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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6.01 14:27 수정 : 2005.06.01 14:27

`딥 스로트(내부고발자)'로 알려진 마크 펠트 전 미국 연방수사국(FBI) 부국장이 31일 캘리포니아주 샌터로사의 자택에서 딸 조안 펠트가 지켜보는 가운데 기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AP=연합뉴스)



워터게이트 사건의 `딥스로트'로 확인된 마크 펠트 전 미연방수사국(FBI) 부국장은 FBI국장이 되겠다는 야심을 가졌던 인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리처드 닉슨 당시 대통령과 측근들은 바로 이 점 때문에 워터게이트 사건에 대한 FBI의 조사 방향이 `곁길'로 샐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펠트가 결국 닉슨 전 대통령을 하야시키는 `스캔들'을 폭로한 핵심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닉슨 행정부의 이같은 우려는 그다지 틀리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펠트의 야망은 워터게이트 사건과 관련한 백악관의 녹음기록에서 나타나고 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재선을 위한 비밀공작반이 지난 1972년 6월 워싱턴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는 민주당전국위원회 본부 사무실을 침입했던 6일 후, 닉슨 대통령과 측근들은 FBI의 조사를 중단시키기 위한 문제를 논의했다. 미 중앙정보국(CIA)의 활동을 방해한다는 명분이었다. 이때 일부 보좌진은 닉슨에게 "마크 펠트는 야심이 있기 때문에 협조하려 할 것"이라는 점을 언급하기도 했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취재했던 밥 우드워드 기자는 31일 워싱턴포스트 웹사이트를 통해 펠트는 백악관과 FBI가 긴장관계에 있던 시점에서 포스트를 도왔다고 말했다. 워터게이트 침입이 일어나기 직전 에드거 후버 FBI국장이 사망하자 펠트는 차기FBI 국장이 되려는 희망을 품었다. 그러나 닉슨 대통령은 행정부에서 패트릭 그레이 법무부 차관보를 발탁해 FBI국장에 임명했다. 딥 스로트의 실체를 첫 보도한 배너티 페어는 후버 국장 시절 펠트가 FBI내에서 승승장구했다고 전했다.

권력지향적인 국내담당 윌리엄 셜리번을 견제하기 위해 후버 국장이 셜리반을 감독하는 새 자리를 만들어 펠트를 진급시켰고, 이로 인해 펠트가 유명세를 얻게 됐다는 것이다. 한 잡지는 1974년 펠트가 워터게이트 사건의 딥 스로트인 것 같다고 거명했으나 펠트는 이를 부인하고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위협했다.

펠트는 1970년대 초 수색영장도 없이 좌파 계열 수배자의 친척과 친구집에 대한 수색을 허용, 인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1980년 법원으로부터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훗날 레이건 행정부에서 사면받은 전력도 있다. 펠트는 1913년 아이다호주(州) 트윈폴스에서 출생했으며 아이다호대학을 졸업한 뒤 조지워싱턴대 법률대학원을 거쳐 1942년부터 FBI에서 봉직했다. (워싱턴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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