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동정지’ 5일 뒤 한수원 작성 문서 보니
“미임계 상태인 것으로 생각하고 반응도 계산”
전문가 “불 꺼지는 줄 알고 기름 몽땅 부은 꼴”
이철희 의원 “상식 밖 사고…무기한 점검해야”
“미임계 상태인 것으로 생각하고 반응도 계산”
전문가 “불 꺼지는 줄 알고 기름 몽땅 부은 꼴”
이철희 의원 “상식 밖 사고…무기한 점검해야”
지난달 10일 발생한 전남 영광 원자력발전소 한빛 1호기 ‘출력 급증’ 사건은, 당시 한국수력원자력 직원이 원자로 출력이 낮아지는 중으로 ‘착각’한 상태에서 순식간에 제어봉을 많이 뽑았기 때문인 것으로 새롭게 확인됐다. 제어봉은 원자로에 삽입돼 핵분열로 발생되는 중성자를 잡아먹어 출력을 낮추는 설비다. 당시 상황을 자동차에 빗대면, 속도가 느려지는 줄로 알고 가속 페달을 필요 이상으로 세게 밟은 것과 비슷하다. 한수원은 이런 ‘휴먼 에러’를 일찌감치 파악하고도 지금껏 공개하지 않았다.(관련 기사 : 한빛1호 열출력 계산·판단 오류…아찔한 ‘휴먼에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이철희 의원(더불어민주당)은 한수원이 지난달 15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보고한 ‘한빛 1호기 원자로 수동정지 원인 및 재발방지대책’ 문서를 11일 공개했다. 사건 발생(5월10일)과 원자력안전위원회 현장조사(5월16∼17일) 사이에 작성된 문서로, 사건 발생 직후 한수원이 파악한 자체 과실 내용이 상세하게 담겨있다.
해당 문서를 보면, 당일 오전 3시 시작한 제어봉 제어능 측정 시험은 오전 10시13분 8개 제어봉 뱅크 가운데 하나인 B뱅크가 의도한 위치(총 231스텝 중 48스텝)에 가있지 않는 편차가 발생하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이때 한수원은 B뱅크를 0스텝까지 완전히 삽입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나 B뱅크를 66스텝까지 다시 끌어올린 오전 10시29분, B뱅크에 속한 1개 제어봉만이 12스텝 덜 딸려오는 편차가 발생했다. 한수원은 이번에는 B뱅크를 100스텝까지 한번에 끌어올렸다. 당시 한수원 직원은 100스텝까지 뽑아내도 출력 변화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지만, 실제로는 원자로 출력이 기준치 5%를 3배 이상 초과해 18% 가까이 뛰는 아찔한 상황이 벌어졌다.
한수원 직원이 출력 변화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 이유는, 당시 원자로의 상태를 실제와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수원은 해당 문서에서 “제어봉 B뱅크 인출(0→100스텝) 전에 원자로가 미임계상태인 것으로 생각하고 반응도 계산을 수행했다”고 밝혔다. 미임계란 우라늄 핵반응으로 생성되는 중성자의 수가 낮아지는 ‘출력 감소’ 조건을 뜻한다. 반대로 임계 상태는 중성자 수가 늘어나는 출력 증가 조건이다.
제어봉 인출·삽입 전 원자로 출력이 증가 중이냐 감소 중이냐에 따라 제어봉 위치 조정에 따른 출력 증가·감소 폭은 완전히 달라진다. 박종운 동국대 교수(원자력에너지시스템공학과)는 “불이 잘 타고 있는데, 꺼진 줄로 착각하고 필요 이상으로 휘발유를 갖다 부은 꼴”이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제어봉 인출 작업은 면허소지자이자 반응도 계산을 한 원자로 차장이 아닌, 무면허자인 계측제어팀 소속 직원이 수행했다.
애초 B뱅크의 1개 제어봉만이 12스텝가량이나 덜 인출된 것은 평소 보수·관리 미흡에 따른 설비 이상 때문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해당 문서에서 한수원은 “제어봉 구동장치 내 금속산화물 침적에 의한 일시적 구동장애”를 편차 발생 원인으로 추정했다. 문제가 된 불용성 금속산화물은 원자로 냉각제 계통 배관의 금속 재료가 부식되면 생성된다.
이 의원은 “문건을 보면 사건 당시 원자로의 브레이크에 해당하는 제어봉이 장애를 일으킨 것을 알 수 있고, 한수원이 제시한 재발방지대책에는 ‘원자로 상부 구조물을 분해한 채 구동장치 52개를 모두 들여다보겠다’는 계획이 제시돼 있다”며 “이는 한수원 스스로도 한빛 1호기 제어봉 결함 가능성을 심각하게 보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빛 1호기 사고는 한수원의 안전 불감증과 기강해이가 불러온 상식 밖의 사고”라며 “원자로 운영 시스템과 설비 전반에 대해 무기한 전면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하얀 기자 chy@hani.co.kr
◎ Weconomy 홈페이지 바로가기: https://www.hani.co.kr/arti/economy
◎ Weconomy 페이스북 바로가기: https://www.facebook.com/econohani
◎ Weconomy 페이스북 바로가기: https://www.facebook.com/econohani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