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볼리바르화 평가절하를 8일 발표한 뒤, 물가상승을 우려한 시민들이 9일 수도 카라카스의 전자제품판매점에서 물건을 사기 위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카라카스/AP 연합
유가 떨어져 재정악화 허덕이자 ‘극약 처방’
물가상승 불러 지지층 등돌리는 ‘역풍’ 우려
물가상승 불러 지지층 등돌리는 ‘역풍’ 우려
드디어 한계가 드러나는 것일까?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8일 밤 볼리바르화 평가절하라는 ‘극단적 처방’을 선택했다. 1달러당 2.15볼리바르였던 환율을 식료품 등 생필품은 1달러당 2.6볼리바르로, 원유달러를 포함한 나머지는 4.3볼리바르로 평가절하했다. 2005년 이후 처음이다. 베네수엘라는 2003년부터 정부 고시 환율 정책을 시행해왔고, 새 차등환율제는 11일부터 적용됐다.
이번 조처는 차베스의 ‘정치적 도박’으로 평가받고 있다. 고유가에 의존한 방대한 사회복지정책을 추진해온 그가 유가하락으로 재정수입이 크게 위축되자, 볼리바르화 평가절하라는 방법으로 재정수입 불리기를 택한 것이다. 당장 달러로 받는 원유판매 대금은 볼리바르화로 두배로 늘어나게 됐다. 9월 의회선거를 앞두고 사회복지정책 지속과 경기부양에 쓸 수 있는 국가재정은 그만큼 두둑해졌다.
이번 결정은 차베스로서는 고육지책이다. 국가 전체 수출의 약 93%, 국가 재정수입의 약 절반을 차지하는 석유수출에 따른 수입이 유가하락의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2008년 7월 배럴당 145달러를 넘어섰던 유가는 지난해 초 50달러대로 떨어지면서 국가재정을 크게 압박했고, 현재 회복됐다고 하지만 배럴당 80달러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동안 ‘21세기 사회주의’를 내세운 차베스의 관대한 사회복지 정책은 ‘퍼주기’라는 비판을 받으면서, 유가가 떨어질 경우 지속하기 어렵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베네수엘라 경제는 유가하락 등으로 지난해 수출이 36%나 줄어들어, 2003년 이후 첫 경기후퇴에 빠지면서 마이너스 2.9%의 성장을 기록했다.
차베스가 서민층 지원 프로그램을 유지하기 위해 환율 평가절하를 선택했지만, 물가상승으로 서민층의 고통이 커질 경우 최대 지지층이 등을 돌리는 역풍을 맞게 된다. 베네수엘라의 물가상승률은 지난해 중남미 최고치인 25%를 기록했다. 9~10일, 베네수엘라 상점에는 값이 뛰기 전에 물건을 사려는 이들로 넘쳐났다. 대부분의 소비재를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물가상승은 불가피하다.
차베스가 10일 “가격을 올릴 이유가 없다. 부르주아 투기게임을 벌일 경우 사업을 빼앗아 노동자들에게 넘겨주겠다”며 “군대를 동원해 투기꾼을 잡아내겠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이번 평가절하는 3~5% 수준의 물가상승 압박 요인으로 작용해 올해 물가상승률이 30%를 넘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자칫 이번 평가절하 조처는 차베스가 제 무덤을 판 격으로 흘러갈 수 있다.
집권 11년을 맞은 차베스의 지지도는 이미 1년전 60%대에서 50%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다. <인디펜던트>는 11일 “차베스 도박의 성패는 물가상승을 무릅쓴 정부지원 프로그램의 효과가 어느 정도냐에 달려 있다”고 내다봤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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