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루 쿠오모 전 뉴욕 주지사(왼쪽)와 동생인 <시엔엔>(CNN) 앵커 크리스 쿠오모. AP 연합뉴스
<시엔엔>(CNN) 방송의 유명 앵커 크리스 쿠오모가 형인 앤드루 쿠오모 전 미국 뉴욕 주지사의 성폭력 논란 무마에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드러나 직업윤리 위반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성폭력 혐의로 기소된 쿠오모 전 지사 사건에서 뉴욕주 검찰이 29일 법정에 제출한 증거를 통해 동생 크리스가 사건 대응과 무마에 광범위하게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크리스가 형에게 조언해줬다는 사실은 이미 드러난 바 있지만 이번에 공개된 증거들은 이를 크게 뛰어넘는 수준으로 개입했음을 보여준다.
크리스는 쿠오모 전 지사가 결혼식장에서 만난 여성 얼굴을 만지면서 “키스해도 되겠냐”며 추행한 사실이 있다고 <뉴욕 타임스>가 3월에 보도하자 형의 보좌관 멀리사 디로사에게 “내가 돕겠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후 크리스는 디로사와 밀접하게 접촉하며 언론 보도 동향 점검 등 사건 대응과 정보 수집에 적극 힘을 보탰다. 의혹을 부인하고 사퇴 요구를 강하게 일축하는 쿠오모 당시 주지사의 입장문을 직접 써주기도 했다. 또 다른 언론들의 보도 동향이나 추가 폭로에 대해서도 취재해 디로사에게 전달했다. 디로사가 “내일 아침 <폴리티코>가 기사를 내보낸다는 말이 있다”고 하자 상황을 알아본 뒤 “그런 소리를 들은 사람은 없다”고 답하기도 했다. 피해자에 대한 정보를 모으기도 했다.
크리스는 수사기관에서 “정보원이나 다른 언론인들과 접촉해 또 다른 누가(피해자가) 있는지 알아보려 했다”고 진술했다. 또, 앞으로 보도할 내용에 대해 다른 언론인들과 대화하는 것은 일상적이라고 주장했다. 크리스는 앞서 자신의 개입 의혹이 처음 제기됐을 때 사과의 뜻을 밝히면서도 “가족을 보호하려고 했다”고 해명한 바 있다.
그동안 이 사건에 대한 자사 앵커의 개입 논란에 침묵을 지키던 <시엔엔>도 구체적 증거가 나오자 “자료를 심도 있게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크리스는 현재 이 방송에서 ‘쿠오모 프라임 타임’을 진행하고 있다.
쿠오모 전 지사는 3차례 뉴욕 주지사를 지낸 아버지에 이어 2011년부터 뉴욕주를 이끌었다. 지난해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가 심각해지자 적극적인 대응으로 주목받기도 했지만 그해 12월부터 성폭력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사퇴 요구에 저항하던 그는 올해 8월 검찰이 피해자 11명에 대한 성폭력이 확인됐다고 밝힌 직후 물러났다.
이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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