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 이후 삼성준법감시위원회(준감위)와 시민단체는 후속 조처를 요구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이날 승계 과정에서 이뤄진 여러 위법 행위에 대해 머리를 숙였지만, 이를 바로잡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구체적인 계획은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전문가나 시민단체 사이에선 사과 당시엔 언급되지 않았으나 이 부회장과 삼성이 풀어야할 추가 과제가 남아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삼성의 남은 과제는 크게 세 갈래이다. 먼저 전문 경영인 체제 도입을 위한 이사회 중심 경영이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려한 한 준감위원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이 부회장의 4세 경영 포기 선언은 전문 경영인 체제로 전환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며 “체제 전환 과정에서 계열사별 전문경영인이 독립적인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경영학·경제개혁연대 부소장)는 “시이오(CEO)를 뽑는 권한을 계열사 이사회에 온전히 맡겨야 한다”며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에서만 공식적인 역할을 한다든지 아니면 삼성그룹 전체 차원에서 명성을 이용한 대외업무만 담당하고 직접 경영은 전문 경영인에게 일임하는 등의 조처가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직간접적 피해를 입은 쪽에 대한 ‘보상’도 숙제로 꼽힌다. 지난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작업 과정에서 가치가 저평가돼 손실을 입은 삼성물산 소액주주들이 한 예다. 이들 중 일부는 지난 2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주주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내기도 했다. 일부에선 이 합병으로 인한 피해자가 소액주주뿐만이 아니라 국민 전체라는 주장도 편다. 국민 다수가 가입해 있는 국민연금도 손실을 봤다는 이유에서다. 참여연대는 그 손실액을 최대 6750억원으로 추산한다. 다만 이 합병이 부당한 거래였는지에 대해선 아직 법률적 판단이 내려지지 않았다. 김경률 경제민주주의21 대표는 “소액주주의 경우엔 피해액을 산정해 보상해줄 필요가 있고, 국민연금 손실 보상 부분은 이 부회장이 공익법인에 사재를 기부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처리도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온 사안이다. 2019년 12월 현재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주식의 8.82%(5억2644만3741주)를 가지고 있다. 이는 5월13일 종가 기준(4만8550원) 25조5천억원 가량으로 삼성생명의 총자산(287조원)의 약 8.7%에 이른다. 현행 보험업법과 관련 규정은 보험사의 손실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계열회사 주식을 총 자산의 일정 비율(3%) 이상 보유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주식 가격을 ‘시가’가 아닌 ‘취득원가’로 계산한다는 보험업법 감독규정으로 인해 삼성생명은 현재까지 ‘합법적으로’ 삼성전자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2018년 최종구 당시 금융위원장은 “법률(보험업법) 개정 이전에라도 해당 금융사가 아무런 개선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삼성의 자발적 개선 조처를 촉구하기도 했다.
근본적으로는 규정을 개정해야 하는 문제이긴 하지만, 그 전에 삼성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일종의 압박이었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처분하게 되면 현재 그룹 지배구조는 크게 흔들리게 된다. 이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이 크게 약화된다는 뜻이다.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과 더불어 삼성생명을 통해 그룹 주력사인 삼성전자를 지배하고 있어서다. 김우찬 고려대 교수(경영학)는 “자녀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줄 생각이 없으면 삼성생명 문제도 과감하게 털고 나가야 한다”고 짚었다.
송채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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