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비니 교수 “한국, 금융위기 문턱”

누리엘 루비니

위험국가 10여곳, 전세계 위기 ‘뇌관’
“자산 20% 줄 것…10년 불황도 가능”

2년 전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를 정확히 예견한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가 한국의 금융위기 가능성을 재차 언급했다. 22일 “외환위기는 끝났다”고 선언한 한국 정부의 장담을 무색하게 하는 분석이다.

루비니 교수는 23일 <파이낸셜 타임스> 인터뷰에서 “십여 곳 신흥경제국이 잠재적 금융위기의 경계선에 서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의 나라들로, 아시아에선 한국·파키스탄·인도네시아를 꼽았다. 유럽에서는 라트비아·에스토니아·리투아니아·헝가리·불가리아·루마니아·터키·우크라이나가 지목됐으며, 이미 채무불이행을 선포한 에콰도르·아르헨티나·베네수엘라 등 남미 나라들도 포함됐다.

그는 앞으로 벌어질 심각한 문제의 근원은 신흥시장이라며, “이 가운데 일부 나라가 위기에 빠져 다른 신흥국 금융시장으로 전염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앞서 그는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예대 비율, 단기 외채 급증, 경상수지 적자, 부동산 시장 침체 등을 들어 “한국은 또 한번의 금융위기로 향하고 있는듯 보인다”고 지난달 경고한 바 있다.

루비니 교수는 금융위기가 부실 주택금융(모기지)에서 상업용 부동산, 신용카드, 자동차 할부대출, 기업 부채 등 전방위로 확산될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유에스 뉴스 앤 월드 리포트> 인터뷰에서는 “모든 선진국 경제는 경기후퇴에 빠졌고, 신흥시장에서 경착륙이 시작되고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모든 이가 알고 싶어하는 ‘언제 위기가 끝나고 경제가 회복될 것인가’란 질문에, 루비니 교수는 내년말까지도 회복이 어렵고 아무리 일러도 2010년은 돼야 회복이 시작될 것으로 예측했다. 그는 “정부가 최상의 정책을 내놔도 최소 2009년 말까지 경기후퇴가 계속될 것이며(가능성 3분의 2), 정부가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다면 일본처럼 10년 동안 ‘스태그네이션’이 계속되는 엘(L)자형 장기불황(가능성 3분의 1)이 닥칠 수 있다”며 “어느 쪽이든 60년 만에 가장 긴 경기후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대공황에 빠지지는 않을 것이고, 이번 위기가 자본주의의 종말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경기 전망에 대해 “미국과 전세계의 자산가치가 현재보다도 15~20% 더 줄어들 것”이라며, 주택시장과 증시가 바닥을 치려면 아직 절반밖에 오지 않은 상태로 진단했다. 집값에 대해서도 “1996~2006년 동안 실질 주택가격이 두 배가 됐으므로, 인플레이션을 고려해도 주택가격은 고점 대비 최소 40% 하락해야 하는데, 현재까지 25% 떨어졌다”며 “앞으로 15%~20%는 더 떨어져야 한다”고 분석했다.

루비니 교수는 “금융위기도 끝나지 않았다”며 “지금까지 금융위기로 말미암은 손실이 약 1조달러인데 앞으로 1조달러의 추가 손실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기업 수익이 악화돼 경기지표가 지금보다 훨씬 더 나빠질 것이고, 헤지펀드와 같이 차입비율이 높은 금융기관들의 추가 파산이 줄을 이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그는 각국이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해 △적극적 경기부양책 △금융기관 재자본화(정부의 지분 인수 등을 통한 자본 확충) △가계 부채 부담 해소 등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류이근 박민희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