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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블로그] 이사쿠아 시의 ‘연어 축제’ 에 다녀오다

등록 2009-10-07 15:48

시애틀에서 동쪽으로 I-90 고속도로를 타고 16마일쯤 가다 보면 케스케이드 산자락으로 올라가기 전 '이사쿠아'라는 동네가 있습니다. 원래 동서횡단 철도 개통 이후 벌목과 광업 등의 산업으로 인구가 늘고 도시로 성장한 곳인데, 이곳이 언젠가부터 예술가들이 모이는 전통이 생겼고, 또 이 작은 도시는 최근 주거지역으로 각광받고 있어 인근엔 지어진 지 얼마 안되는 고급 주택들이 가득 들어섰습니다.

규모도 그다지 크지 않은 도시이지만, 뉴욕 브로드웨이 스타일의 정식 뮤지컬을 공연할 수 있는 극장이 있고, 매년 10월엔 산란을 위해 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연어들을 맞이하는 'Salmon Day Festival' 이 열리며, 7월중엔 시 전체가 음악 스테이지로 변하는 뮤직 페스티벌이 열립니다.

올해로 40번째를 맞는 이사쿠아의 연어 축제에 다녀왔습니다. 행사 기간 동안엔 차량 출입도 통제되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이곳에서 일식집을 운영하시는 동서 형님 덕에 주차도 편안한 곳에 할 수 있었고,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정말 '산 공부'를 하고 온 느낌입니다.

정말 '생명의 박동' 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태어난 곳을 향하여 본능적으로 거친 물살을 뚫고 올라와 헤엄쳐 올라가는 연어들의 모습에선 경외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습니니다. 그리고 얕은 시냇물을 가득 채우다시피 한 그 커다란 연어들이 힘을 모았다가 자기들이 가야 할 곳으로 뛰어오를 때의 모습은 가슴을 턱턱 막히게 할 정도로 숨막히는 감동이 있었습니다.

한편, 연어의 회귀를 핑계삼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그 자리에서 발휘되는 상혼들도 역시 사람사는 재미의 일부이다 싶기도 했습니다. 이틀 동안의 축제에 이 조그만 동네를 다녀가는 사람들이 20만이 넘고, 이 때문에 옥수수 한 자루를 구워 3달러에 팔고 팝콘을 6-9 달러에 파는 바가지가 난무함에도 불구하고 역시 메뚜기는 한 철인지라, 그렇게 열심히 장사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 조차도 즐거웠습니다.

맑은 가을날의 날씨 덕분에, 또 멀리 걷는 것을 싫어해 도서관에 앉아 있겠다고 한 애들 때문에 오랫만에 아내와 손을 잡고 마치 명동거리를 걷는 것처럼 '어쩔 수 없이 떠밀려 걷는 경험'도 해 봤습니다. 이제 자기 엄마보다도 더 커버린 열 살짜리 지호의 든든함을 옆에 두고서 걷는 것도 괜찮은 일이었습니다.

아무튼, 타운은 축제의 음악 공연과 장터의 시끌벅적함으로 활기가 가득했습니다. 이사쿠아의 연어 양식장은 다운타운을 살짝 비켜난 곳에 있는데, 이곳으로 걸어가는 동안 거리는 완전히 동네 시장바닥이라는 표현 그대로였습니다. 물건을 사고 흥정하는 사람들, 커다란 버거를 한 입씩 베어무는 아빠의 등 위에서 아이스크림을 핧아먹는 꼬마의 모습들, 사방에 뿌려진 팝콘의 잔해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거의 치이다시피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만으로도 즐거웠습니다.

'해처리'라고 불리우는 양식장으로 다시 회귀하는 연어들의 모습은 정말 눈물겨웠습니다. 점프를 잘못 해서 맨 땅으로 떨어진 연어들은 어떻게든 다시 튀어 물 속으로 들어가지만, 결국 그렇게 뭍에서 힘이 빠진 연어들은 거의 자신의 고향에 돌아와서는 그렇게 허무하게 뭍에서 죽어가기도 하고, 그런 녀석들의 시체는 온갖 동물들의 밥이 됩니다. 우리가 흔히 곰 이야기를 하지만, 오리들이 이 연어들의 시체를 뜯어먹는 것은 처음 알았습니다. 자기보다 훨씬 큰 연어의 시체를 넓적한 부리로 퍼퍼벅거리며 파먹는 오리들의 모습도 이채로왔습니다.


어떻게든 상류로 뛰어올라가보려는 연어들의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했습니다. 주위에서 구경하는 이들에게야 그만한 구경거리가 없지만, 올라가려 올라가려 뛰어올라가도 양식장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게 만들기 위해 하천 중간을 막고 표면을 스텐레스 스틸로 씌운 보를 세워 놓아 뛰어 오른 연어가 미끄러져 내려갈 수 밖에 없도록 만들어 놓은 인간의 지혜는 솔직히 잔인하게까지 보였습니다. 연어들은 용을 쓰며 여기를 계속해 뛰어 오르다가, 결국은 포기하고 인간이 그들에게 지나가도록 허용한 '피시 래더' 를 통해 양식장으로 올라갈 수 밖에 없습니다.

일단 양식장에 도착하고 나면, 수온이 매우 차가운 물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양식장 직원들이 정복을 입고 나와 연어들의 생태에 관해 설명을 해 주는데, 매우 흥미롭습니다. 연어들은 차가운 물을 좋아하기 때문에, 날씨가 뜨거울 때엔 회귀를 하지 않으려고 하며, 일단 날이 추워지고 수온이 차가와지면 그때부터 회귀를 시작하는데, 특히 노동절 연휴(9월 초)때 보통 첫 회귀가 시작되고, 이때 비가 와 주면 그만큼 연어들의 회귀가 쉬워지기 때문에, 올해 노동절에 내렸던 비가 이들 양어장 직원들에겐 '풍년가' 같은 것이었다고 합니다.

한 가지 특기할 것은 양식장은 '주 어류 야생부' 소속의 공공기관으로서, 여기서 일하는 직원들은 모두 주 공무원이라는 사실입니다. 아마 이런 양식장은 다른 곳 같았으면 사영 기업이었을텐데, 자연보호의 일환으로서 주 정부 차원에서, 또 연방 차원에서 연어를 보호하는 이들의 노력이 남다르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몰려드는 연어들은 주둥이가 꺾어진 코호 연어, 킹 새먼, 이들보다는 작은 첨 새먼도 있는 듯 했습니다. 몸이 빨갛게 변해 이제 거의 산란기가 다 되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연어들은 어떻게든 상류로 올라가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이렇게 힘들게 양식장으로 올라온 녀석들은 다시 자갈이 있는 곳을 찾아 또 상류로 올라간다고 하는데, 이유는 이들이 알을 자갈밭에 낳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렸을 때 바다를 찾아 내려간 연어들이 바다에 머무르는 기간은 4년 정도라고 합니다. 이제 네 살바기가 된 연어들은 그들의 후손을 만들어 내기 위해 다시 자기네들이 태어난 곳으로 이렇게 떼를 지어 올라갑니다. 그리고 회귀의 때가 온 것을 알게 된 연어들은 회귀를 시작하자마자 아무것도 먹지도 않으며 오로지 상류를 거슬러올라간다고 합니다.

제게 이런 설명을 해준 어류야생부 직원은 알을 낳고 죽은 연어들이 독수리나 곰의 밥이 되기도 하지만, 수거되어 비료를 만드는 데 쓰이기도 한다고 일러 주었습니다. 연어들의 모습을 보며, 저는 문득 연어의 모습이나 우리의 모습이나 크게 다른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우리도 결국은 '죽음'이라는 최종 목적지를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연어들은 2세를 만들기 위해, 즉 그들의 시기를 마감하고 후세들의 시기를 열기 위해 함께 최종목적지로 향하고, 그것은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본능의 부름' 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본능의 부름에 충실해서 아이를 낳고, 그리고 그들이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주려 우리가 죽을 때까지 애씁니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가 모르고 있는 더 큰 목적의 달성을 위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애써야만 우리의 후손들이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온다는 것입니다. 아마 그것이 우리의 존재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연어들을 보면서, 저는 내 자식들의 얼굴들을 다시한번 들여다보았습니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 어디로 회귀하고 있는 걸까요. 좋은 일요일 오후였습니다. 마음도, 그리고 햇살을 받으며 걸어가는 내 몸도 따뜻해지는 그런 오후.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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