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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산업·재계

[단독] 10년간 반도체 석·박사 3천명 양성 사업 ‘예타 탈락’

등록 2021-05-03 04:59수정 2021-05-04 00:25

글로벌 반도체 전쟁 대응전략 차질 불가피
‘양적 목표’ 매달리다 준비 부족 등 한계 드러내
성윤모(오른쪽)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달 14일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를 방문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성윤모(오른쪽)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달 14일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를 방문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앞으로 10년간 반도체 석·박사 3000명을 키우기 위한 민관 연구개발(R&D) 지원 사업이 사업 예비타당성 심사에서 최종 탈락했다. 글로벌 반도체 전쟁 위기에 대응해 내년까지 4800명 이상의 관련 인력을 양성·배출하려 한 정부의 계획도 차질을 빚게 됐다. 일부에선 정부의 인력 양성 프로그램이 양적인 측면에 치중된 터라 산업 현장의 기대에는 못 미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2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달 30일 ‘반도체 고급인력 양성 연계 민관협력 산학 원천기술 개발사업’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의 국가연구개발사업평가 총괄위원회의 심사에서 최종 탈락했다. 과기부 쪽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조사에 참여한 전문가들도 인력양성의 정책적 필요성은 공감했지만, (지난해 조사를 신청한 사업이) 최근 국제적인 반도체 이슈에 따른 상황을 좀더 반영해야 한다는 점과 (기존 R&D 사업과 달리) 인력양성에 초점을 맞춘 만큼 산업계가 진짜 필요한 인력 수요를 보다 명확하게 조사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 등이 나왔던 것 같다”고 탈락 이유를 설명했다.

이 사업은 내년부터 2031년까지 현장형 석·박사 반도체 분야 전문인력 3000명 양성을 목표로 기획돼 총사업비 기준 3천억원이 소요된다. 정부와 삼성전자·에스케이(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이 각각 절반씩 사업비를 부담하고, 대학·연구소 과제별로 반도체 기업의 책임·수석급 엔지니어가 배정돼 기술 멘토링을 지원한다. 정부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내년까지 420명의 실전형 반도체 석·박사 인력을 배출하겠다고 지난 1월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정부가 글로벌 반도체 경쟁에 대비해 급히 마련한 반도체 인력 양상 계획 자체가 차질을 빚게 됐다. 정부가 올해와 내년 2개년 동안 육성키로 한 반도체 전체 석·박사급 인력 958명 중 43%가 이 사업을 통해 양성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안진호 한양대 교수(신소재공학)는 지난달 28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서 이 사업의 탈락 위기에 대해 “우리나라 아르앤디 컨트롤타워의 머리와 손이 따로 놀고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한겨레> 취재 결과 정부의 인력 양성 계획에는 또다른 허술한 대목도 있다. 정부는 지난달 카이스트가 이끄는 반도체설계교육센터(IDEC·아이덱)와 경기도 판교의 시스템반도체설계지원센터를 통해 내년까지 반도체 설계 전문인력 약 2700명을 배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전체 반도체 양성 예정 인력(4800명)의 절반을 넘는다. 구체적으로 아이덱과 연계된 전국 거점대학 6곳(지난해는 8곳)은 올해와 내년에 걸쳐 모두 1500명에게 설계 전문교육을 진행한다. 교육 대상의 대부분은 반도체 관련 석·박사과정생 및 졸업자다. 이 사업을 기획한 한국산업기술진흥원 쪽은 “반도체 회로설계에 필요한 전자설계자동화 소프트웨어(EDA Tool)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아이덱이 툴을 전국 거점대학에 공급하면, 해당 대학의 반도체 관련 석·박사과정생 및 졸업자 등이 일주일 정도의 설계 실습교육을 받는 것”이라며 “(4월에 정부가 추가로 발표한) 1200명의 설계 전문인력 양성에 대해선 현재 사업 기획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렇게 될 경우 정부가 내년까지 배출하기로 한 반도체 석·박사급 인력 958명 가운데 상당수는 별도의 인원으로 집계된 설계 실무인력 교육 대상과 겹치게 된다는 점이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도 이런 중복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산업부 관계자는 “(반도체 관련 석·박사과정생들이 아이덱 등에서 추가로) 수업을 들을 수 있겠다. (중복 여부가) 좀 애매하긴 하다”고 말했다. 4800명이라는 양적 규모에 집착한 나머지 사업 간 중복 지원 가능성은 면밀히 따져보지 못한 셈이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반도체 인력난’ 왜 생기나?…“패션처럼 유행타는 정부 산업정책 문제”

삼성전자와 에스케이(SK)하이닉스는 매년 높은 입사경쟁률을 보이는 회사인데, 반도체 업계는 왜 ‘사람 부족’을 하소연할까.

반도체 산업은 설계와 생산을 함께 하는 종합반도체기업(삼성, SK하이닉스) 외에도 이들 기업에 납품하는 소재·부품·장비(소부장)업체와 팹리스(반도체 설계회사) 등이 결합해 하나의 ‘생태계’를 이룬다. 그런데 대학에서 배출되는 반도체 관련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중소·중견기업은 우수인력을 대기업에 빼앗긴다며 볼멘소리를 하고, 대기업은 지원자는 많아도 원하는 수준의 인력을 찾기 어렵다고 아쉬워한다. 여기에 더해 최근 글로벌 반도체 경쟁의 심화로 기업들이 연구개발 투자를 앞다퉈 강화하면서 인력난은 중장기적으로도 가중될 여지가 있다.

전문가들은 2010년대 들어 반도체 분야에 대한 정부의 연구개발(R&D) 지원 규모가 들어든 현실에 주목한다. 장기간 반도체 관련 학과에서 석·박사급 인력 배출이 크게 줄어든 핵심 이유라고 봐서다. 대학원 석·박사 과정에 필요한 연구과제는 대부분 정부 지원금을 받아 운영되는데, 이 지원이 끊기면 교수는 반도체 연구를 접고, 결과적으로 연구실에선 해당 분야 석·박사과정생을 키우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한 예로 지난 2016년 정부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신규 아르앤디 예산은 ‘0원’이었다.

이런 흐름 속에 반도체 관련 학과 교수들은 하나둘 인공지능(AI) 등 이른바 ‘뜨는 분야’로 관심을 돌렸다. 한국 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인 박재근 한양대 교수(융합전자공학부)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2015~2017년께 (정부 지원을 못 받아) 나 역시도 연구분야를 바이오 센서 쪽으로 돌렸었다”고 토로했다. 한태희 성균관대 교수(반도체시스템공학과)는 “정부 입장에선 신규 분야에도 투자는 해야 하고, 재원은 한정돼 있다 보니 특별히 잘못으로 보긴 어렵다”면서도 “(정부 연구개발 지원이) 그때그때 사회적 이슈 등에 의해서 많이 좌우되는 건 사실”이라고 평가했다. ‘패션’처럼 유행을 따라 춤춘 정부의 산업 지원 정책이 체계적인 반도체 분야 인력 양성에 걸림돌로 작용했다는 뜻이다. 선담은 기자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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