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60) 씨제이(CJ)그룹 회장이 지난해 12월 이뤄졌던 두 자녀에 대한 주식 증여를 취소하고 4월 재증여했다. 코로나19로 증여 대상 주식의 가격이 크게 떨어진 점을 틈타 세부담을 줄이려는 목적이다. 지난해 하반기 ‘비상 경영’을 선포한 데 이어 코로나19로 재무 위험이 더 커진 그룹을 이끄는 총수로서 적절한 행보인지에 대한 의문이 나온다.
이재현 회장은 지난해 12월9일 딸 이경후(35) 씨제이이앤엠(ENM) 상무와 아들 이선호(30) 씨제이제일제당 부장에게 씨제이 우선주 총 184만여주 증여한 것을 3월30일 취소하고, 4월1일 재증여했다고 2일 공시했다. 재증여한 주식 수는 최초 증여 때와 동일하다. 증여 시점만 지난해 12월에서 올해 4월로 바꿨다.
증여 시점 변경 이유는 이 회장 대신 씨제이그룹 쪽이 설명했다. 씨제이 쪽은 “지난해 12월 증여 당시 증여세가 700억원 정도로 추정됐는데, 현재 코로나19로 주가가 하락하면서 (두 자녀가 증여가 아닌) 시장에서 주식을 사는 것과 (비용이) 엇비슷해져 증여 의미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씨제이 주가가 크게 떨어진 상황을 이 회장이 절세의 기회로 삼았다는 뜻이다. 증여 주식에 붙는 세액은 증여일 기준으로 전후 2개월 간 종가 평균액을 토대로 산정된다. 씨제이 쪽은 이번 조처로 이 회장의 세부담이 170억원 가량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다. 향후 한 달 간 씨제이 주가가 추가 하락하게 되면 이 회장의 세부담은 더 줄어든다.
이에 이 회장이 경영자가 아닌 재산을 싼값에 물려주려는 일반 주식 보유자로서의 욕망에 충실했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주가 하락은 경영자에겐 추가 하락을 막거나 끌어올려야 할 과제이지만 재산을 상속 또는 증여하려는 주식 보유자에겐 세금을 줄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실제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등 주요 기업 경영자들은 최근 한 달 새 코로나19로 본인이 경영하는 기업의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지자 사재를 털어 주식을 대량 매입하는 등의 행보에 나선 바 있다.
경영보다 경영권 승계에 집착해온 총수 체제의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난 장면이란 지적도 나온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경영학)는 “혹독한 구조조정도 예상되는 게 씨제이그룹이 마주한 상황이다. 총수로서 그룹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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