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칠레 대선 결선투표에서 당선된 세바스티안 피녜라 당선자가 산티아고에서 손을 흔들며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산티아고/AP 연합뉴스
피녜라, 결선투표서 중도좌파 프레이 후보 꺾어
좌파 분열도 한몫…GDP 2배 등 경제성장 공약
좌파 분열도 한몫…GDP 2배 등 경제성장 공약
칠레에서 20년 만에 우파로 정권이 교체됐다.
백만장자 정치인 세바스티안 피녜라(60) 우파 후보는 17일 치러진 대선 결선투표에서 99% 개표 현재 51.6%를 득표해 당선을 확정지었다. 전직 대통령인 중도좌파 에두아르도 프레이(67) 후보는 48.4% 득표에 그쳤다. ‘변화를 위한 연합’ 후보로 출마한 피녜라 당선자는 “칠레는 세상에서 가장 큰 나라도, 부유한 나라도, 영향력이 큰 나라도 아니지만 최고의 국가로 바꾸도록 우리 모두 헌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자리 100만개 창출, 매년 6% 경제성장을 통한 국민소득 2배 증가 등을 공약했다.
피녜라의 승리는 사회당, 기독민주당 등 4개 중도·좌파정당 연합 ‘콘세르타시온’의 20년 집권의 끝을 의미한다. 콘세르타시온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1973~1990)의 독재정권 종식 뒤 집권해, 칠레를 남미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번영된 나라로 이끌었다. 하지만 국민들은 변화를 내건 피녜라를 선택했다. 중도좌파연합의 분열도 패배의 한 원인이다. 사회당 출신의 마르코 엔리케스 오미나미 후보가 무소속으로 출마했고, 결선투표를 나흘 앞두고서야 프레이 지지를 선언했다. 1994~2000년 대통령을 지낸 프레이 후보는 신선함과 카리스마가 부족했다. 지지율 80%에 이르는 미첼 바첼레트 대통령의 지원도 판세를 뒤집지 못했다.
이번 대선 결과는 칠레 국민의 ‘피노체트 공포’에 대한 극복으로 여겨진다. 1973년 살바도르 아옌데의 사회주의 정권을 쿠데타로 무너뜨린 피노체트 군부독재 정권은 집권 기간에 수많은 인권침해를 자행했다. 피녜라가 소속된 ‘변화를 위한 연합’에는 피노체트 정권을 지지했던 정당들과 인물들이 대거 참여했고, 친형 호세 피녜라가 피노체트 정권에서 노동장관을 지냈다. 이 때문에 중도좌파는 ‘피녜라를 찍는 것은 피노체트를 찍는 것’이라며 우파 경계 심리를 자극했지만 이번엔 먹혀들지 않았다.
정권이 우파로 넘어갔지만, 급격한 정책변화는 없을 것으로 <로이터> 통신 등은 전망했다. 피녜라 당선자는 바첼레트 대통령의 인기정책을 대부분 계승하겠다며, 현 여권에 협조를 요청했다. 다만, 그는 세계 최대 구리생산업체 코델코의 국가소유 주식 20% 등을 민영화하는 등 우파 정책도 예고했다. 그는 중도실용 정책으로 브라질의 성장을 이끈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밝혔다. 그의 당선도 중남미의 중도실용 노선이 득세하는 흐름과 맥이 닿는다. 현실적으로 중도좌파가 의회를 장악하고 있어, 마음대로 정책을 바꾸기도 쉽지 않은 여건이다.
대외관계는 중남미 좌파 지도자들과의 갈등이 예상된다. 피녜라는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이끄는 베네수엘라는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쿠바에 대해서는 “독재”라고 비난했다. 내륙국가 볼리비아는 칠레와 협상을 통해 태평양 쪽으로 항구접근을 원하고 있지만, 피녜라는 영토를 내주지 않겠다고 밝혀왔다. 연임이 금지돼 출마하지 못한 바첼레트 현 대통령은 2014년 대선 출마가 점쳐지고 있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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