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화전동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 저유소에서 공사 관계자 등이 화재 현장을 조사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지난 7일 폭발 화재가 발생한 경기도 고양시 저유소 옥외탱크와 관련해, 대한송유관공사가 안전점검을 부실하게 해왔다는 논란이 커지고 있다. 송유관공사가 정부에 제출한 자체 점검 문서에는 유증기 환기구 인화방지망의 상태가 ‘양호’하다고 기록돼 있지만, 경찰 조사 결과 인화방지망들이 찢기거나 나사가 풀려있고 건초가 잔뜩 붙어있는 등 부실한 상태인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안전점검 권한을 사업자에게 과도하게 부여한 위험물안전관리법의 구멍이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한겨레>가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의원을 통해 입수한 ‘대한송유관공사 예방규정’과 2016∼2018년 고양소방서의 고양저유소 소방점검 결과 등을 종합하면, 송유관공사 경인지사는 자체 점검문서를 통해 인화방지망 상태가 ‘양호’하다고 소방서와 경기도에 보고해 왔다. 특히 2016년 3월 작성된 예방규정을 보면, 화재 사고가 난 휘발유 탱크 303시(C)를 비롯한 저유소 내 모든 탱크 14곳의 ‘인화방지망 손상·막힘 유무 육안 점검 결과’과 ‘양호’하다고 기록돼 있다.
반면 경기북부지방경찰청은 지난 18일 중간 수사결과 발표 때 인화방지망 관리 부실이 드러났다며 저유소가 화재 위험에 상시 노출돼 있었다고 발표했다. 인화방지망은 열전도율이 높은 구리 재질의 얇은 금속망으로, 유증기 환기구 주변에 불꽃이 생겨도 환기구 안쪽으로 불이 옮겨붙지 않도록 막는 기능을 한다.
송유관공사의 자체 점검 기록이 허위이거나, 점검 과정이 부실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예방규정은 위험물안전관리법에 따라 위험물을 제조 또는 저장하는 사업자가 세운 자체 안전 규정과 시설물 점검 결과 문서다. 같은 법에 따라 사업자가 선임한 시설물 안전 분야 전문가인 ‘안전관리자’가 점검표를 작성해야 하며, 허위 작성시 1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송유관공사 예방규정의 경우 2012년 안전관리자로 선임된 김아무개씨가 옥외탱크 점검 결과표를 작성했다.
소방청 등 관계당국이 사고 전까지 고양저유소의 인화방지망 상태를 모르고 있었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2016∼2018년 소방점검을 한 고양소방서는 ‘위법사항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3년 내내 평가하며 부실한 인화방지망 상태를 별도로 지적하지 않았다. 이는 위험물관리법에 따른 소방청의 저유소 옥외탱크 직접 점검 시기가 완공 뒤로부터 12년, 첫 점검 이후부턴 11년 단위에 이르기 때문이다. 고양저유소에 대한 마지막 소방청 정기점검은 2014년이었으며, 다음 점검 시기는 2025년이다. 그 외엔 사업자가 매해 자체 점검을 하고 결과를 보고하기만 하면 된다. 허위기록 처벌 규정은 있지만, 현실적으로 허위 여부를 확인할 길은 없는 셈이다.
한편, 정부 합동점검단은 24일부터 저유소와 석유·가스 비축시설, 민간 석유저장시설 등 55개 지역에 대해 안전관리 체계, 위험물 관리 및 소화설비, 방호체계 등을 점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송유관공사 관계자는 “(2016년 점검 뒤) 2년 사이에 (찢김, 벌어짐 등의 노후화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재발 방지를 위해 국내외 전문가들로 안전전문위원회를 구성했으며 경찰 조사 결과와 그밖에 지적되는 문제들을 종합해 법이 정한 기준 이상의 안전관리 체계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최하얀 채윤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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