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상식의 덫, 그 치명적 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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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미국 지방지에 실린 "추수 감사절 여행자를 위한 안전 팁"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미국이 결코 그런 위험한 국가가 아니라고 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더군요. 특히 "미국은 총과 함께 사는 나라 - 늘 전쟁하는 나라 - 늘 사람이 죽고 또 죽이는 나라" 라고 말한 것이 틀렸다고 하시는데. 겉보기에 그 말은 맞는 것 같습니다. 재미 교포분들 자신이 사는 곳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죠.
그러나 올해 들어서만도 총기 난사로 사건이 몇 건인지 아십니까? 그렇게 자주 일어나는 나라는 아마 없을 겁니다. 이라크나 아프간의 자살 폭탄 테러만큼이나 자주 일어나는 것이 미국의 총기 난사 사건이죠. 늘 전쟁하는 나라 - 미국은 이제 아프간과 이라크에서 전쟁 중. 그게 끝나면 또 어디서 전쟁할지 모르죠. 아마 미국은 전쟁에 중독된 것 같습니다. 총이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인 나라, 늘 총으로 쏴서 죽이고 죽는 일이 일어나는 나라 - 미국이죠. ⑵ 제가 볼 때, 총이 있다는 것은 사람들을 좀 더 친절하게 만드는 효과는 있는 것 같습니다. 길거리에서 모르는 사람 만나도 웃으며 눈인사라도 하고, 차 몰고 가다가 함부로 클랙션 울리지 않는 것도 다 그럴 겁니다. 저 사람이 총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보세요. 함부로 거칠게 할 수 있습니까?
미국 사람들은 대부분 집에 담을 두르지 않더군요. 게다가 한국처럼 창문에 방범 창살 단 곳도 전혀 없습니다. 현관문 잠금 장치도 한국에 비하면 허술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집의 창문에는 커튼 블라인드를 꼭꼭 내리고 살더군요. 한여름 무더위에도 좀처럼 창문조차 잘 열지 않더군요. 이 역시 총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함부로 침입하면 총맞을 것이라는 일반적 상식이 있기에, 울도 담도 창살도 없는 집에 커튼만 쳐도 되는 것이겠죠.
(반대로 한국은 총이 없기 때문에 높은 담, 튼튼한 창살, 겹겹히 붙인 잠금 장치 등이 있을 겁니다. 한번 침입한 자를 상대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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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인 11월 29일 미국 시애틀-타코마 부근 파크랜드에서 경찰 4명이 총 맞아 죽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커피숍에서 랩탑으로 작업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범인이 들이닥쳐서 총을 난사한 거죠. 범인 이름은 Maurice Clemmons (37세). 그는 Arkansas에서 17살 때 강도 절도 등 광란의 범죄 파티(crime spree)를 벌려서, 108년 형을 언도받았답니다. 이 사람을 가석방한 사람은 당시 아칸소 주지사였던 Mike Huckabee - 그는 클레몬스가 어리기 때문에 그 인생을 생각해서 가석방했다는 것인데;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석방된 뒤 클레몬스는 계속 범죄를 저질렀다는군요. 경찰관을 폭행하고, 어린애를 성추행하고. 마누라와 친척 어린애 모아놓고 다 옷을 벗으라고 하고.
그는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이고, 종말이 가까왔다, 그 자신을 믿어라 라고 끊임없이 떠들었다는군요. - 신문 기사 ; 솔렉 트리뷴 (캘리포니아에서 10세 무렵 소녀를 납치해서 무려 20년 가까이 집에 감금하고 성폭행해서 애를 둘이나 낳게 했던 자도, 자신이 예수라고 했다더군요. 이 동네는 범죄자들 가운데 그런 vision을 보는 자들이 많나 봐요.) 클레몬스가 경찰관을 4명이나 죽이자, 이구동성으로 나오는 말이, 대체 이런 위험한 자를 어떻게 길거리를 활보하게 만들었냐는 겁니다. 허커비와 아칸소 및 워싱턴 주 검찰관들이 비난의 대상이 된 겁니다. 이런 비난과 짜증을 실증이라도 하듯이 12월 1일 클레몬스는 검문 중인 경찰관에게 사살되었다. 그는 Benjamin L. Kelly라는 39세 경찰. 첫 새벽 어둠 속에서 도난 차량을 발견하고, 점검 뒤에 자기 순찰차로 와서 앉은 순간 뒤에서 웬 사나이가 오는 것을 보고 차에서 나왔다. 그는 직감적으로 그가 경찰관 살해범임을 알고 체포하려 했다는 것인데, 신문 기사를 보면 그 과정이 별로 적힌 것이 없습니다. 클레멘스가 죽은 경찰관에게서 뺏은 총을 빼어들려고 해서 쏴 죽였다는 것이 전부더군요. -> 신문 기사 ; 솔렉 트리뷴 요컨대 제 짐작으로는 경찰은 클레멘스를 체포할 생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보면 그냥 사살이죠. 그런 걸어다니는 폭탄을 살려둘 이유가 없다. 재판까지 갈 것도 없다. - 이런 것 같습니다. ⑷ 제가 경찰관 살해 사건을 말하는 이유는 일상과 상식의 허약함 때문입니다. 인류는 역사 시대로 들어오면서, 사회와 국가를 만들고, 문화와 문명을 건설합니다. 이건 추상적인 것이고, 현실적으로 사람들에게, 그 과정은 '일상과 상식'의 공간으로 다가옵니다. 문화? 문명? 국가? 사회? 그건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일상의 공간은 우리가 늘 살고 있는 곳입니다. 마치 물고기의 물과 같은 것입니다. 그 일상-상식의 공간에서 우리는 안전하게 살아갑니다. 적어도 그것은 정글의 공간, 동물의 왕국과는 다릅니다. 초식 동물들은 끊임없이 포식자들을 의식하면서 피해 다녀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일상의 공간은 그와 반대이죠. 내가 늘 만나는 사람이나,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이나 다 나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상식이 있습니다. 인간이 힘들여서 건설한 것이 바로 그런 식의 마음 놓고 편안하게 살 공간인거죠. 일상과 상식입니다. 그러나 일상의 공간에도 허점이 있습니다. 만에 하나 나와 마주친 자가 갑자기 나를 공격한다면? 나는 불시에 당하게 됩니다. 나는 상식의 공간에서 남이 나를 공격하지 않는다. 정글의 공간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공격하면 어떻게 방어하겠습니까? 더군다나 칼이나 몽둥이도 아니고, 총을 들고 공격하면 꼼짝없이 당하게 됩니다. 사회-국가 조직은 그런 일상 파괴자를 제거합니다. 문제는 그런 자를 인지하고 제거하는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것입니다. 범죄자는 일상을 공격하고 숨는다. 그가 공격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아는데는 시간이 걸린다. 나아가 그를 찾아내서 격리하거나 제거하는데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바로 그 시간 동안, 일상의 공간에서 사는 사람들은 상식적으로 그를 대하기 때문에, 그에게 희생되게 된다. ⑸ 몇 사람의 희생을 댓가로 범죄자(일상 공간에 대한 공격자)를 인식하고 제거하게 된다. 반대로 말하자면, 찾아내고 제거하는 비용이 바로 상식적 일반인의 무작위적인 희생이다. 이것은 정글에서도 적용된다. 포식자는 그 공간에서 가장 숫자가 많은 종을 공격해서 잡아 먹는다. 논리적으로 그렇다. 예를 들자면 세렝게티 평원에 누 떼가 많다면, 사자는 주로 누를 공격해서 잡아먹는다. (그렇기 때문에 숫자가 작은 종도 살아남을 수 있는 공간을 갖게 된다.) 누 떼의 입장에서 보자면, 몇 명의 누를 희생시키는 대신 다수의 누가 그 공간에서 풀을 뜯어 먹게 된다. 고속도로에서 순찰차가 과속하는 차를 단속하는 것도 비슷하다. 경찰이 그 차를 단속하는 순간에는 다른 차를 잡을 수는 없다. 경찰이 과속차를 조사하는 동안 다른 차들은 씽씽 달려도 된다. 그 많은 차 가운데 몇 대의 차가 희생되는 댓가로 자동차의 거대한 흐름은 언제나 유지되게 된다. 이렇게 보자면, 일상과 상식의 공간에 범죄자(공격자)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 공격에 몇 명의 희생을 댓가로 범죄자를 제거할 수 있고, 상식의 공간이 유지된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늘 그래 왔던 것 같다.앞으로도 늘 그럴 것이고, 사회부 기자들은 바로 그런 범죄 보도로 먹고 살 것이다. ⑹ 문제는 일상과 상식 공간의 방어를 위해서 희생되는 개인이 과연 누구냐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는 무작위적으로 확률적으로 결정된다. - 그렇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범죄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 일상의 공간에서 상식적으로 살기 때문에, 범죄자에 대항하기 어렵다. 만약 내가 그 희생자가 된다면? - 그게 바로 문제이다. 재수 없는 놈이 나일 수도 있다. 내가 그 대상이 될 확률은 매우 낮다. 누구 말 마따나 '홀인원하고 나서 걸어가다가 벼락맞아 죽을 확률'일지 모른다. 더불어서 설사 내가 당한다 하더라도, 언제 희생될지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안심하게 된다. 그래서 총기 난사 사건을 보고 들어도, 일상에서 사람들은 태연하게 산다. ⑺ "추수 감사절 여행자를 위한 안전 팁"도 바로 그런 점과 연관된다. 거기에서 거론한 바, “뒤에서 내 차를 들이받더라도 내리지 말고 정비소로 가라. 어두워지기 전에 휘발유를 넣어라” 등. 이것은 일반인에게 일어나기 거의 어렵다. 다만 범죄인에게 당한 사람들의 일이다. 도로 운전과 주유 등등은 일상의 상식적인 일이다. 그것을 공격당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일상에 대한 공격은 모든 나라 어떤 사회 어느 시대에도 다 있었다. 다만 미국의 특수성이 있다. 미국은 총기 소유가 합법화된 사회이다. 대부분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 소유하고, 또 사냥하기 위해서 가진다. 그러나 가끔은 범죄를 위해서 치명적 무기를 구입한다. 사회마다 또라이 지랄 꼴통 사악한 포악한 자들이 있다. 그들이 일상 공간의 상식인을 공격하게 된다. 그런데 만약 총을 구입하는 것이 술을 사는 것보다 더 쉬운 사회라면? 그건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것이다. 총이 없다면 그런 자들이 일상을 공격하더라도 피해가 작다. 그러나 그들이 총을 드는 순간, 무고하고 아무 상관이 없는 10-20명이 희생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조승희가 광란의 총격으로 30명 넘게 죽였다. 총이 아니라 칼이나 다른 무기로 죽였다면 그렇게 많이 해치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바로 그게 미국 사회의 특수성이다. 모리스 클레몬스가 시애틀 부근에서 경찰관 4명을 쏘아 죽였을 때,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대체 누가 어떻게 그런 자가 길거리를 활보하게 만들었나? 그런 자가 총을 가지면 일상을 치명적으로 공격할텐데 말이다. 그래서 그를 발견한 경찰도 체포보다는 사살을 선택했을지 모른다. 총을 가진 또라이들에 대해서 미국은 점점 더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것 같다. 체포 격리 혹은 교육 보다는 영구 제거를 더 선호하게 되는 것 같다. ⑻ 미국은 세계 초강대국인 이유는 있다. 그러나 반대로 이렇게 무능할 수가? 절로 탄식이 들 경우도 있다. 의료 보험, 혹은 총기 소유가 그것이다. 4000만명인가가 무보험인 사회. 또라이도 총를 사서 아무나 쏴 죽일 수 있는 사회 - 이것은 편안한 일상의 공간도 아니고, 상식적인 인간이 살기에는 저으기 위험하다. 늘 과도한 위험이 사람들로 하여금 경각심을 불러 일으킨다. 늑대가 없는 옐로 스톤 국립 공원의 들소(바이슨) 떼는 정말로 게을러 빠졌다. 늑대가 방목된 뒤에 그들 개체가 조절되었다. 적당한 위험이 사람들을 조심스럽게, 예절바르게, 그리고 빠릿빠릿하게 만드는가? - 미국 사회도 그런 정글인가? 총기 소유, 그것은 여러가지 점이 있다. 총이 겨누고 있는 일상과 상식의 공간. 그것은 서로를 북돋는 것 같다. 적어도 미국은 그렇다. 늘 총을 쏴서 죽고 죽이고. 그것보다 큰 규모인 전쟁을 늘 하고 있는 나라 - 미국은 이라크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아프간 전쟁했다. 아프간 전쟁이 끝나면 반드시 또 다른 곳에서 전쟁을 일으킬 것이다. 그게 그들의 일상이고 체질인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이란 북한 베네주엘라는 많은 생각을 해야 할 것이다.
그는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이고, 종말이 가까왔다, 그 자신을 믿어라 라고 끊임없이 떠들었다는군요. - 신문 기사 ; 솔렉 트리뷴 (캘리포니아에서 10세 무렵 소녀를 납치해서 무려 20년 가까이 집에 감금하고 성폭행해서 애를 둘이나 낳게 했던 자도, 자신이 예수라고 했다더군요. 이 동네는 범죄자들 가운데 그런 vision을 보는 자들이 많나 봐요.) 클레몬스가 경찰관을 4명이나 죽이자, 이구동성으로 나오는 말이, 대체 이런 위험한 자를 어떻게 길거리를 활보하게 만들었냐는 겁니다. 허커비와 아칸소 및 워싱턴 주 검찰관들이 비난의 대상이 된 겁니다. 이런 비난과 짜증을 실증이라도 하듯이 12월 1일 클레몬스는 검문 중인 경찰관에게 사살되었다. 그는 Benjamin L. Kelly라는 39세 경찰. 첫 새벽 어둠 속에서 도난 차량을 발견하고, 점검 뒤에 자기 순찰차로 와서 앉은 순간 뒤에서 웬 사나이가 오는 것을 보고 차에서 나왔다. 그는 직감적으로 그가 경찰관 살해범임을 알고 체포하려 했다는 것인데, 신문 기사를 보면 그 과정이 별로 적힌 것이 없습니다. 클레멘스가 죽은 경찰관에게서 뺏은 총을 빼어들려고 해서 쏴 죽였다는 것이 전부더군요. -> 신문 기사 ; 솔렉 트리뷴 요컨대 제 짐작으로는 경찰은 클레멘스를 체포할 생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보면 그냥 사살이죠. 그런 걸어다니는 폭탄을 살려둘 이유가 없다. 재판까지 갈 것도 없다. - 이런 것 같습니다. ⑷ 제가 경찰관 살해 사건을 말하는 이유는 일상과 상식의 허약함 때문입니다. 인류는 역사 시대로 들어오면서, 사회와 국가를 만들고, 문화와 문명을 건설합니다. 이건 추상적인 것이고, 현실적으로 사람들에게, 그 과정은 '일상과 상식'의 공간으로 다가옵니다. 문화? 문명? 국가? 사회? 그건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일상의 공간은 우리가 늘 살고 있는 곳입니다. 마치 물고기의 물과 같은 것입니다. 그 일상-상식의 공간에서 우리는 안전하게 살아갑니다. 적어도 그것은 정글의 공간, 동물의 왕국과는 다릅니다. 초식 동물들은 끊임없이 포식자들을 의식하면서 피해 다녀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일상의 공간은 그와 반대이죠. 내가 늘 만나는 사람이나,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이나 다 나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상식이 있습니다. 인간이 힘들여서 건설한 것이 바로 그런 식의 마음 놓고 편안하게 살 공간인거죠. 일상과 상식입니다. 그러나 일상의 공간에도 허점이 있습니다. 만에 하나 나와 마주친 자가 갑자기 나를 공격한다면? 나는 불시에 당하게 됩니다. 나는 상식의 공간에서 남이 나를 공격하지 않는다. 정글의 공간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공격하면 어떻게 방어하겠습니까? 더군다나 칼이나 몽둥이도 아니고, 총을 들고 공격하면 꼼짝없이 당하게 됩니다. 사회-국가 조직은 그런 일상 파괴자를 제거합니다. 문제는 그런 자를 인지하고 제거하는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것입니다. 범죄자는 일상을 공격하고 숨는다. 그가 공격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아는데는 시간이 걸린다. 나아가 그를 찾아내서 격리하거나 제거하는데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바로 그 시간 동안, 일상의 공간에서 사는 사람들은 상식적으로 그를 대하기 때문에, 그에게 희생되게 된다. ⑸ 몇 사람의 희생을 댓가로 범죄자(일상 공간에 대한 공격자)를 인식하고 제거하게 된다. 반대로 말하자면, 찾아내고 제거하는 비용이 바로 상식적 일반인의 무작위적인 희생이다. 이것은 정글에서도 적용된다. 포식자는 그 공간에서 가장 숫자가 많은 종을 공격해서 잡아 먹는다. 논리적으로 그렇다. 예를 들자면 세렝게티 평원에 누 떼가 많다면, 사자는 주로 누를 공격해서 잡아먹는다. (그렇기 때문에 숫자가 작은 종도 살아남을 수 있는 공간을 갖게 된다.) 누 떼의 입장에서 보자면, 몇 명의 누를 희생시키는 대신 다수의 누가 그 공간에서 풀을 뜯어 먹게 된다. 고속도로에서 순찰차가 과속하는 차를 단속하는 것도 비슷하다. 경찰이 그 차를 단속하는 순간에는 다른 차를 잡을 수는 없다. 경찰이 과속차를 조사하는 동안 다른 차들은 씽씽 달려도 된다. 그 많은 차 가운데 몇 대의 차가 희생되는 댓가로 자동차의 거대한 흐름은 언제나 유지되게 된다. 이렇게 보자면, 일상과 상식의 공간에 범죄자(공격자)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 공격에 몇 명의 희생을 댓가로 범죄자를 제거할 수 있고, 상식의 공간이 유지된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늘 그래 왔던 것 같다.앞으로도 늘 그럴 것이고, 사회부 기자들은 바로 그런 범죄 보도로 먹고 살 것이다. ⑹ 문제는 일상과 상식 공간의 방어를 위해서 희생되는 개인이 과연 누구냐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는 무작위적으로 확률적으로 결정된다. - 그렇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범죄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 일상의 공간에서 상식적으로 살기 때문에, 범죄자에 대항하기 어렵다. 만약 내가 그 희생자가 된다면? - 그게 바로 문제이다. 재수 없는 놈이 나일 수도 있다. 내가 그 대상이 될 확률은 매우 낮다. 누구 말 마따나 '홀인원하고 나서 걸어가다가 벼락맞아 죽을 확률'일지 모른다. 더불어서 설사 내가 당한다 하더라도, 언제 희생될지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안심하게 된다. 그래서 총기 난사 사건을 보고 들어도, 일상에서 사람들은 태연하게 산다. ⑺ "추수 감사절 여행자를 위한 안전 팁"도 바로 그런 점과 연관된다. 거기에서 거론한 바, “뒤에서 내 차를 들이받더라도 내리지 말고 정비소로 가라. 어두워지기 전에 휘발유를 넣어라” 등. 이것은 일반인에게 일어나기 거의 어렵다. 다만 범죄인에게 당한 사람들의 일이다. 도로 운전과 주유 등등은 일상의 상식적인 일이다. 그것을 공격당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일상에 대한 공격은 모든 나라 어떤 사회 어느 시대에도 다 있었다. 다만 미국의 특수성이 있다. 미국은 총기 소유가 합법화된 사회이다. 대부분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 소유하고, 또 사냥하기 위해서 가진다. 그러나 가끔은 범죄를 위해서 치명적 무기를 구입한다. 사회마다 또라이 지랄 꼴통 사악한 포악한 자들이 있다. 그들이 일상 공간의 상식인을 공격하게 된다. 그런데 만약 총을 구입하는 것이 술을 사는 것보다 더 쉬운 사회라면? 그건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것이다. 총이 없다면 그런 자들이 일상을 공격하더라도 피해가 작다. 그러나 그들이 총을 드는 순간, 무고하고 아무 상관이 없는 10-20명이 희생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조승희가 광란의 총격으로 30명 넘게 죽였다. 총이 아니라 칼이나 다른 무기로 죽였다면 그렇게 많이 해치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바로 그게 미국 사회의 특수성이다. 모리스 클레몬스가 시애틀 부근에서 경찰관 4명을 쏘아 죽였을 때,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대체 누가 어떻게 그런 자가 길거리를 활보하게 만들었나? 그런 자가 총을 가지면 일상을 치명적으로 공격할텐데 말이다. 그래서 그를 발견한 경찰도 체포보다는 사살을 선택했을지 모른다. 총을 가진 또라이들에 대해서 미국은 점점 더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것 같다. 체포 격리 혹은 교육 보다는 영구 제거를 더 선호하게 되는 것 같다. ⑻ 미국은 세계 초강대국인 이유는 있다. 그러나 반대로 이렇게 무능할 수가? 절로 탄식이 들 경우도 있다. 의료 보험, 혹은 총기 소유가 그것이다. 4000만명인가가 무보험인 사회. 또라이도 총를 사서 아무나 쏴 죽일 수 있는 사회 - 이것은 편안한 일상의 공간도 아니고, 상식적인 인간이 살기에는 저으기 위험하다. 늘 과도한 위험이 사람들로 하여금 경각심을 불러 일으킨다. 늑대가 없는 옐로 스톤 국립 공원의 들소(바이슨) 떼는 정말로 게을러 빠졌다. 늑대가 방목된 뒤에 그들 개체가 조절되었다. 적당한 위험이 사람들을 조심스럽게, 예절바르게, 그리고 빠릿빠릿하게 만드는가? - 미국 사회도 그런 정글인가? 총기 소유, 그것은 여러가지 점이 있다. 총이 겨누고 있는 일상과 상식의 공간. 그것은 서로를 북돋는 것 같다. 적어도 미국은 그렇다. 늘 총을 쏴서 죽고 죽이고. 그것보다 큰 규모인 전쟁을 늘 하고 있는 나라 - 미국은 이라크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아프간 전쟁했다. 아프간 전쟁이 끝나면 반드시 또 다른 곳에서 전쟁을 일으킬 것이다. 그게 그들의 일상이고 체질인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이란 북한 베네주엘라는 많은 생각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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