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숨졌을 때 3살, 9살이던 손녀와 손자는 이제 5살, 11살이 됐다. 나디아 매카프리(61·캘리포니아 트레이시 거주)는 아직도 이들을 볼 때마다 아들 생각에 눈시울이 젖는다. 그의 아들 패트릭(당시 34)은 2004년 6월 이라크에서 전사했다. 파병 3개월 만이었다.
조지 부시 미 행정부가 이라크를 침공한 지 3년, 그의 아들 패트릭이 이라크로 떠난지 꼭 2년이 지났다. 침공 3주년인 올해는 어느 때보다 바쁘다고 매카프리는 말했다. 그는 전화 인터뷰에서 “17일엔 산타바바라 반전집회에 참석했고, 18일엔 샌프랜시스코 부근 프레스노에서 열린 반전시위에 참가했다. 힘이 닿는 대로 어디든지 참석해 연설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들의 주검을 실은 관이 새크라멘토 공항에 도착했을 때 이 모습을 언론에 처음으로 공개했다. 부시 행정부는 숨진 병사의 관이나 장례식 사진을 철저히 통제했다. 반전 분위기를 차단하려는 시도였다. 나디아는 “부시는 우리를 속였다. 나는 사람들이 진실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아들의 관을 공개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때부터 나는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얘기하고 또 얘기했다. 전쟁을 끝내고 병사들을 집으로 돌아오게 해야 한다고…. 부시 행정부는 너무 나갔다. 미국민들이 느리긴 하지만 이제 (이라크 침공을 지지했던) 자신들이 틀렸다는 걸 깨닫고 있다.”
‘미군이 철수하면 이라크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나디아는 아들이 숨지기 전 자신에게 전한 이라크 상황을 얘기했다. “패트릭은 이라크 주민들이 (미군) 점령에 분노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군들에게 쓰레기를 던진다고 말했다. 미국은 지금 이라크에서 존경받지 못한다. 우리는 그들(이라크인)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
이라크 전쟁 3년은 그가 사는 캘리포니아 트레이시에도 깊은 상흔을 남겼다. 인구 7만6천여명의 작은 도시에서, 나디아의 아들 패트릭을 비롯해 5명이 이라크에서 전사했다. 반전운동으로 유명해진 나디아는 동네 슈퍼마켓을 가면 일부 이웃의 차가운 시선을 지금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도 ‘미군 철수’ 목소리가 다수로 변한 최근 분위기를 얘기하며, 희망이 커진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전쟁에 반대할) 권리를 포기해선 안 된다. 우리는 여전히 큰 소리로 외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워싱턴/박찬수 특파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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