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 매각이 무산 수순에 접어들면서 시장의 관심은 빠르게 ‘무산 이후’ 아시아나항공의 운명으로 옮겨가고 있다. 매각 주체인 채권단과 금호그룹의 침묵 속에 시장에선 다른 나라 항공업 구조조정 사례 등을 토대로 대략 세 가지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다. 채권단과 그 배후에 있는 정부가 어떤 카드를 집어 드냐에 따라 아시아나항공의 운명도 달라진다.
2일 채권단과 정부, 금호그룹 쪽 이야기를 들어보면, 일단 매각 무산 후 재매각 절차가 곧바로 진행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업황 회복 시점이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아시아나 인수전에 손을 들고 나설 인수 주체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에이치디씨(HDC)현대산업개발과 경쟁에 나섰다가 고배를 든 제주항공도 이후 저비용항공사 이스타항공을 인수하려 했다가 애초 계획을 튼 바 있다. 인수 계약을 맺은 거래도 깨는 상황에서 새 인수자가 등장할 가능성은 당분간 제로(0)에 가깝다는 게 업계와 시장의 판단이다.
시장에선 재매각 시기를 뒤로 미루고 채권단이 당장 급한 불을 끄기 위해 구원투수로 나서는 두번째 시나리오에 더 큰 무게를 둔다. 업황이 회복될 때까지 아시아나항공이 버틸 수 있도록 정부와 채권단이 사실상의 무조건적인 자금 지원에 나서지 않겠냐는 것이다. 자금원은 산업은행이 채권을 발행해 조성한 기간산업안정기금이 될 공산이 높다. 여기에는 매각 무산 선언 후 유동성 지원 방안이 곧바로 나오지 않으면 신용등급 하락으로 부도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아시아나항공의 자금 사정도 고려돼 있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은 신용등급이 하락하게 되면 자산유동화증권(ABS) 트리거 발동으로 증권 보유자의 자금(약 7천억원) 회수가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방식은 기존 대주주와 경영진과의 갈등을 불러올 이유가 없는 터라 아시아나항공의 재무구조 악화를 신속하게 차단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반대로 같은 이유로 총수 일가에 아무런 책임을 물리지 않는다는 특혜 시비가 일 수 있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경영학)는 “공적자금을 쓰면서도 향후 기업이 제대로 살아나지 않게 된다면 비판 여론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세번째 시나리오는 채권단이 버티는 걸 넘어 아시아나항공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나서는 카드다. 이를 위해선 채권단이 경영 전반을 관장할 수 있는 칼자루를 쥐어야 한다. 기존 대주주의 지분(30.79%·3월 말 기준)을 감자하고 채권단이 채권을 출자전환(채권을 주식으로 바꾸는 행위) 등을 통해 대주주로 올라서 경영을 도맡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전환 가액이 정해져 있는 전환사채(CB) 보유분만 주식으로 바꿔도 채권단 지분율은 37%에 이른다. 박삼구 금호 회장 등 기존 대주주가 경영권을 잃게 된다는 뜻이다.
이 방식과 관련해서 일부에선 피(P)플랜(사전회생계획제도) 절차를 언급하기도 한다. 기업회생절차(옛 법정관리)와 워크아웃(채권단공동관리·기업개선작업)의 장점을 결합해 만든 제도다. 채무 조정은 법원의 힘을 빌려 신속하게 진행하고 신규 자금 지원은 채권단이 도맡는 구조다.
이 시나리오가 등장한 배경엔 지난 6월께 채권단의 중심인 산업은행이 매각 무산에 대비해 과거 일본항공(JAL)의 구조조정 사례를 면밀히 검토한 적이 있어서다. 일본항공은 2010년 법정관리를 신청했다가 1년 만에 회생한 항공업 구조조정의 모범 사례로 통한다. 이때 방식이 법원의 채무조정과 정부와 민간이 함께 출자한 자금 대여기구(기업재생지원기구)의 신규자금 지원을 결합한 것인 터라 국내 피플랜 제도와 상당히 겹친다.
정부는 세 시나리오 중 두번째에 좀 더 기울어져 있다. 정부의 한 핵심 당국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피플랜 절차를 밟게 되더라도 기업가치 급락은 피하기 어렵다. 현시점에서 피플랜은 최후의 선택지일 뿐”이라고 말했다. 검토해 볼 수는 있으나 다른 대안을 우선 살펴야 한다는 취지이다. 지난달 29일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아시아나는 아시아나대로 채권단은 채권단대로 (매각이) 안 됐을 때를 (대비한 대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아시아나항공이 기안기금을 신청하면 요건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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