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물은 편의점에서 파는 대왕얼음, 120㎖짜리 박카스 한병과 사이다. 유리컵에 차례로 넣고, 골고루 저어주면 시원함과 달달함이 절묘하게 조화된 ’얼박사’(얼음+박카스+사이다)를 만들 수 있다. 10여년전 등장했던 얼박사는 최근 젊은층 사이에 “피로가 싹 풀린다”, “숙취해소 보조제로 소주 3병도 너끈하다”는 소문과 함께 다시 유행하고 있다. 얼박사의 핵심은 박카스.
동아제약이 1963년 알약 형태로 첫 제품을 내놓은 박카스는 출시 57년이 지났는데도 세대를 넘나들며 인기가 높다. 2015년부터 5년간 한해 2천억원대 매출(수출분 포함)을 올리고 있다. 국내 제약 매출 1위인 유한양행의 지난해 전체 매출(1조4800억원) 7% 수준을 피로회복 음료 하나로 벌어들이는 셈이다. 술꾼들의 건강을 지킨다는 뜻으로 로마신화 속 술의 신 ‘바쿠스’에서 이름을 따왔다. 피로회복용으로 인기를 얻어 지금까지 212억병(5조원 규모)이 팔렸다. 올해 1분기에만 448억원 매출을 올렸다. 의료정보 제공업체 아이큐비아가 추산한 올해 1분기(1~3월) 일반의약·의약외품 국내 매출 순위에서 박카스디(D)가 부동의 1위(159억원)를 달리고 있다.
동아제약의 또다른 스테디셀러 판피린도 내년이면 환갑이다. 이 분야 올해 1분기 국내 매출 3위이고, 지난해까지 5년간 해마다 3백억원 안팎 매출을 올렸다. 수출분을 포함한 박카스와 판피린의 한해 판매액이 동아제약 1년 매출(4003억원)의 절반을 훌쩍 넘는 셈이다. 두 제품은 1960년대에 보기 드물던 소매직거래용 전용차량을 이용한 신개념 유통, 피로회복 물질을 대폭 강화한 제품 개선 등으로 시장을 압도했다. 특히 사업 초기 김희갑·남미리같은 당대 연예인을 활용했던 박카스의 파격적인 광고와 인지율 90%를 넘는 판피린 광고 문구 ‘감기 조심하세요~’는 지금도 소비자들에게 각인돼 있다.
한형호 건국대 교수(경영학)는 ‘동아제약 80년 경영핵심 역량분석’ 논문에서 “현금거래 형태의 새 거래방식, 대량광고 등 파격적인 마케팅, 수도권 생산공장과 무재고 시스템 도입 등 혁신적인 역량을 축적해 업계 선두주자를 유지해오고 있다”고 분석했다.
바이오신약 열풍에 이어 디지털치료제까지 최첨단 약들이 즐비하지만, 수십년 노익장을 과시하는 일반의약품과 의약외품 스테디셀러들도 많다. 올해 출시 123년을 맞은 동화약품의 활명수도 빼놓을 수 없다. 활명수는 아이큐비아 집계에서 박카스에 이어 매출순위 2위(89억원)로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한때 탄산가스를 넣은 삼성제약의 ‘까스명수’가 출시되면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곧바로 ‘까스활명수’를 내놓는 등 시장과 유통 체계의 변화에 발빠른 대처로 위기를 헤쳐왔다는 평가다. 맛칼럼니스트로 잘 알려진 예종석 한양대 명예교수(경영학)는 책 <활명수, 100년 성장의 비밀>에서 “장수 제품은 우연히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소비자의 욕구를 제품과 마케팅 전략에 적절히 반영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피로회복제 아로나민골드(1963년), 감기약 판콜에스(1968년), 광동 우황청심원(1974년), 진통제 게보린(1979년) 등 40~50년을 훌쩍 넘긴 제품들이 매출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한독의 관절염치료제 케토톱(1994년)과 종근당의 이모튼(2000년)이 막내급으로 그나마 10위권에 이름을 올려 체면치레를 하고 있다. 제약업체 한 공시담당자는 “수많은 제품이 명맥 유지도 못하는 현실에서 수십년간 소비자들에 사랑받으며, 기업을 떠받치는 주력제품으로 남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소비자 요구에 맞춰 끊임없이 새롭게 바꿔나가는 노력이 남달랐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홍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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