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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어머니 앤 던햄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오바마. AP/연합
상류층 코스 밟으며 다면적 모습 갖춰
“인종관 뚜렷해야” 일부선 비판 제기
“인종관 뚜렷해야” 일부선 비판 제기
미국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은 인종적으로는 흑인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전형적인 기존 ‘흑인 정치인’의 범주에서 벗어난 다면적 모습이 광범위한 인기의 비결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오바마는 엄밀히 말하면 ‘흑백 혼혈’이다. 케냐 출신인 그의 아버지는 하와이 유학 중에 백인 아내를 만났다. 그 뒤 오바마는 어머니의 재혼으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고등학교는 외가가 있는 하와이에서 마쳤다. 오바마는 10대 시절 정체성 고민에 빠져 술과 마약에 손을 대기도 했다.
오바마의 삶은, 흑인의 정체성을 뚜렷이 내세우며 대중운동을 이끌었던 기존의 흑인 정치지도자들과 출발점부터 다르다. 대다수 흑인 정치인들은 인종차별 철폐 운동을 발판 삼아 정치권에 진입했다. 과거에도 대권에 도전한 흑인들이 있지만 상징적 존재에 그쳤다. 84, 88년 두 차례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던 흑인 민권운동가 제시 잭슨은 16살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 학교에선 여느 흑인들처럼 빼어난 운동선수에 지나지 않았다. 잭슨은 마틴 루서 킹 등이 주도한 거리시위에 참여하면서 운동가로 성장했다.
반면, 오바마는 투쟁 구호가 넘쳐난 거리가 아닌, 아이비리그에서 정제된 교육을 받았다. 뉴욕 컬럼비아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하버드 로스쿨을 우수한 성적으로 마쳤다. 인권변호사로 명성을 높였으며, 대학의 인기 강사로 활약했다. 주 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해 중앙 정치 무대로 옮기는 일반적인 경로를 밟았다. 그 밖에도 ‘흑인 정치인’의 잣대만을 적용하기 힘든 부분은 적지 않다. 자신의 책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에서 오바마는 어머니 쪽 조상을 신대륙 개척시대의 백인 이주자 집단에 연결짓는다. 9·11 이후 반무슬림 감정이 고조되면서 가운데 이름 ‘후세인’을 바꿔야 한다는 조언이 주변에서 나왔지만, 그는 “아메리칸 드림이 진실에 눈뜨게 할 것”이라며 무슬림인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을 지켰다. 미국 언론들은 2004년 연방 상원의원 선거 때부터, 그에게 어디에나 속할 수 있다는 뜻으로 ‘에브리맨’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또다른 책 <담대한 희망>에서 오바마는 스스로를 “단지 민주당원일 뿐”이라고 규정했다. 인종 문제에 대한 그의 이런 자리매김은 경선 과정에서 다수 백인들이 그에게 유대감을 좀더 쉽게 나타낼 수 있도록 하는 촉매제 구실을 했다. 그러나 오바마에게 더욱 선명한 인종관을 기대하는 흑인운동 세력에선 그에게 ‘과연 충분히 검은가’라며 정체성을 확인하는 질문을 던진다. 인종차별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는다는 비난도 나왔다. 이에 오바마는 “우리(흑인들)는 아직도 백인에게 인기를 얻는 게 뭔가 문제가 있다고 여긴다”며 ‘흑백논리’를 부정했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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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살 때 8년 만에 케냐에서 방문한 자신의 아버지를 만나 기뻐하는 오바마. AP/연합
반면, 오바마는 투쟁 구호가 넘쳐난 거리가 아닌, 아이비리그에서 정제된 교육을 받았다. 뉴욕 컬럼비아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하버드 로스쿨을 우수한 성적으로 마쳤다. 인권변호사로 명성을 높였으며, 대학의 인기 강사로 활약했다. 주 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해 중앙 정치 무대로 옮기는 일반적인 경로를 밟았다. 그 밖에도 ‘흑인 정치인’의 잣대만을 적용하기 힘든 부분은 적지 않다. 자신의 책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에서 오바마는 어머니 쪽 조상을 신대륙 개척시대의 백인 이주자 집단에 연결짓는다. 9·11 이후 반무슬림 감정이 고조되면서 가운데 이름 ‘후세인’을 바꿔야 한다는 조언이 주변에서 나왔지만, 그는 “아메리칸 드림이 진실에 눈뜨게 할 것”이라며 무슬림인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을 지켰다. 미국 언론들은 2004년 연방 상원의원 선거 때부터, 그에게 어디에나 속할 수 있다는 뜻으로 ‘에브리맨’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또다른 책 <담대한 희망>에서 오바마는 스스로를 “단지 민주당원일 뿐”이라고 규정했다. 인종 문제에 대한 그의 이런 자리매김은 경선 과정에서 다수 백인들이 그에게 유대감을 좀더 쉽게 나타낼 수 있도록 하는 촉매제 구실을 했다. 그러나 오바마에게 더욱 선명한 인종관을 기대하는 흑인운동 세력에선 그에게 ‘과연 충분히 검은가’라며 정체성을 확인하는 질문을 던진다. 인종차별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는다는 비난도 나왔다. 이에 오바마는 “우리(흑인들)는 아직도 백인에게 인기를 얻는 게 뭔가 문제가 있다고 여긴다”며 ‘흑백논리’를 부정했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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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로스쿨에서 공부하던 시절 오바마. A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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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미셸과 1992년 결혼식 때의 오바마. A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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