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혼혈로 정체성 혼란 극복
‘검은 케네디’로 대통령 당선
의보개혁·아프간전 시련 속 수상
‘검은 케네디’로 대통령 당선
의보개혁·아프간전 시련 속 수상
세계 최강대국 대통령의 자리와 노벨평화상의 명예.
9일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거머쥔 듯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한때는 마약에 손을 대며 암울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혼혈이라는 정체성 혼란과 미국 사회 속 흑인이라는 열등감이 그를 짓눌렀다.
케냐 출신의 흑인 유학생 아버지, 캔자스 출신의 백인 어머니, 아버지가 떠난 뒤 이슬람국인 인도네시아에서 보낸 어린 시절 등은 그의 정체성 혼란과 방황을 부추겼다. 오바마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아래서 인종·문화·정치·사회적 혼혈의 경계를 넘어서는 생존을 터득했다.
그렇게 오바마는 하버드대 법대와 지역 활동가, 인권변호사와 주 상원의원, 연방 상원의원을 거쳐 ‘검은 케네디’로 성장했다. 드디어 지난해 11월 미국 첫 흑인 대통령에 당선돼, 역사의 한 페이지를 다시 썼다. 흑인 노예제의 뼈아픈 역사가 생생한 미국에서 그의 대통령 당선에 전세계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오바마가 가는 곳마다 구름 관중이 몰려들었고, 그는 전세계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어린 자녀 등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전세계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일방주의 대외정책을 반성하고, ‘설교하는 대신 듣는 미국이 되겠다’는 그의 약속은 추락한 미국의 이미지를 되살렸다.
하지만 오바마의 행복한 나날은 짧았다. 지난 1월20일 취임 이후 언론·정치권과의 ‘허니문’이 끝난 뒤, 기록적 지지율도 기록적 속도로 떨어져 50% 이하로 곤두박질쳤다. 미국의 고질병인 의료보험 제도를 뜯어고치려는 그의 시도는 “사회주의를 하려느냐”는 격렬한 저항에 부닥쳤다. 여기다 자기 집에 들어가려던 하버드대 흑인 교수를 강도로 오인해 검거한 경찰관의 행동이 “어리석다”고 비난했다가, 인종논란으로 번지면서 홍역을 치렀다.
새로운 시대를 약속했던 대외정책도 쉽사리 풀리지 않고 있다. 며칠 전 개전 8년째를 맞은 아프가니스탄 전쟁도 갈수록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미군 사망자는 늘어나지만, 헤쳐나갈 앞길은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현지 사령관들은 증파를 요구하고 있고, 동맹국은 하나둘 발을 빼고 있다. 이란과 북한의 핵문제 역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오바마가 ‘화려한 수사’만 늘어놨을 뿐, 실제 변화나 성과는 없는 ‘빛 좋은 개살구’라는 힐난까지 나왔다.
그러나 이번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오바마는 다시 세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지쳐가던 오바마에게는 그야말로 ‘천군만마’를 얻은 격이다. 하지만 그의 어깨는 그만큼 더 무거워졌다. 국제현안은 어느 것 하나 풀어가기 쉽지 않은데,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기대와 그를 지켜보는 눈길은 더욱 높아졌기 때문이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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