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정부가 보급을 추진해 온 에너지저장장치(ESS)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잇따르자 산업통상자원부가 1300개 국내 모든 사업장에 대한 정밀 안전진단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아직 화재 원인이 규명된 것은 아니나 배터리 제조사인 삼성에스디아이(SDI), 엘지(LG)화학 등도 충전 상한을 70∼75%로 낮출 것을 고객들에 요청하는 등 추가적인 화재 방지에 대비해 선제적 대응에 나섰다.
산업부는 28일 국가기술표준원 주도로 에너지저장장치 화재 사고대응 업계 및 관계부처 회의를 한 뒤 “올 12월부터 내년 1월까지 전국 사업장 1300곳에 대해 시속한 정밀 안전 진단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부터 에너지저장장치 사업장에서 총 15건에 화재가 발생했고 이달 들어서만 4건이나 발생하는 등 안전성 우려가 커진 데 따른 것이다. 화재 15건 가운데 7건은 엘지화학, 6건은 삼성에스디아이, 나머지는 탑전지와 레보 제품이었다.
안전 진단은 크게 두 축으로 진행된다. 한국전력이 사용하는 에너지저장장치이거나, 엘지화학(400곳)이나 삼성에스디아이(700곳)가 제품을 납품한 곳에 대해서는 업계가 진단을 주도한다. 그밖에 자체 진단 능력이 없는 사업장에는 정부와 업계, 전문가, 유관기관 등이 구성할 특별점검 팀(TF)이 투입된다. 정밀 안전 진단 결과는 하루 단위로 산업부에 보고돼 이상 징후가 있을 경우 즉각 파악되게끔 할 방침이다.
정부는 고용량이거나 다중이용시설에 에너지저장장치를 설치한 사업장에 대해서는 가동 중단 조처가 취해질 수 있다는 점을 업계에 양해를 구해놓기도 했다. 정부는 다중이용시설에 설치되는 에너지저장장치에 대해서는 용량 제한을 검토하고, 모바일 앱을 활용해 운영 상황을 실시간으로 원격 모니터링 할 계획이기도 하다. 또 ‘긴급 차단’ 등의 안전성 제고 시스템은 관련 기준이 개정되기 전이라도 업계가 자발적으로 도입할 수 있게끔 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회의에서 이승우 국가기술표준원장은 “특단의 조처가 취해져야 할 엄중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체 사업장에 대한 안전진단으로 화재 요인이 밝혀질지는 미지수다. 에너지저장장치는 태양광이 설치된 산간이나 주변 인구가 많은 다중이용시설에도 설치된 경우가 있어 화재 발생 시 자칫하면 커다란 불이나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업계의 자체 진단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경찰 조사 등에도 정확한 화재 원인은 규명되지 않고 있어 안전성 우려가 커지는 분위기다. 에너지저장장치가 다양한 부품과 모듈이 조합된 복잡한 ‘시스템’인 데다, 한번 화재가 나면 남은 배터리 열량이 완전 소진될 때까지 불이 멈추질 않고 전소하는 까닭에 원인 규명이 쉽지 않았다는 게 정부·업계의 설명이다.
최하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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