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폴슨 미국 재무장관이 12일 워싱턴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구제금융안을 소비 부문의 신용경색을 푸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겠다고 밝힌 뒤, 고개를 숙여 아래를 보고 있다. 워싱턴/ 블룸버그 연합
자동차할부·학자금 융자·카드업체 지원키로
폴슨재무 “소비경색 심각…일자리 빼앗아”
폴슨재무 “소비경색 심각…일자리 빼앗아”
미국이 구제금융의 방향을 180도 바꿨다.
금융사들의 주택담보대출(모기지) 관련 부실 채권을 사들이겠다던 당초 계획에서 소비 관련 신용경색을 풀겠다는 쪽으로 방향을 확 튼 것이다. 구제금융의 초점을 금융에서 소비로 옮겨, 자동차 할부, 학자금 융자, 신용카드 업체를 지원할 계획이다. 급격한 방향 선회는 공황에 빠졌던 은행들이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는 반면, 실물경제 침체로 미국 경제의 70%를 차지하는 소비 부문이 꽁꽁 얼어붙는 과정에서 나왔다.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은 12일 기자회견에서 “상황이 더욱 악화했고, 현실이 변했다”며 “소비자 신용 부분의 경색은 자동차 할부, 학자금 대출, 신용카드 대출의 비용을 높이고, 접근성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말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가 전했다. 이에 따라 7천억달러의 구제금융 가운데 아직 배정되지 않은 나머지 4100억달러는 은행의 ‘재자본화’(공적자금을 투입해 은행의 자본구조 변경)를 통한 금융시스템 강화와 소비 신용의 경색을 푸는 데 쓰일 전망이다. 이는 2500억달러(1차), 3500억달러(2차), 1000억달러(3차)로 쪼개져 있는 구제금융의 2차분 집행에 대한 의회 비준에 앞서 나온 것이다.
폴슨 장관은 “소비 신용경색은 미국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고, 미국 경제에 수많은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고 밝혔다. 조지 부시 행정부가 당초 계획한 구제금융안은 금융사들로부터 부실 모기지 관련 채권을 사들여 금융시장을 안정을 꾀하겠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미 의회 통과를 거치면서 은행에 직접 자본을 투입하고, 주택담보 대출자를 지원할 수 있도록 수정된 바 있다.
미 정부가 은행의 부실자산을 사들이는 방식을 포기한 데는 부실자산의 가격을 정확히 산정하기 어려운데다, 그 효과를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폴슨 장관은 “(부실자산 매입이) 지금 구제금융을 사용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아니라는 게 우리의 평가”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소비 부문의 신용 경색이 심각한 수준으로 치달으면서, 구제금융의 우선 순위가 바뀐 것이다. <뉴욕 타임스>와 <블룸버그 뉴스>는 모두 “구제금융의 초점을 소비로 옮긴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9월 설계된 ‘부실자산 구제 프로그램’의 이름마저 바뀌어야 할만큼 상황은 급변했다.
주택과 주식 등 자산시장의 붕괴와 고용시장 악화, 자금시장의 경색으로 미국인들의 소비 심리는 하루가 다르게 얼어붙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신용카드 대출 이자는 신용위기 이전에 비해 최소 5%포인트 이상, 자동차 할부 금리는 그 이상 높아졌다”며 “연방정부가 보증하는 학자금 대출도 어렵긴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부동산 조사 업체인 ‘리얼리티 트랙’은 10월 미 주택압류 건수가 27만9561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25% 증가했다고 밝혔다. 지난 3년간 압류된 주택은 690만 채에 이른다. 10월 실업률은 6.5%를 기록했으며, 올 들어 미 다우지수는 37%나 하락했다. <로이터> 통신은 12일 리서치회사인 크레딧사히츠를 인용해 “금융위기로 인한 손실이 미 국내총생산(GDP)의 10%가 넘는 1조4천억달러를 넘어설 것”이라고 전했다.
통신은 또 투자은행 라자드의 게리 파 부회장의 말을 빌어 “7천억달러의 구제금융으론 충분치 않다”며 “위기를 극복하려면 추가로 1조달러 이상이 필요하다”고 보도했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통신은 또 투자은행 라자드의 게리 파 부회장의 말을 빌어 “7천억달러의 구제금융으론 충분치 않다”며 “위기를 극복하려면 추가로 1조달러 이상이 필요하다”고 보도했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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