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2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의회를 떠나며 손을 흔들고 있다. AFP 연합뉴스
온갖 논란에도 대만행에 나선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은 오래전부터 중국 민주화와 인권 문제에 천착해온 대표적 정치인이다. 이번 대만행에는 이런 오랜 활동이 밑바닥에 깔린 것으로 보인다.
펠로시 의장과 중국 정부의 ‘악연’은 1989년 중국 당국이 시민과 학생들의 민주화 요구를 유혈진압한 이른바 ‘톈안먼(천안문)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당시 경력 2년의 하원의원으로 중국 당국의 무력진압을 비난하는 결의안을 주도했고, 나중엔 중국인의 미국 유학을 제한하는 법안에 조지 부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자 이를 강력 비난했다.
펠로시 의장은 2년 뒤 베이징을 방문했을 땐 동료 의원들과 함께 톈안먼 광장으로 가 “중국 민주주의를 위해 숨진 이들에게”라고 쓰인 현수막을 펼쳤다. ‘톈안먼 사건’ 당시 희생된 시민들을 추모하는 돌발행동이었다. 허를 찔린 중국 공안은 허겁지겁 이들을 해산시키고 취재 기자를 강제 연행하는 과잉 대응을 서슴지 않았다. 이때부터 중국 정부는 그를 ‘외교적 기피인물’(persona non grata)로 여겨왔다.
펠로시 의장의 중국에 대한 매파적 시각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그는 1990년대 빌 클린턴 정부에 중국의 무역 지위를 인권 기록과 연계할 것으로 요구했으며, 버락 오바마 정부에선 과거 톈안먼 사건과 관련해 중국에 우호적인 발언을 한 인사의 정보책임자 임명을 막았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는 티베트 인권 침해를 문제 삼아 보이콧을 주장했고,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 때는 민주화 인사들을 의회로 초청해 중국 당국과 또 갈등을 겪었다. 존 매케인 전 상원의원 보좌관 출신인 에릭 세이어스는 “중국 인권 감시자들은 중국 이슈에 관한 한 펠로시 의장에 늘 존경을 보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펠로시 의장은 미국의 정치전문지 <폴리티코>에서 미국의 외교정책 목표로 안보와 경제적 이익, “우리의 가치에 대한 존중” 등 세 가지를 꼽으며 “상업적 이해관계 때문에 중국의 인권 문제에 나서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느 곳에서도 인권을 말할 도덕적 권위를 갖지 못한다”고 말했다.
펠로시 의장의 대만행은 조 바이든 행정부의 경고와 만류에도 미국 정치권에서 이념적 지형을 떠나 꽤 지지를 얻고 있다. 1997년 하원의장이던 뉴트 깅그리치가 대만을 방문했던 전례도 있다. 보브 메넨데스(민주당) 상원 외교관계위원장은 “누가 대만에 가고 못 가고를 중국이 지시하게 내버려둔다면 그건 대만을 중국에 양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대의 목소리도 있다. 전 <시엔엔> 기자였던 마이크 치노이는 최근 언론기고에서 1991년 펠로시의 톈안먼 광장 시위를 직접 취재했던 일을 거론하며, 그때와 달리 “상황이 악화하면 그 후유증을 마주해야 하는 건 대만사람들”이라고 비판했다. 또 펠로시 의장이 2009년 중국을 방문했을 때 인권 문제를 거론하지 않은 전례를 들어 그의 의도를 의심하는 시각도 있다. 이에 대해 펠로시 의장은 당시 방문 목적이 기후변화 협력이었다며 “환경 보호는 인권 이슈”라고 반박하고 있다.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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