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체인지’의 내용은
‘갈등정치’ 거부 초당적 협력 내세워
정책·비전 등 알맹이 채우기 ‘숙제’
‘갈등정치’ 거부 초당적 협력 내세워
정책·비전 등 알맹이 채우기 ‘숙제’
버락 오바마는 ‘변화’의 깃발을 앞세워 승리를 낚았다. 그가 민주당 경선에서 수없이 되풀이한 구호는 ‘우리는 변화를 믿는다’였다. <워싱턴 포스트>는 3일 “오바마는 8년에 걸친 조지 부시 대통령의 집권에서 오는 변화에 대한 굶주림을 잘 활용했다”며 “민주당 경선은 애초 경륜과 변화의 대결이었지만, 변화가 더 강력한 메시지임을 입증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부시 악몽’이라고 일컫는 대내외적 대립과 갈등의 정치에 대한 작별이자 심판·변화를 강력히 상징했다.
오바마는 특히 부시 대통령이 결정적으로 실패한 대외정책에서 변화를 내걸어 톡톡히 효과를 봤다. 오바마는 이라크에서는 16개월 안에 전면 철수하겠다고 선명하게 기치를 내걸었다. 이는 이라크전의 수렁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하는 대중 정서에 강한 호소력을 발휘했다. 2013년까지 순차적으로 철수하자는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와의 차이는 극명하다. 이라크 침공을 찬성한 전력으로, 이라크 철수를 선뜻 외칠 수 없는 힐러리와의 차별성도 도드라졌다. ‘민주당 대통령’이나 ‘공화당 대통령’이 아니라 ‘모든 미국인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초당적 협력정치 주장도 흡인력이 컸다. 고질적인 당파정치로 인한 대치와 비효율에 대한 국민의 염증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오바마가 말하는 변화는 구호나 이미지에 가까운 게 사실이다. 40대의 흑인이며, 부패한 워싱턴 정치에 물들지 않은 인물이라는 점이 이런 이미지를 극대화했다. 오바마는 변화 담론을 선점해 힐러리의 반격을 따돌릴 수 있었지만, 그의 입에서 기존 정치권 인사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차이가 무엇인지에 대한 해답은 충분히 제시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대통령 선출이야말로 변화라고 말한다. “미국에서 ‘흑인 대통령’은 ‘초록 대통령’만큼이나 낯선 말이었다”는 <워싱턴 포스트>의 보도에서 잘 드러나듯이, 인종 차별이 횡행해온 미국 역사에서 ‘흑인 대통령’만큼 분명한 변화와 화해의 상징물은 없다.
하지만 성향이 전혀 다른 공화당 후보와 무제한 격투를 벌여 대통령 자리에 오르려면 이런 추상적인 답변으로는 부족하다. 변화를 구체적으로 담보해줄 수 있는 콘텐츠를 정책으로 내놓아야 할 시점이 다가온 것이다. 오바마는 이민·낙태 등 전통적 선거 쟁점에서 민주당의 전통적 노선을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경쟁자인 힐러리와 비교해도 공약에서 큰 차이가 없다. 오바마에겐 자신만의 독특한 정책 대안이 없다는 비판이 따랐고, 건강보험이나 사회보장 등에서는 힐러리의 공약이 더 구체적이고 진보적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오바마의 변화 구호에 전폭적 지지를 보내기 어려운 이유다.
오바마는 3일 “이제 과거의 정책에서 새로운 장으로 넘어갈 때가 됐다”며 새로운 접근 방식을 시사했다. 그가 말하는 미국 사회의 ‘새로운 여행’의 구체적인 모습은 매케인과의 본선 대결에서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만약 그 내용물이 그에게 열광적 지지를 보낸 유권자들의 열망에 미치지 못한다면, 열풍은 쉽게 사그라들지도 모른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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