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오비베어와 노가리골목의 상생을 위한 공동대책위 제공
“맥주값은 5백cc 작은 조끼 한잔에 450원, 1천cc 큰조끼는 한잔에 880원이다. 안주는 오비가 마른 안주 한봉지에 1백원으로 정해주고 그 이하는 받지 못하도록 규제한 반면 크라운은 거래점포가 무엇을 얼마에 팔든 관여치 않고 있다. 이것이 공정거래법에 저촉돼 시정명령을 받은 것이다.”
1981년 6월10일자 <동아일보>는 당시 직장인과 젊은 층에 큰 인기를 끌던 생맥주 이야기를 보도했다. 재밌는 것은 당시엔 생소했던 공정위가 생맥주 업체의 마른안주를 규제했고, ‘나비효과’처럼 40년이 지난 지금 서울 을지로 노가리 골목을 낳게 했다는 점이다.
기사를 보면, 힘든 일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이들에게 큰 위로를 줬던 생맥주 선술집(목로주점)을 처음 선 보인 게 오비맥주였다. 오비 맥주는 전국 850개 체인점을 갖고 있었다. 경쟁업체였던 크라운맥주는 목로주점 후발주자였는데도 1년만에 체인점 1300여개를 확보했다.
업계 2위였지만 수익면에서 짭짤했던 오비맥주의 경영 방식이 문제를 일으켰다. 오비는 크라운과 달리, 체인점에서 파는 안주까지 본부가 공급하는 안주를 쓰도록 했다. 1백원짜리 마른안주는 본부가 물량을 확보해 체인점에 공급하고, 여기서 맥주와 함께 추가 수익을 뽑아내는 것이다. 체인점이 다른 안주를 쓰면 벌금을 물렸다. 당시 시중 땅콩값과 건어물값을 좌우할 만큼 생맥주 목로주점 안주로 쓰이는 마른안주가 많았다고 한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오비맥주가 체인점을 상대로 본부가 제공하는 안주만 쓰도록 한 점을 시정하도록 명령했다. <동아일보>는 “이번 시정명령을 계기로 소비자이익을 보호하려는 공정거래법 정신이 생맥주 목로주점에서부터 모든 업계에 확대되어 나가야겠다“고 꼬집었다.
우연찮게도 서울 을지로의 명물인 ‘노가리 생맥주 골목’은 오비맥주를 상대로 한 공정위의 시정명령에서 비롯됐다. 앞서 1980년 을지로 3가 95-5번지에 ‘을지OB베어’가 개업했다. 공정위 명령으로 마른안주를 쓸 수 없게 되자, 을지오비베어는 대체안주로 노가리를 택했다. 지금도 노가리 골목에는 이런 안내문구가 쓰여있다.
“노가리는 당시 흔하고 값싼 어물이고, 연탄불에 살짝 구워내줄수 있는 안주가 되었다. 거기에 매콤한 고추장을 찍어먹으니 맥주 안주로는 그만이었고, 뒤이어 이 골목의 다른 가게들도 노가리와 고추장을 내놓기 시작했다.”
을지로 인쇄노동자, 충무로 인근 영화 산업 노동자들, 인근의 수많은 보통사람들이 힘겨운 하루를 마치고, 이곳에서 저녁을 쉬어갔다. 그렇게 비슷한 가게들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서울시와 정부 등으로부터 보존가치를 인정받는 골목이 됐다. 2015년 이후 서울시는 노가리 골목을 서울미래유산에, 중소기업벤처부는 을지오비베어를 ‘백년가게’로 지정했다. 코로나19가 시작되기 전인 지난해까지는 해마다 5월에 ‘을지로 노가리 맥주축제’가 지역 명물이었다. 을지오비베어는 지금도 겉으로 빡간 벽돌과 간판, 안에는 39년전 낡은 나무 테이블이 그대로다. 생맥주 한조끼 3500원을 내면, 연탄불 노가리 하나에 1천원, 번데기 4천원, 땅콩·멸치 안주를 2천원에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을지로 노가리 골목의 시초인 을지오비베어는 지금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을지오비베어 쪽은 40여년간 운영했던 가게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임대차 분쟁을 시작했지만, 2심까지 패소했고 3심이 진행중이다. 지난 2018년 8월 일방적인 재계약거절 통보를 받았다. 영업시작 39년만이었다. 월세를 올려준다는 호소도 소용이 없었고, 명도소송 우편물이 날아왔다. 현행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은 첫 계약 이후 10년이 넘은 을지오비베어 같은 가게를 보호해주지 못했다. 상가건물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도 임대인 쪽이 소송을 제기하면서, 애초에 조정대상에서 제외됐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을지오비베어는 아직도 한마리 1천원짜리 노가리를 파는 공간이자, 가난한 노동자, 서민들이 경제적 부담없이 하루의 달고 쓴 이야기들을 풀어내던, 1980년대 이후 시민사회에 공동체 미덕을 상징하는 곳”이라며 “건물주가 법으로는 이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보증금이나 임대료를 올려받을 수 있으니 법보다 위대한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과 따뜻함으로 을지오비베어가 영업을 계속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곡히 요청한다”고 말했다. 지난 12일부터는 을지오비베어와 더불어민주당 중구성동을지역 노동위원회, 민생경제연구소, 진보당 종로중구지역위원회 등이 ‘을지오비베어와 노가리골목의 상생을 위한 공동대책위’(공대위)를 꾸렸다. 수십년간 실질적으로 도시와 골목의 가치를 가꾸고 만들어낸 주거·상가 세입자들의 입장이 정비사업 과정에 고려조차 되지 않은 채 내몰리고 있는데, 노가리골목이 똑같은 전철을 밟고 있다는 것이다. 공대위에는 을지오비베어 단골손님들도 소중했던 시절의 추억을 지키기 위해 참여하고 있다. 공대위는 “을지오비베어의 현장 보존을 전제로 상생방안을 모색하고, 서울시도 제대로된 미래유산으로 보존해달라”며 “역사적 보존가치를 지닌 을지오비베어와 노가리골목이 누군가의 욕심에 의해 독점되는 게 아닌 상생과 보존을 촉구하는 활동을 진행할 것”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홍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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