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엠과 금속노조 한국지엠 지부가 2015년 8월 18일 서명한 임금·단체 협상 합의문. 노사는 차세대 트랙스 ‘9BUX’의 한국 개발을 이미 4년 전 합의했다. 한국지엠 지부 제공
차세대 소형 트랙스(개발 코드명 9BUX)는 어떤 차일까. 최근 불거진 한국지엠(GM) 논란은 결국 이 질문으로 수렴된다.
한국지엠의 1대 주주인 글로벌 지엠과 2대 주주인 산업은행은 지난해 한국지엠을 연구·개발 법인으로 분리할지를 두고 5개월가량 협상을 벌였다. 그 결과 법인을 분리하되, 글로벌 지엠 산하로 배속되는 신설 연구법인을 “준중형 에스유브이(SUV·스포츠유틸리티차) 및 시유브이(CUV·크로스오버유틸리티)의 중점 연구개발거점으로 지정”하는 데 합의했다고 지난해 12월18일 발표했다.
이 가운데 준중형 에스유브이가 다름 아닌 9BUX라는 것이 지난 8일 드러났다. 합의문의 정확한 문구는 ‘9B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C급(세그먼트) 에스유브이와 시유브이 개발 거점’(Homeroom of C SUV and CUV based on 9b platform)이라는 것도 새롭게 밝혀졌다.
이 가운데 특히 ‘9BUX 한국 개발’은 이미 4년전 결정됐다는 점이 가장 큰 논란거리다. <한겨레>가 2015년 한국지엠 임금·단체 협상 합의문을 살펴보니, 당시 노사는 “연구개발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9BUX 개발업무를 한국지엠 기술연구소로 배정한다”고 합의했다. 그뒤 차세대 트랙스 9BUX는 한국 주도로 개발이 진행됐고 2020년 부평공장 양산을 앞두고 있다. 얼마 전 인천에서 9BUX로 추정되는 시운전 차량이 포착됐다는 언론보도도 있었다. 사실상 개발이 완료된 차인 것이다.
게다가 카허 카젬 한국지엠 사장은 지난해 7월 신설 연구법인 계획을 밝히는 입장문에서 ‘한국의 엔지니어들은 차세대 콤팩트 에스유브이 제품을 개발할 것’이라고 밝힌 뒤 공식 입장을 정정한 적이 없다. 전주명 지엠테크니컬센터코리아(글로벌 지엠 산하 신설 연구법인) 부사장이 지난 7일 ‘콤팩트는 중국이 만든다’고 노조에 밝힌 것이 첫 공식 설명이다.
지금까지 한국지엠이 차세대 트랙스를 ‘준중형’이 아닌 ‘소형’이라고 설명해 온 점도 논란을 키웠다. 지난해 3월13일 지엠이 인천시에 제출한 ‘외국인투자구역 지정’ 신청서에 따르면 지엠은 “부평지역에 소형 에스유브이 제조공정을 신·증설”하는 데 5년간 9482억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때는 소형으로 분류됐던 차량이 연말에는 ‘준중형’으로 바뀐 것이다. 지엠의 세그먼트 분류에 따라 소형은 비(B), 준중형(서브콤팩트∼콤팩트)은 시(C)로 분류된다.
이런 사정 때문에 노조와 업계는 지엠과 산은이 지난해 말 합의한 ‘준중형 에스유브이’를 새로운 차량으로 받아들여 왔다. 한 노조 관계자는 “설마 9BUX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노조가 4년전 회사 쪽과 협상해 힘들게 받아낸 기술 물량을 산은은 마치 새로운 협상 성과인 듯 자랑하고, 지엠은 새롭게 주는 것처럼 생색내고 있다”며 “혈세 8천억원 투입의 결과가 실상은 현상 유지”라고 주장했다.
반면, 한국지엠 등은 ‘현상 유지’ 성격의 협상이 아니었다고 반박한다. 한국지엠 관계자는 “지난해 산은과 협상 당시 쟁점은 ‘시유브이를 한국에서 개발할 수 있느냐 없느냐’였다”며 “콤팩트 대신에 시유브이가 한국에서 개발되게 된 것이며, 두 차량뿐 아니라 해당 차종 개발 거점이 된다는 것은 상당한 성과”라고 주장했다. 협상 과정을 아는 한 정부 관계자도 “9BUX 세그먼트가 바뀐 것은 기존 트랙스보다 차체가 커진 새 차량의 차별성을 부각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최하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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