인사로 경영권 승계가 언제 결정되더라도 혼란이 발생하지 않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현대차 쪽은 이번 인사를 승계와 연관짓는 것에 손사래를 친다. 현대차 관계자는 이번 인사의 취지에 대해 “신속한 현안 조율을 통해 의사결정 속도를 끌어올리고, 불확실한 미래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려는 정몽구 회장의 결단”이라며 “수석부회장 직위 신설과 정 부회장 승진은 정몽구 회장이 계속 경영을 해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현대차 다른 관계자는 “정 수석부회장으로의 승계가 기정사실인 상황에서 굳이 승계를 위한 승진 인사를 할 필요가 있냐”고 말했다.
최하얀 기자
ch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