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달러’ 세계경제 독인가 약인가
“금융시스템 불안정 우려”-“글로벌 불균형 해소 도움” 갈려
FT “한국·타이 등 약달러 막으려 외환개입…지는 게임”
“금융시스템 불안정 우려”-“글로벌 불균형 해소 도움” 갈려
FT “한국·타이 등 약달러 막으려 외환개입…지는 게임”
“강한 미국은 약한 달러를 필요로 한다. 약한 달러는 미국뿐 아니라 세계가 필요한 것이다.”(<파이낸셜 타임스> 11일치 사설)
“달러 붕괴는 세계의 재난이 될 것이다.”(스티븐 킹 바클레이스 모기지트레이딩 대표, <인디펜던트> 12일치 칼럼)
약한 달러가 세계 경제에 독이 될까, 약이 될까? 계속되는 달러 가치의 하락이 세계 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의견이 분분하다. 다만 달러 약세 현상이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고, 이 때문에 미국에 의존하는 수출 주도형 경제에 타격이 적지 않을 것이란 전망엔 별 이견이 없다.
지난 9일(현지시각) 외환시장에서 유로당 달러는 1주일 전의 1.456에서 1.476으로 올랐다. 달러 가치는 14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경기 회복 기미가 보이면서 안전자산인 달러에 대한 선호도가 줄고 있다. 사실상 ‘제로’인 미국의 기준금리(0~0.25%)는 더 높은 수익률을 좇는 투자자들의 달러 이탈을 가속화하고 있다.
달러 약세 현상은 여러 우려를 낳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12일 “약한 달러가 금융시스템을 불안정하게 할 수 있다”는 일부 전문가들의 의견을 전했다. 투자자들이 확신을 잃고 달러 투매에 나선다면, 국외 차입을 통해 재정적자를 메워야 하는 미국의 채권 판매가 어렵게 되고, 결국 금리가 급등하면서 세계 금융질서마저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이런 우려는 종종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지위가 흔들리는 움직임과 결부돼 증폭되곤 한다. 최근 중국, 프랑스, 중동 일부 국가의 재무장관 등이 모여 달러체제를 대체하려는 비밀 모임을 가졌다는 <인디펜던트>의 보도는 진실성을 떠나, 외환시장에서 ‘흔들리는 달러의 지위’를 확인하는 여러 에피소드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달러 약세가 시장의 우려만큼 크지 않다는 차분한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볼프강 뮌하우는 “약한 달러는 수출 경쟁력을 높여, 미국이 만성적인 무역적자와 소비 의존형 경제로부터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달러 약세를 지지했다. 달러 약세로 미국은 8월까지 넉 달 연속 수출이 늘어났으며, 8월 무역적자는 전달보다 3.5% 줄어든 307억달러를 기록했다. 이 때문에 달러 약세가 궁극적으로 지난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합의한 ‘글로벌 불균형’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분석들이 나온다.
반면, 미국에 의존한 수출 주도형 경제는 달러 약세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사설에서 “한국과 대만, 필리핀, 타이의 중앙은행들이 달러 대비 자국 통화의 가치 상승을 막기 위해 지난 몇 주 동안 외환시장에 개입했다”며 “이는 이해할 만한 조처지만, 지는 게임”이라고 지적했다. 무리한 평가절하가 결국 인플레이션을 불러오고, 소비자의 구매력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아시아의 관료들은 달러 약세가 그들의 수출 지향형 경제를 방해할까봐 두려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달러는 주기적으로 부침을 겪어 왔다. 엔·유로 등 6개 주요 통화에 견줘 달러의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지수는 금융위기 이전 72까지 떨어졌으나, 지금은 여전히 그보다 조금 높은 76을 기록하고 있다. 달러 약세 현상 자체가 약간 과장돼 해석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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