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국내 통번역사 채용시장의 ‘큰 손’으로 떠올랐다. 특히 코로나19로 국제회의 등이 사라지고 프리랜서 활동이 여의치 않자 통번역사들이 ‘사내 상근직’(인하우스)으로 눈을 돌리는 와중에, 외국인 임직원이 많아 사내 통번역 수요가 많은 쿠팡이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18일 <한겨레>와 통화한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관계자는 “올해 2월 대학원 한영과 졸업생 27명 중 대부분이 쿠팡에 취업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나 공공기관으로 간 소수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인원이 쿠팡으로 간 셈”이라며 “쿠팡에서도 사람이 많이 필요한지 인턴 제도까지 운영하자고 제안할 정도”라고 덧붙였다. 실제 한국외대 통번역센터 누리집 채용공고를 보니, 올해 들어서만 쿠팡의 통번역사 채용공고가 13건이나 올라왔다. 한 통번역사 채용 에이전시 관계자도 “쿠팡은 2018~2019년부터 적극적으로 통번역사를 채용하며 쓸어가다시피 했다”고 말했다.
쿠팡 쪽은 정확한 사내 통번역사 숫자는 밝히길 꺼린 채 “수십명 수준”이라고만 했지만, 어림잡아 100명에 가까울 것이란 이야기가 나온다. 지난해 12월 직장인 익명앱 ‘블라인드’에서도 한 쿠팡 직원이 “이렇게 (통번역사가) 많은 경우는 처음 본다. 진짜 많다”며 “물론 요즘 통번역사 채용도 쉽지 않아서, 내부 수요를 공급이 못 따라가고 있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처럼 쿠팡이 통번역사 채용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사내 외국인 임직원이 눈에 띄게 많아서다. 잘 알려진 대로 미국 국적인 김범석 쿠팡 최고경영책임자(CEO)를 비롯해 거라브 아난드 최고재무책임자(CFO), 투안 팸 최고기술책임자(CTO), 해롤드 로저스 최고행정책임자(CAO) 등 이른바 주요 ‘C레벨’ 임원 중 미국인이 많다. 국내 주요 대기업이 해외 지사와의 소통이나 글로벌 회의 참석 혹은 주요 거래 등 일부 부서나 임원들에 한정해 ‘이따금’ 통번역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것과 달리, 쿠팡에선 일상적인 사내 소통을 위해 통번역이 필수적인 환경인 셈이다.
이에 따라 쿠팡은 관련 부서를 몇개씩 묶어 담당 통번역팀을 개별로 두고 운영 중이다. 예를 들어 쿠팡에서는 한국인 직원과 외국인 직원 사이에서 전자우편을 보내야 할 경우, 팀마다 배정된 번역사의 메일 주소를 ‘참조’에 넣어 보내면 수시간 안에 매끄럽게 번역돼 전달된다고 한다. 거의 모든 영상·대면 회의에도 통역사가 들어와 회의 내용을 통역한다.
처우 면에서도 쿠팡의 행보는 남다르다. 주요 대기업이 사내 통번역사를 대체로 1~2년 단위로 계약직 채용하는 것과 달리, 3개월 계약직으로 우선 일을 시작한 뒤 이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타사에 견줘 좀 더 높은 연봉을 제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주요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한 뒤 활동하는 통번역사들은 사실상 전문직에 가까운 탓에 안정적인 정규직 자리를 선호하기보다 이력을 쌓아 이동하는 일이 잦아 그만큼 퇴사하는 인원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쿠팡보다는 다소 규모가 적지만, 게임 ‘배틀그라운드’를 만든 크래프톤 자회사 ‘펍지’도 이례적으로 수십명으로 꾸려진 별도 통번역팀을 운영 중이다. 도쿄·상하이·암스테르담·산타모니카 등 글로벌 지사에서 현지 채용한 직원들과 실시간 소통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체 직원 2천여명 중 절반이 외국인일 정도다. 펍지 관계자는 “게임 개발업이 본업인 만큼 개발자들이 언어 때문에 불편하지 않도록 게임 이해도가 높은 통번역사들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