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앨 고어 부통령은 2000년 대선에서 앨 고어 후보가 패배한 후 2시간여 동안 패인을 놓고 얼굴을 붉히는 설전을 벌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스캔들은 94년 총선에서 민주당의 패배 등 여러 정치적, 개인적 좌절을 겪는 과정에서 발생했다고 토로한 것으로 조만간 발매될 `더 클린턴 테이프스(The Clinton Tapes)'라는 신간에서 드러났다고 `유에스에이(USA) 투데이'가 21일 보도했다.
이 책은 클린턴 전 대통령 재임중 클린턴의 요청으로 79차례 비밀 인터뷰를 했던 역사가 테일러 브랜치가 저술한 것으로 클린턴의 회고록 `마이 라이프(My Life)' 보다 더 생생한 증언을 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책에는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이 워싱턴 방문중 영빈관에서 심야에 술에 취해 속옷 차림으로 펜실베이니아애비뉴까지 나갔던 일화도 공개돼 있다.
USA 투데이는 저자인 테일러 브랜치와의 인터뷰 및 책 내용 요약 등을 토대로 클린턴 재임당시 몇가지 주요 사건에 관해 심층 보도를 했다. 다음은 주요 내용.
◇클린턴-고어 설전 = 클린턴은 앨 고어 부통령이 2000년 대선에서 조지 부시 공화당 후보에게 패한 직후 2시간동안 토론을 벌였다. 두 사람간 대화는 초기에는 정중하게 시작됐지만 클린턴은 대선과정에서 고어 후보가 자기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 점을 지적했고, 특히 자신의 인기가 높은 아칸소나 뉴 햄프셔주 유세에 투입됐었다면 고어 후보가 승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고어는 클린턴의 스캔들이 선거내내 방해요소로 작용했다고 반박했고, 결국 두 사람간 대화는 상호 비난전으로 격화됐다.
클린턴은 당시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조지 부시 텍사스 주지사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될 자질은 없지만 선거에 관해서는 아주 뛰어난 본능을 갖고 있다"고 평했고, "부시와 딕 체니는 정치적 쌍둥이"라고 간주했다. 존 매케인 상원의원에 대해서는 "좋은 대통령이 될 수 있지만 경영능력은 없다"고 평했다.
클린턴은 앞서 고어가 위험을 감수하고 모험을 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애초에는 빌 브래들리 전 상원의원(뉴저지주)을 후보감으로 선호했었다고 언급했다. ◇르윈스키 스캔들 = 클린턴은 인터뷰 과정에서 르윈스키 스캔들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언급을 꺼렸다. 하지만 99월8월 상원 탄핵을 간신히 모면한뒤 클린턴은 르윈스키와의 정사는 "내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아주 약해지면서 시작됐다"고 토로했다. 94년 1월 모친이 세상을 떠나고, 화이트워터 부동산 스캔들로 시달린 상황에서 11월 총선에서 민주당이 패하면서 클린턴은 고립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자기 업적들이 충분히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좌절감속에 르윈스키와의 스캔들이 시작됐을 것이란게 저자의 분석. 클린턴은 95년11월 예산안이 통과되지 않아 연방정부 기관들이 문을 닫는 상황속에서 르윈스키와의 정사가 발생했으며, 96년 재선에 성공한 뒤 재개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저자인 브랜치는 "클린턴은 르윈스키와 한번 정사를 한 뒤 백악관에서의 정사는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해 더이상 백악관에서는 사고를 치지 않기로 굳은 결심을 했었다"고 부연했다. 클린턴은 또 언론과 공화당 의원들이 정책문제 등 정작 중요한 문제에는 관심을 쏟지 않고 자신의 개인적 스캔들에만 관심을 갖고 비판한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옐친 러시아 대통령 스캔들 =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1995년 워싱턴을 방문, 블레어 하우스에 머물던 어느날 심야에 미 백악관 경호요원들은 옐친이 속옷 차림으로 펜실베이니아 애비뉴에서 혼자 택시를 부르는 장면을 목격했다.옐친은 경호원들에게 피자가 먹고 싶어 나왔다고 했지만 횡설수설해 만취했음을 보여줬다. 옐친은 그 다음날 밤에도 경호원들을 피해 뒷 계단을 통해 블레어 하우스의 지하실로 내려갔다가 한 건물 경비원에게 술 주정뱅이로 간주돼 끌려가다가 미.러 양국 경호원들에게 간신히 구조됐다. ◇기타 = 93년10월 클린턴은 대법관 후보로 마리오 쿠오모 뉴욕주지사를 지명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정작 쿠오모 지사는 백악관 전화에 응답 전화를 하지 않아 무산됐다. 또 외동딸 첼시가 외롭게 생활하도록 한데 대해 많이 후회스럽다면서 첼시와 함께 골프장에도 가고 싶었지만 딸이 골프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다. ◇저술과정 = 클린턴과 저자인 브랜치는 1972년 조지 맥거번 후보의 선거운동을 함께 하며 알게된 사이로 사적인 인터뷰는 클린턴 대통령이 브랜치를 백악관으로 초청해 부탁하면서 시작됐다. 클린턴은 인터뷰 녹음 테이프를 양말 보관함에 숨겨 왔으며, 저자는 인터뷰를 할때마다 별도로 녹음을 해서 보관해 왔다. 저자는 그동안 클린턴과의 인터뷰 내용을 공개하는 문제를 놓고 고심을 거듭해오다 "역사가로서 공개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히고 있다. 클린턴 진영은 비밀 인터뷰 내용이 공개되는데 대해 당혹해 하면서 일부 내용에 대해 수정을 요구했지만 저사는 "그가 요청한 대목중 아무것도 고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안수훈 특파원 ash@yna.co.kr (애틀랜타=연합뉴스)
클린턴은 앞서 고어가 위험을 감수하고 모험을 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애초에는 빌 브래들리 전 상원의원(뉴저지주)을 후보감으로 선호했었다고 언급했다. ◇르윈스키 스캔들 = 클린턴은 인터뷰 과정에서 르윈스키 스캔들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언급을 꺼렸다. 하지만 99월8월 상원 탄핵을 간신히 모면한뒤 클린턴은 르윈스키와의 정사는 "내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아주 약해지면서 시작됐다"고 토로했다. 94년 1월 모친이 세상을 떠나고, 화이트워터 부동산 스캔들로 시달린 상황에서 11월 총선에서 민주당이 패하면서 클린턴은 고립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자기 업적들이 충분히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좌절감속에 르윈스키와의 스캔들이 시작됐을 것이란게 저자의 분석. 클린턴은 95년11월 예산안이 통과되지 않아 연방정부 기관들이 문을 닫는 상황속에서 르윈스키와의 정사가 발생했으며, 96년 재선에 성공한 뒤 재개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저자인 브랜치는 "클린턴은 르윈스키와 한번 정사를 한 뒤 백악관에서의 정사는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해 더이상 백악관에서는 사고를 치지 않기로 굳은 결심을 했었다"고 부연했다. 클린턴은 또 언론과 공화당 의원들이 정책문제 등 정작 중요한 문제에는 관심을 쏟지 않고 자신의 개인적 스캔들에만 관심을 갖고 비판한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옐친 러시아 대통령 스캔들 =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1995년 워싱턴을 방문, 블레어 하우스에 머물던 어느날 심야에 미 백악관 경호요원들은 옐친이 속옷 차림으로 펜실베이니아 애비뉴에서 혼자 택시를 부르는 장면을 목격했다.옐친은 경호원들에게 피자가 먹고 싶어 나왔다고 했지만 횡설수설해 만취했음을 보여줬다. 옐친은 그 다음날 밤에도 경호원들을 피해 뒷 계단을 통해 블레어 하우스의 지하실로 내려갔다가 한 건물 경비원에게 술 주정뱅이로 간주돼 끌려가다가 미.러 양국 경호원들에게 간신히 구조됐다. ◇기타 = 93년10월 클린턴은 대법관 후보로 마리오 쿠오모 뉴욕주지사를 지명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정작 쿠오모 지사는 백악관 전화에 응답 전화를 하지 않아 무산됐다. 또 외동딸 첼시가 외롭게 생활하도록 한데 대해 많이 후회스럽다면서 첼시와 함께 골프장에도 가고 싶었지만 딸이 골프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다. ◇저술과정 = 클린턴과 저자인 브랜치는 1972년 조지 맥거번 후보의 선거운동을 함께 하며 알게된 사이로 사적인 인터뷰는 클린턴 대통령이 브랜치를 백악관으로 초청해 부탁하면서 시작됐다. 클린턴은 인터뷰 녹음 테이프를 양말 보관함에 숨겨 왔으며, 저자는 인터뷰를 할때마다 별도로 녹음을 해서 보관해 왔다. 저자는 그동안 클린턴과의 인터뷰 내용을 공개하는 문제를 놓고 고심을 거듭해오다 "역사가로서 공개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히고 있다. 클린턴 진영은 비밀 인터뷰 내용이 공개되는데 대해 당혹해 하면서 일부 내용에 대해 수정을 요구했지만 저사는 "그가 요청한 대목중 아무것도 고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안수훈 특파원 ash@yna.co.kr (애틀랜타=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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