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까지 탈원전 목표는 변함 없다.”
콜라스 요타카 대만 행정원 대변인은 26일 이렇게 강조했다. 24일 국민투표에서 ‘2025년까지 가동 중인 모든 원자력발전을 정지한다’는 내용의 전기사업법 95조1항 폐지를 묻는 ‘안건 16번’이 가결됐지만 대만 정부는 ‘달라질 것이 없다’고 잘라 말한 것이다. 자유한국당 등이 주장하듯 “대만 유권자들이 탈원전 정책에 사형 선고”를 내렸는데도, 정부가 요지부동하는 것일까? 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대만의 모든 원전은 설계에 따라, 또 법률에 따라 2025년에는 멈출 수밖에 없다.
설계수명 연장 안돼 탈원전 되돌리기 어려워
대만에는 원전 6기가 있다. 1978∼1985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노후 원전들로, 모두 설계수명이 40년짜리다. 가장 오래 된 진산 1·2호기는 2018∼2019년 설계수명이 끝나고, 궈성 1·2호기는 2021∼2023년, 마안산 1·2호기는 2024∼2025년 끝난다. 그대로 둬도 2025년에는 어차피 문을 닫아야 하는 처지다.
수명 연장은 가능할까? 진산 1호기는 2014년 핵연료봉 장전 중 연료봉이 찌그러지는 사고가 난 뒤 줄곧 멈춰 있었다. 2호기는 지난해 폭우로 송전선이 유실된 뒤 가동을 못했다. 진산의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소 수조는 2015년 1월 기준 97%로 가득 차 물리적으로 가동할 수 없는 상태다. 이런 이유 등으로 진산은 지난달부터 공식적인 폐쇄 절차에 들어갔다.
정상 가동 중인 나머지 4기(궈성 1·2호기, 마안산 1·2호기)는 법률상 연장할 수 없다. <대만중앙통신>(CNA) 25일 보도를 보면, 현행법에 따라 원전 폐쇄 5∼10년 전에는 수명연장 신청서가 제출돼야 한다. 정부의 신청서 심사에는 4∼5년이 걸린다. 현재까지 준비된 서류가 없어 궈성은 물론이고, 마안산도 수명연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대만의 친원전 진영은 2014년 시운전 직전 건설이 중단된 룽먼 1·2호기를 되살리자는 주장도 한다. 그러나 이 역시 쉽지 않다. 4년 넘게 방치된 원전을 바로 돌리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게다가 룽먼의 핵연료 1744다발은 이미 지난 3월 입찰을 거쳐 일본 히타치와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GE)이 공동 출자해 설립된 원전 연료회사 글로벌뉴클리어퓨얼(Global Nuclear Fuel)이 인수 중이다. 룽먼의 운명은 2020년으로 예정된 총통 선거에 달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엇을 위한 국민투표?…공은 다시 의회로
대만의 국민투표는 이렇게 별다른 실익이 없는데도 발의되고 추진됐다. 이를 이해하려면 대만에서 오래된 원전 찬반 논란을 되짚어봐야 한다.
대만의 탈원전 정책 흐름은 현재 여당인 민주진보당(민진당) 차이잉원 총통의 2016년 집권 뒤 새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전체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정부 차원의 선언은 2008년 집권한 국민당 마잉주 정부가 2011년 11월에 먼저 했다. 2014년 4월 신규 원전 룽먼의 건설을 잠정 중단한 것도 마잉주 총통이었다.
보수 정부의 이런 결정은 강력한 ‘원전 반대’ 여론 때문이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사고 뒤 대만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탈원전 요구가 거셌다. 후쿠시마 사고 2주기에는 전국 각지에서 22만여명이 참가한 대규모 원전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2014년 대만 정부가 룽먼 시운전을 결정했을 때는 타이베이에서만 5만여명이 도로 연좌 농성을 하고 일부는 총통부 건물을 점거하는 등 극렬하게 반대했다.
이는 대만이 한국 등 다른 나라와 견줘 상대적으로 원전 위험지대에 있기 때문이다. 섬나라 대만은 일본처럼 지진이 잦은데도 원전 4기(진산·궈성)가 인구 밀집지역인 타이베이에서 30∼40㎞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2010년에는 ‘룽먼 부지에서 80㎞ 거리에 해저 화산 70개 이상이 있고 그 가운데 11개는 활화산’이라는 대만 국립해양대 보고서가 나오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2016년 집권한 민진당 차이잉원 정부는 국민당 정부보다 조금 더 선명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2025년 원전 제로’가 곧 실현될 예정이었지만, 지난해 1월 전기사업법을 개정해 ‘쐐기’를 박으려 했다. 그러자 이에 반발한 대만 내 친원전 운동가들이 서명과 단식투쟁을 벌이며 국민투표 발의를 추진했다.
대만의 국민투표는 지난해 12월 관련법이 개정돼, 유권자 1.5%의 서명만 있어도 발의된다. 가결 조건도 찬성률 50%에서 25%로 낮춰졌다. 이번 탈원전 법안 폐기 찬성률은 29.84%다. 이제 정부는 투표 결과를 반영한 법안을 3개월 안에 제출하고, 입법원(의회)이 최종 심사를 한다. 국민투표보다 ‘국민청원’에 가까운 셈이다.
한국은 대만과 상황·조건 달라 비교 무의미
대만의 에너지 정책은 맥락과 배경이 무시된 채 번번이 한국에 잘못 전달됐다. 지난해 8월 “대만 대정전이 탈원전 때문”이라는 일부 언론과 정치권의 주장이 대표적이다. 당시 정전은 대만 전력의 10∼12%를 담당하는 대만전력공사의 다탄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 6기가 갑자기 정지된 직후 일어났다. 일부 한국 언론은 ‘탈원전 때문’이라고 거듭 주장했지만, 대만 언론은 일관되게 ‘공사 직원이 가스 밸브를 2분 동안 실수로 잠그는 바람에 대정전이 일어났다’고 보도했다.
대만과 달리 한국의 에너지 전환은 60년에 걸쳐 진행되는 것이어서 직접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2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국은 “2023년까지 원전 5기가 추가된 뒤 2083년까지 장기적이고 점진적으로 원전을 감축한다”며 “대만의 에너지 정책을 우리 사례에 그대로 투영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대만 국민투표는 탈원전 조항 찬반을 물은 안건 16번뿐만 아니라 석탄 화력발전에 대해 물은 7·8번 안건도 종합해 평가해야 한다는 설명도 있다. 국민투표 결과, ‘화력발전 비중을 매년 1%씩 줄이는 것에 동의하느냐’고 물은 7번은 40.27%의 찬성률로, ‘신규 석탄 발전소 건설 및 확대를 멈추는 정책 수립에 동의하느냐’는 8번 안건은 찬성률 38.46%로 가결됐다.
세 가지 투표 결과와 현실적 상황을 종합하면, 대만에서 원전은 순차적으로 폐쇄되고 건설 중인 신규 석탄발전소도 멈추는 등 더욱 급격한 에너지 전환이 이뤄지게 됐다. 오히려 이번 국민투표가 민진당 정부의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2025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 20%로 확대)에 탄력을 주는 모양새다. 대만 경제부 자료를 보면, 2016년 대만의 원자력 발전 비중은 12%, 석탄은 45.4%, 액화천연가스(LNG)는 32.4%, 재생에너지는 4.8%였다.
최하얀 기자
ch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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