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별세 뒤 공석이었던 공익법인 정석인하학원 이사장에 조 전 회장의 ‘절친’ 현정택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선임되면서 관심이 쏠린다. 한진그룹 공익법인이 과거 ‘편법 승계’ 논란에 중심에 선 적이 있는 만큼, 일각에서는 정석인하학원이 3세 승계와 상속에 어떤 역할을 할지 주목받고 있다.
정석인하학원은 정석물류학술재단·일우재단과 함께 한진그룹의 공익법인 중 하나다. 인하대·한국항공대 등 교육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재단으로, 조 전 회장은 아버지인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자에 이어 이곳 이사장을 지냈다.
정석인하학원은 총수일가의 사익추구에 이용되고 있다는 의혹을 꾸준히 받아왔다. 한진그룹 관계자가 이사진에 다수 포진한데다, 거액을 들여 한진 계열사 주식과 회사채를 사들였기 때문이다. 30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정석인하학원의 이사 14명 중에는 지난 28일 이사장으로 선임된 현 전 수석과 조원태 한진 회장, 석태수 한진칼 대표, 원종승 정석기업 대표, 강영식 한국공항 사장, 조항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등 한진그룹 계열사 전·현직 임원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사회는 사실상 총수 일가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구조다. 정석인하학원이 2017년 52억원을 들여 대한항공 유상증자에 참여한 사실이나, 2012년과 2015년 두 차례에 걸쳐 인하대 대학발전기금으로 한진해운 회사채 매입에 나섰다 전액 손실을 본 일 또한 비영리 공익법인답지 않은 행보였다. 김도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민생경제위원회 변호사는 “공익법인을 만드는 취지는 교육사업, 문화사업 등 공익적 활동을 하라는 것인데, 재벌 대기업이 악용하는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석인하학원을 상속세 감면에 활용할 가능성도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현행법상, 공익법인에 출연하는 발행주식총수 5% 미만의 의결권 있는 주식(성실공익법인은 10% 미만)에 대해서는 증여세나 상속세가 면제된다. 사회공헌을 장려하기 위한 취지인데, 삼성·롯데 등 총수일가 등은 공익법인에 지분을 넘겨 상속세는 줄이고 그룹 지배력을 높이는 ‘편법 승계’에 악용해왔다. 한 재계 관계자는 “조원태 등 3남매와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이 내야 할 상속세가 1700억원으로 추정되는데다 상속과 경영권을 둘러싸고 가족의 의견일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라, 겸사겸사 조 전 회장 지분 일부를 정석인하재단으로 옮길 수 있다는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한진가에는 이미 비슷한 전례가 있다.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자도 2002년 타계 직전 대한항공 주식 4.59%와 ㈜한진 주식 3.78%를 인하학원과 정석학원, 일우재단 3개 공익법인에 무상 증여했다. 이후 조양호 전 회장은 공익법인 이사장에 이름을 올렸다. 당시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총수일가가 세금을 내지 않고 그룹 지배력을 높였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