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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셋방서 이룬 ‘아메리칸 드림’…주변인 맴돌다 ‘어이없는 참극’

등록 2007-04-18 21:42수정 2007-04-19 00:53

총기 난사범 조승희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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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수도 워싱턴의 신흥 개발지역인 센터빌에 사는 조아무개(62)씨네는 사흘 전까지만 해도 남부럽지 않은 가정이었다. 값이 40만달러(약 3억7천만원)인 2층짜리 타운하우스에 살고, 딸(26)과 아들(23)은 명문대인 프린스턴대와 버지니아공대에 보냈다.

조씨는 한국에서 건너 간 100만여 한인 이민자들 가운데 전형적인 성공사례였다. 1992년 9월 태평양을 건넌 그는 특별한 전문기술이 없는 한인 이민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세탁소를 운영하며 경제적 안정을 이뤘다. 특히 한인 이민자들의 가장 큰 꿈인 자녀들의 명문대 진학을 성공시켰다.

이민 가기 전 방 둘짜리 반지하 집에서 월세로 살 만큼 조씨 가족의 형편은 넉넉지 않았다. 조승희씨의 외할아버지인 김아무개(81)씨는 18일 <한겨레>와 단독 인터뷰에서 “사위(조씨)가 결혼 전 사우디아라비아에 가 건축 노동자로 일해 모은 돈으로 서울 홍은동에서 작은 헌책방을 했다”고 말했다. 김씨에 따르면 조씨 가족의 미국행은 자녀들의 교육을 위한 것이었다. 전형적인 ‘아메리칸 드림’의 출발이었다.

조씨와 아내(56)의 자녀 사랑은 여느 한국 가정처럼 각별했던 것으로 보인다. 센터빌의 이웃들은 조씨 부부가 차로 왕복 8시간 거리에 있는 대학에 다니는 아들을 데려오거나 데려다줬다고 말했다. 이웃 압둘 샤시는 그들이 아들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16일 조씨네의 모든 꿈은 한꺼번에 무너졌다. 미국 생활 15년 동안 온힘을 쏟아 기른 아들이 미국과 고국을 발칵 뒤집은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그가 희생시킨 32명과 함께 생명을 버렸다.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외할아버지 김씨는 승희가 “똑똑했던 누나와 달리, 말을 못하는 게 아닌가 걱정할 정도로 말수가 적어 속을 썩혔다”고 기억한다. 한국에서 조씨를 기억하는 이들은 그냥 ‘조용한 아이’였다고만 말했다. 이민을 떠나기 직전인 서울 ㅅ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인 노아무개(65)씨는 18일 <한겨레> 기자에게 “조씨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지 않은 걸로 봐 지극히 평범한 학생이었던 듯하다”고 말했다. 조씨네가 이민 전 월세 살았던 서울 창동의 집주인 임씨는 “굉장히 조용했던 아이로 기억하는데, 이런 일을 벌였다니 너무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의 주변인들과 언론이 전하는 조씨는 아주 ‘괴상한’ 성격과 행태를 보였다. 기숙사 방의 친구와도 얘기를 나누지 않고,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을 정도로 폐쇄적이었다는 ‘증언’들이 쏟아진다. 지난해 가을 조씨와 함께 작문 과목을 수강한 학생은 17일 그가 끔찍한 살인과 성적 학대 등으로 채워진 창작 희곡을 과제물로 제출했다고 말했다. 전 영문과 학과장도 조씨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구내 경찰에 알리기도 하고 개인 면담도 했다고 말했다. 조씨와 같은 방을 쓴 전기공학과 4학년생 조지프 오스트는 <로스앤젤레스타임스>와 인터뷰에서 “그는 (피시에서) 음악을 내려받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물음에는 짧게만 답하고 말을 걸어도 좀처럼 대화에 응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고교 동창들도 그를 음울하고 과묵한 성격으로 묘사한다. 웨스트필드 고교 동창인 재미동포 박아무개씨는 “그는 언제나 통학버스 앞자리에 조용하게 앉아 있었다”며, 한인 학생들과도 어울리지 않은 채 혼자서 지냈다고 기억했다.

겉으로 조용했던 그가 남긴 글들은 섬뜩하다. 범행 당일에는 학교 홈페이지에 “오늘 버지니아공대 인간들을 죽이겠다”는 글도 올렸다고 학교 쪽이 밝혔다. 정신건강과 관련한 약을 복용한 것으로 조사됐지만, 여자친구가 실제 있었는지와 그와의 갈등이 범행 동기가 됐는지를 두고는 말이 갈린다.

삽시간에 32명의 목숨을 빼앗을 정도의 분노가 근본적으로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이민 1.5세대로 정체성 혼란에 빠져 비뚤어진 길로 나아간 게 아닌지 등의 의문은 당분간 시원하게 규명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엄청난 충격에 빠진 미국에서, 15년 동안 일군 꿈의 몰락을 봐야 하는 조씨 일가를 동정할 공간도 별로 없어 보인다. 블랙스버그/류재훈 특파원, 워싱턴/장정수 기자, 이본영 이정애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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