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미사일 방어체제(MD)
미, 동유럽 MD 포기
막대한 예산에도 정확성 의문 ‘포기’로 선회
오바마, 부시 군축확대 수정 ‘리셋외교’ 탄력
막대한 예산에도 정확성 의문 ‘포기’로 선회
오바마, 부시 군축확대 수정 ‘리셋외교’ 탄력
미국의 동유럽 미사일방어(MD)체제 구축계획 철회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취해진 미국의 대외 관계와 세계 방위전략 변화 중 가장 구체적인 것이다.
엠디체제에 가장 강력히 반대했던 러시아와의 관계는 물론이고, 엠디체제로 상징되는 조지 부시 행정부 시절의 군확노선과 일방주의 외교 노선을 전반적으로 수정하는 오바마 행정부의 ‘재설정’(리셋) 외교는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미 국방부는 엠디체제를 대체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레이건 행정부 이후 추진하던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제는 그 동력이 사실상 사라져 극적인 환경 변화가 없는 한 다시 부활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가장 반발이 심할 것으로 보이는 체코의 얀 피셰르 총리가 이 결정을 인정한다고 말한 것에서 잘 드러난다.
동유럽 엠디체제 구축이 철회됨에 따라, 미국 엠디체제 전체에도 파장이 예상된다. 미국은 적국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미국 본토와 동맹국을 지킨다는 명분 아래 일본 등 주요 동맹국과도 공동 엠디체제 개발을 추진해 왔다. 특히 조지 부시 행정부는 이란과 북한 등 이른바 ‘악의 축’ 국가들의 미사일 위협을 들어 이 체제 구축의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했다.
미국은 한국에 대해서도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 엠디체제 참여를 요청했으며, 한국은 중국의 반발과 북한 자극을 이유로 유보적 태도를 보여 왔다. 미 국방부는 엠디체제 철회의 배경으로 이란의 장거리 미사일 개발 수준이 유럽에 위협적이지 못한 것을 들었다. 북한의 미사일 개발 수준이 이란에 훨씬 못 미친다는 것을 고려하면, 북한의 위협을 이유로 한 동아시아 지역의 엠디체제 역시 그 실효성과 명분을 잃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의 엠디체제 포기는 일본 민주당 정권의 출범과 북한의 북핵 협상 복귀 움직임과 맞물려 동아시아 안보 지형에 큰 변수가 될 것이 분명하다.
미사일방어 체제는 애초 1983년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의 전략방위구상(SDI)에서 시작됐다. 이른바 ‘스타워즈’ 구상은 1991년 소련의 붕괴, 의회의 반대 및 기술 문제, 과도한 예산 등으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이 구상을 다시 살린 것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다. 그는 2002년 6월 최대 걸림돌인 탄도미사일방어(ABM) 협정에서 공식 탈퇴한 뒤 엠디체제 구상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발사된 적국 미사일의 경로 정보를 조기경보위성이 파악한 뒤 요격미사일을 쏴, 미 본토에 도달하기 전에 파괴한다는 구상이다. 이번에 보류하기로 한 동유럽 엠디는 부시 행정부가 2014년까지 폴란드에 요격 미사일 10기를, 체코에 미사일 추적 레이더를 배치하는 계획이다. 현재 알래스카주 포트그릴리 기지 및 캘리포니아주 반덴버그 공군기지에 모두 요격미사일 30기가 배치돼 있다.
하지만 엠디체제는 수백억달러의 비용에도 효율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미국은 약 900억달러라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지만 10차례의 엠디 시험요격 가운데 절반만 성공을 거뒀다. ‘우주 공간에서 날아가는 탄환을 탄환으로 맞히는 것’에 비유될 정도로 고도의 기술이 요구돼, 실제 상황에서 요격률은 크게 떨어진다.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논란 당시 미국이 애초 요격을 하겠다고 위협하다가 물러난 것도, 요격에 실패할 경우 입게 될 타격을 우려했다는 분석도 제기된 바 있다. 이번 미국의 동유럽 엠디 추진 철회는 부시 전 대통령 시절 추락한 미국의 대외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전세계 핵무기 폐기 등을 밝혀온 오바마 행정부의 평화구상도 맞물려 있다.
엠디체제 철회는 폴란드 등 동유럽에서는 뜨거운 논란을 넘어 반발까지 예상된다. 러시아에 대한 불안을 떨치지 못하는 폴란드는 엠디체제를 유치하기 위해 적극 노력해 왔고, 그때마다 미국은 계획대로 추진한다고 밝혀왔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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