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의 전력판매 독점권 폐지 논의에 시동이 걸렸다. 기업들이 재생에너지 전력을 더 많이 쓰려면 발전 사업자와 소비자 간 ‘전력구매계약’(PPA)이 가능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지면서다.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한전의 독점권을 폐지해야 하다는 주장과 전력시장 공공성을 해칠 수 있는 ‘시장개방’의 첫단계라는 우려가 맞부딪히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4일 발표한 3차 에너지기본계획 최종본을 보면, 정부는 전력 소비자의 선택권을 확대하는 전력구매계약제도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달 21일 ‘제3차 녹색성장 5개년(2019~2023) 계획’에서도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아르이(RE)100’(Renewable Energy 100%) 캠페인에 참여할 수 있도록 “법률적 정합성 등을 고려한 피피에이 방안 검토”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아르이100이란 기업이 친환경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력을 100% 사용하겠다는 자발적 캠페인이다. 올 3월 기준 애플·구글·페이스북·월마트 등 전세계 166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지만, 한국은 참여기업이 없다. 한전이 국내 발전사업자로부터 모든 전기를 구매해 다시 판매하는 현행 제도에서 ‘재생에너지 전기’만 구매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기업과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 사이에 전력구매계약이 맺어질 수 있도록 전기사업법 일부를 개정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개정 대상은 ‘동일인에게는 두 종류 이상의 전기사업을 허가할 수 없다’고 한 7조다. 이 조항에 따라 정부로부터 ‘발전’을 허가받은 사업자는 ‘판매’ 사업은 할 수 없다. 산업부 관계자는 “재생에너지 사업자는 판매 사업도 할 수 있도록 하는 예외조항을 삽입하는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법 개정이 여의치 않을 경우 ‘1㎿ 이하 신재생발전사업자는 전력시장을 거치지 않고 한전과 직접 계약이 가능하다’는 전기사업법 시행령을 개정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전력구매계약제도의 실효성 여부는 미지수다. 아르이100에 참여 중인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으로부터 재생에너지로 소비 전력 100%를 조달하라는 압박을 받는 기업들엔 ‘희소식’이다. 자가 재생에너지 발전설비에만 의존하지 않고 시장에서 사올 수 있어서다. 다만 직접 거래 시장에서 ‘재생에너지 가격’이 얼마로 설정되느냐에 따라 제도의 확장성은 달라질 전망이다. 전력소비량이 많은 편인 한 대기업 관계자는 “현재로선 한전에서 사오는 전기 가격이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에서 사올 수 있게 될 전기보다 쌀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중·장기적으로 전력시장 완전 개방으로 나아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이 때문에 더불어민주당 안에서도 전력구매계약제도를 두고 찬반이 엇갈린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경험적으로 시장 개방은 작게 시작해 조금씩 더 확대되어 왔다”며 “재생에너지 확대도 중요하지만 전력시장 공공성도 중요한 만큼 정교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하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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