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대통령, 부동산정책라인 쇄신결심 배경
추병직(秋秉直) 건설교통부 장관과 정문수(丁文秀) 청와대 경제보좌관, 이백만(李百萬) 청와대 홍보수석이 14일 사의를 표명한 것은 최근 아파트값 폭등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는 성격이 짙다.
이들 모두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부담을 드리지 않기 위해 물러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이들의 인책 여론이 비등한 가운데 청와대가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이 사실을 신속하게 공개한 사실 자체가 '인책'의 모양새를 띠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당초 청와대는 15일로 예정된 부동산대책 발표 후 추 장관이 사의를 표명하고,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이를 수용하는 선에서 이번 사태를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참여정부의 부동산정책을 상징하는 8.31 대책을 주도한 정 보좌관을 교체 대상에 포함시킬 경우 투기수요 억제와 공급확대를 양대 축으로 한 부동산 정책기조의 변화로 해석되면서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지금 집 사면 낭패"라는 청와대 브리핑 글로 물의를 빚은 이백만 수석에 대해서도 청와대는 이날 아침까지만 해도 "교체 사유가 될 수 없다"며 인책 불가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던 청와대 기류는 사퇴가 예상됐던 추 장관 외에 정 보좌관과 이 수석이 이날 오전 차례대로 사의를 표명하면서 기류가 급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추 장관만 퇴진할 경우, 사태가 봉합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청와대 참모 문책론이 더욱 거세지면서 또 다른 논란을 낳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동반 퇴진'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후문이다. 민심을 수용한다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주고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데 방점이 찍혔다고 볼 수 있다.
추 장관은 내각에서 부동산 정책과 실무행정을 총괄해왔고, 정 보좌관은 노 대통령의 '경제교사'로서 8.31, 3.30 대책을 마련한 브레인이다.
또 이 수석은 정책 수립에는 직접 관여하지 않았지만 부동산정책 홍보 책임자라는 점에서 이들의 일괄 사의는 부동산 정책 라인의 전면 교체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청와대가 이들의 사의를 즉각 수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무엇보다 집값 파동으로 인한 민심 이반이 '부동산 민란'으로 표현될 만큼 위험 수위를 넘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차제에 부동산 정책라인에 대한 인적쇄신을 단행하지 않을 경우 민심 이반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까지 심화되면서 임기말 안정적 국정운영도 저해할 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작동했다는 것이다.
'시장의 위기'도 이들의 동반 퇴진을 불가피하게 한 배경이 됐다는 분석이다. 부동산정책의 성패 여부를 떠나 부동산 시장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 상태에서 기존의 라인업으로 정책을 계속 끌고 가기 어렵다는 정책적 고려가 깔려있다는 얘기다.
이 상황에서 인사권자인 노 대통령으로서도 부동산정책으로 야기된 국정 혼선과 정치적 비효율을 조속히 해소하기 위해 사의표명 형식을 띤 책임자 경질을 선택하는 것외에 다른 여지가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 연장선에서 "부동산 문제는 반드시 잡겠다"는 노 대통령 특유의 집념도 이번 문책성 인사에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노 대통령은 그동안 '온정주의'라는 비판을 들을 만큼 여론에 떼밀린 인사를 체질적으로 싫어하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전례없이 비교적 신속한 인사라는 점에서 부동산 정책을 직접 챙기겠다는 노 대통령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청와대가 부동산 추가대책 발표를 하루 앞둔 시점에서 추 장관 퇴진을 기정사실화한 것도 서민들의 상처난 가슴을 어루만지고 시장에 보다 강력한 메시지를 주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결과적으로 청와대가 정치권, 특히 여당의 의견과 여론을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는 점도 노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 변화, 나아가 국정운영 방식의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어 주목된다.
실제로 이 수석의 글로 촉발된 이번 사태 과정에서 청와대는 여당과 각종 채널을 통해 지속적으로 의견을 조율했으며, 그 결과 부동산 정책라인 쇄신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날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추 장관 등에 대한 여당의 사퇴요구가 공개적으로 제기되기 이전에 이미 당청간에는 인책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후문이다.
여기서 더욱 주목되는 것은 부동산 정책라인의 일괄 사의표명이 지난달 말 외교안보라인 개편 때처럼 일종의 '국면전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찔끔개각'이라는 조어를 낳을 만큼 "개각은 인사요인이 생기면 한다"는 그간의 인선 기조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강력한 투기억제와 공급 확대 조치를 양대 축으로 하는 부동산정책을 비롯한 참여정부의 주요 정책 기조가 바뀔 것 같지는 않다.
노 대통령부터가 국정과제 마무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핵심 정책의 개혁적 기조는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게 청와대 참모들의 설명이다.
결국 부동산 정책 책임자들의 이번 일괄 사의표명은 여론 수렴에 따른 인적쇄신을 통해 민심과 시장을 조기에 안정시킴으로써 임기말 개혁과제를 흔들림없이 추진하겠다는 노 대통령의 의지가 담긴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재현 기자 jahn@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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