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부품·장비 분야 글로벌 기업의 64%가 사업장 이전 등 글로벌 가치사슬(GVC) 재편을 최근 완료했거나 계획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이 활발히 가치사슬을 재편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가운데, 대표적인 글로벌 제조업 생산기지인 중국은 기획과 연구개발(R&D) 중심지로 변모하고 있다.
6일 코트라(KOTRA)는 이런 내용을 담은 소·부·장 분야 글로벌 가치사슬 재편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6~8월 세계 49개 해외무역관 등을 통해 ‘포춘 500’ 제조분야 128곳 중 73곳을 포함한 글로벌 기업 246곳을 대상으로 조사가 진행됐다.
글로벌 가치사슬은 소재 조달과 조립 등 생산부터 유통, 배송 등 공정을 세계 각지에서 나눠서 분담하는 국제 분업 구조를 가리킨다. 중국이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며 저임금 생산기지를 자처하면서 본격화된 글로벌 가치사슬은 최근 들어 급격한 변곡점에 놓여 있다. 코트라의 설문 조사에 응답한 글로벌 기업들은 ‘보호 무역주의 심화’(27%)와 ‘기술 고부가가치화’(26%) 등을 가치사슬 재편의 배경으로 꼽았다. ‘코로나19 확산 대응’(20%)과 관련된 사유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작았다.
글로벌 가치사슬의 재편 양상은 우선 ‘생산의 탈중국화’로 나타나고 있다. 조사 결과, 자동차, 전기·전자 기업들을 중심으로 중국 생산라인을 아세안과 중남미 등지로 옮기려는 움직임이 뚜렷했다. 미·중 통상 분쟁으로 인한 중국산 제품의 대미 수출 관세부담 증가가 주된 원인이다. 상대적으로 생산비용이 저렴한 아세안 지역은 중국에서 이탈한 공장을 다수 유치하면서 새로운 제조업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다. 대신 기획, 연구개발(R&D) 사업 기능의 국가별 유입 비중은 중국이 세계 1위(39%)를 차지했다. 특히 기업들이 미래차, 전기·전자 신산업 분야에서 중국 기업과의 합작을 통한 제품 개발을 기대한다는 게 코트라의 설명이다.
또 동남아·중남미 등 신흥시장에서는 부품조달부터 생산·유통을 현지에서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자체 완결형 공급망이 조성되는 중이다. 동남아 지역은 그간 중국이 장악해온 전기전자·정보통신(IT) 분야의 생산거점으로 새롭게 부상하면서 현지 부품조달이 확대되고 있다. 현지 유통망 구축에 필요한 신규 투자도 활발하다. 중남미에서는 최근 발효된 지역무역협정(USMCA)에 따라 자동차 산업을 중심으로 생산·구매 활동이 강화되고 있다. 이렇게 주요 권역별 가치사슬이 강화되면 기존 한국과의 교역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고부가가치 신기술 선점을 위한 글로벌 기업 간 합종연횡도 나타난다. 첨단기술·디자인 개발을 희망하는 글로벌 기업 60%가 전략적 제휴를 추진 중이거나 계획하고 있다. 특히 ‘아이티·소프트웨어’(43%), ‘자동차부품’(34%) 분야 글로벌 기업들은 한국 기업과의 첨단기술 협력에 관심이 컸다. 글로벌 기업들이 국내 유망 투자분야로 꼽은 분야는 의료·바이오 스타트업’(31%)과 ‘아이티·모바일 기술서비스’(26%) 순서대로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코트라는 “글로벌 가치사슬 재편 움직임에 우리가 효율적으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교역·투자 활동의 어려움은 더욱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며 “이번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선제적 조치를 통한 국내 기업의 해외진출 강화, 글로벌 기업과의 연구개발 협업, 국내 기업의 가치사슬 생태계 강화가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특히 “글로벌 기업이 새 지역에서 새로운 가치사슬을 형성하는 과정에 국내 기업이 적극적으로 편입될 수 있도록 수요를 조사하고 프로젝트를 발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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