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부결됐나
하원의원들 ‘지역구 챙기기’ 정치적 판단
하원의원들 ‘지역구 챙기기’ 정치적 판단
미국 하원에서 29일(현지시각) 구제금융법안이 부결된 데는 ‘월가 부자 지원’에 대한 성난 민심이 결정적이었다.
의원실에는 민주·공화 양당을 막론하고 투표 직전까지도 구제금융 법안에 반대하는 이메일과 편지·전화가 폭주했다. 거리에선 항의시위도 잇따랐다. 앞서 26일 <에이피>(AP) 통신 여론조사에선 응답자의 30%만 구제금융 법안에 찬성한 반면, 45%가 반대했다. 대선과 총선을 앞둔 양당 의원들은 지역구 표심을 의식한 ‘정치적 판단’을 할 수밖에 없었다.
<타임>은 30일 인터넷판에서 “주요 정치지도자들 대다수가 법안 통과를 지지했음에도 막상 표결에서 부결된 것은, 미국민들이 워싱턴에 대해 느껴온 오랜 배신감이 정점에 이른 주목할 만한 사건”이라고 풀이했다. <워싱턴 포스트>의 미국 의회 전문 블로그인 ‘캐피톨 브리핑’의 벤 퍼싱은 29일 올린 글에서 이번 투표의 부결 원인을 △홍보 부족 △(유권자들에 대한) 두려움 △구심점 부재 △이념적 문제 △당파적 정견차이 등으로 정리했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도 이날 “금융시스템 구제 계획안이 부결된 것은 워싱턴의 정치적 리더십 실패의 산물”이라고 지적했다.
<시엔엔>(CNN)은 “하원 부결은 부분적으로는 조지 부시 대통령과 헨리 폴슨 재무장관의 실패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지난 9일간 ‘폭거’(정치권과 경제계의 구제금융 법안 마련)에 대한 대중적 반란”이라고 평가했다. 영국 <비비시>(BBC) 방송이 이날 “미국 유권자들은 현재의 금융위기를 서민들의 실제 삶에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보지 않으며, 구제금융안도 월가의 부자들을 위한 복지사업으로 여긴다”고 전한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로 이번 투표는 당론보다는 정치적 생존을 위한 자유투표에 가까웠다. 이런 경향은 집권 여당인 공화당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정부와 의회 지도부의 호소에도 공화당 의원 중 133명이 반대 쪽으로 몰표를 던졌다. 찬성 65표의 갑절이 넘는 수치다.
공화당의 한 의원은 투표 직전 “법안이 통과되길 원한다”면서도 “그러나 다른 사람이 찬성표를 찍길 바란다, 난 아니다”라고 말했다. 젭 헨살링 의원(공화당)은 “구제금융안은 연방정부가 최후의 보증인이 된다는 것인데, 이것은 이 나라를 사회주의로 밀어넣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의원들에게도 법안은 ‘뜨거운 감자’였다. 찬성표를 던진 캐럴린 멀로니 의원은 “이 표결로 의원직을 잃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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