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주의펀드 케이씨지아이(KCGI)가 한진칼 지분 9%를 취득하며 경영 참여를 선언한 가운데, 한진칼이 최근 단기 차입금을 늘리기로 한 것은 소수 주주들의 경영 참여를 제한하려는 목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단기 차입금 증가로 한진칼 자산 총규모가 2조원을 넘어서면, 상법에 따라 현행 1인 감사를 3인 이상의 감사위원회로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감사 선임에는 대주주 의결권이 3%로 제한되지만, 감사위 구성을 위한 사외이사 선임 때는 ‘3% 룰’이 적용되지 않아 대주주인 조양호 회장이 더 유리해지는 셈이다.
11일 한진칼의 연도·분기별 사업보고서를 보면, 한진칼은 지난 5일 이사회를 열어 단기 차입금 1650억원을 늘리기로 했다고 공시했다. 차입이 마무리되면 단기 차입금 규모는 역대 최고인 3300억원이 된다. 한진칼은 설립해인 2013년부터 2015년까지 단기 차입금이 900억원 규모에서 지난해 2941억원으로까지 늘었으나, 올해 단기 차입금 상당 부분이 장기 차입금(약 800억원)과 지난 8월 발행에 성공한 사채(약 700억원) 등으로 전환됐고 3분기 기준 단기 차입금 규모는 1650억원으로 줄어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단기 차입금을 다시 늘리기로 한 것이다.
문제는 단기 차입금을 급하게 늘릴 이유가 뚜렷치 않은 것이다. 한진칼은 공시에서 “단기 차입금 증가 결정은 만기 도래 차입금 상환자금 조달과 운영자금 확보”를 위해서라고 밝혔지만 올해 만기 차입금은 700억원 규모의 사채뿐이다. 나머지 950억원의 용처는 불분명하다. 한국증권금융 등 6개 금융기관에서 금리 3.30∼3.60%로 빌려놓은 기존 단기 차입금 1650억원의 경우 ‘롤 오버’(만기 연장)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만기 연장이나 회사채 발행 방법이 있는데도, 미리부터 이자 부담을 져야 하는 차입금 조달을 택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단기 차입금 용처가 불분명할 경우 배임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한진칼 쪽은 “내년 2월과 3월에 각각 400억원, 750억원의 사채 만기가 도래한다”며 “금리 불안정성이 계속될 것으로 보여, 내년 상환하려는 차입금 조달 비용을 일찍 조달하려는 정상적인 경영 활동”이라고 해명했다.
단기 차입금 증가로 내년 주총에서 조 회장 일가의 영향력은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진칼 자산은 지난해부터 올해 3분기까지 2조원을 밑돌았으나 950억원이 올해 현금 자산으로 반영되면 자산은 2조원을 넘어 내년 3월 주총 때 감사위를 구성해야 한다. 소수주주 입장에선 3% 룰을 바탕으로 현 감사를 대체할 더욱 독립적인 감사 선임을 시도할 수 없고, 지분율 28.95%의 조 회장 일가와 사외이사 선임 ‘표 대결’을 치러야 한다. 감사는 이사회의 경영활동을 감시하며 주총, 이사회 소집 요구 등을 할 수 있고 대한항공 등 자회사의 업무와 재산 상태를 조사할 수 있다.
최하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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